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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인절미(선정에 빠지다)/김대근삼행詩 2014. 2. 3. 17:43
인절미(선정에 빠지다)
인등이 졸다 깬 사이 어깨로 내린 죽비竹篦
절 마당 어둠은 익은 채 쌓여가고
미구에 마주할 아침, 더디 흐르는 시간
인과란 묘해서 그런 듯도 아닌 듯도
절절히 그 끝을 헤아려 보지만
미궁에 빠져 허대는 야반 삼경의 산사山寺
인燐불타듯 찰나에 붙잡는 끄댕이 하나
절벽에 가로막혀 비가 된 구름처럼
미란迷亂한 마음 밭고랑 투닥투닥 내리다
인두질 주름 펴듯 펼쳐보는 세상 연緣들
절애絶崖의 저 끝으로 한껏 밀쳐보지만
미거未擧한 심안 사이로 또 채워진 번뇌
인전印篆처럼 마음에 새겨둔 화두話頭
절마切磨하여 이생에 깨치리, 다져보는 새벽
미우微雨가 산을 넘어와 문살꽃을 깨우다
註)
- 죽비竹篦:불구(佛具)의 하나. 죽비자(竹篦子)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좌선을 할 때 승려들에게 경계를 주거나 선승이 설법할 때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다. 형태는 2개의 대쪽을 합친 다음 등나무로 머리부분과 손잡이를 감싸 옻칠을 한 후 한쪽 끝에 술을 붙인 것으로 그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불사(佛事) 때 이것으로 손바닥을 쳐서 소리를 내어 대중의 좌(坐)·입(立)을 알린다.
- 미란迷亂:마음이 미혹하고 어리석어 혼란한 상태
- 인전印篆:도장에 새긴 전자(篆字).
- 절마切磨:절차탁마 [切磋琢磨]의 줄임말로 옥이나 뿔 따위를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도덕, 기예 등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 수련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미우微雨:안개처럼 아주 엷게 내리는 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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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참 더디갈 때도 있었는데 요즈음은 왜 이리 하루가 빨리 가는가 싶어 그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다. 아마 이런게 나이탓이려니 자위해보지만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어보면 비움의 체득이 부족한 탓일게다.
3년전까지는 1년에 서너번은 절을 찾아 철야정진으로 선정에 빠져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대학원 공부하느라 모든 것을 놓고 살다가 A4 한장에 인쇄된 석사학위증 한 장을 받고 허탈하기도 해서 또 몇 개 월 허한 마음을 보살피지 못했다. 최근에 마음 추스릴 시간도 없이 바쁜 생활의 연속으로 정서의 샘은 말라서 푸석거리고 감성은 열사의 사막처럼 되었다.
2013년 한 해를 보내면서 하루라도 근3년 놓았던 화두를 다시 새겨보자하고 철야정진 법회에 한자리를 얻어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에도 큰 진전은 없었지만 마음에 다시 새기는 계기는 되었다. 올 해부터는 자주 마음 찾는 공부를 해야 겠다.
스무살 후반에 법명을 "자명(自明)"으로 받으면서 같이 주신 화두가 "이뭣고(是甚麽)"였다. 법명인 自明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이다. 석가모니께서 죽림촌(竹林村)에서 주석하고 계실때 제자인 아난존자가 마지막 설법을 청하였는데 부처님께서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하였고 나에게는 비밀이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끈에 매이어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며 "너희들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고 설하셨다. 여기에서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自燈明)' 수행을 하라는 가르침에서 따온 것이다. 스님은 이 법명을 주시면서 "평생동안 이거 하나만 파도록 해라!"고 하시면서 주신 화두가 이뭣고! 다.
그후 30년을 잊지않고 이 화두만 팠지만 본 바탕 그릇이 옹렬한 탓인지 아직 깜깜한 밤 속이다. 가끔은 운전을 하다가 이뭣고...를 참구하거나 아침잠에서 깨어 잠깐 5분정도 참선을 할때도 이뭣고...를 잡고 늘어져 보는게 다다. 시간의 크기가 다는 아니겠지만 올해는 철야정진 법회를 자주 가야겠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서 내가 받아 가진 시간의 크기가 쪼그라들고 있는 게 눈에 번연히 보이는 나이다. 마음이 자꾸 조급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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