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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가마골(새잎 돋는 杜沖)/김대근삼행詩 2013. 9. 22. 14:23
가마골(새잎 돋는 杜沖)
가버린 세월 모락모락 다시 피어
마당 가 동백잎을 차락차락 덮는다
골마루 굴곡진 세월 힘겹게 살다 간 아버지
가고 남긴 함몰(陷沒)은 오늘도 한 발 커지고
마당에 심어놓은 두충(杜沖)은 새잎 돋는데
골감이 익어가는 때 발돋움으로 따주던 그
가신 때 이즈음 넘치게 풍요로왔다
마음자리 자박자박 스스로 달랠 뿐
골수에 스민 그리움, 상석(床石)에 얹히는 한잔 술
註)골감: [식물] 감의 하나. 꽃이 붙어 있던 배꼽 자리에서 꼭지를 향하여 네 갈래의 골이 져 있다.
-----------------------------------------------------------------------한가위는 모든 것이 풍성하다. 들은 들대로 누렇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수수같은 키 큰 작물들은 높아지는 가을 하늘의 꽁무니를 쫓아간다. 배도 한껏 몸집을 불리고 사과도 새색시 뺨처럼 윤기가 찰랑거린다. 이즈음 농부는 도통 시장기를 느끼기 힘들만큼 벅찬 마음이 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한가위만 같아라 일것이다.
가을걷이의 풍요함을 느껴본지가 언제였던가? 참 까마득하다. 도시의 삶은 풍요와 돈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놓도록 길들여졌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풍요로운 시골의 삶을 그리워하는 도시인이 되었다. 순간순간 번잡함에 적응되도록 유전인자마저 프로그램 되었다. 그러나 시골적 삶에 대한 동경만으로도 내 감정의 골짜기에 작은 물길이 흐르는 듯 하다.
한가위라 본가에 다니러 왔다. 이럴때 남들은 시골간다고 이야기 하건만 나는 오히려 지금 사는 곳보다 더 큰 도시로 가야한다. 그러니 남들처럼 錦衣還鄕의 기분을 향유하지는 못한다. 모두들 빠져나간 대도시로 기어드는 그림자같다.
본가는 이층짜리 본채와 본채를 기역자로 돌러싼 스레트 지붕 단층의 아랫채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는 세들어 사는 가구가 좀 되었는데 모두 떠나고 이제 2가구 달랑 남아 있다. 이 두 가구는 우리 집에서만 30년을 셋방 산 사람들이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반재래식(이상한 표현이지만 수세식은 아니지만 완전한 재래식도 아닌 중간쯤 되는 형식이다) 화장실 문짝에 그려진 저 낙서는 20년이 넘은 흔적이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30년을 세들어 사는 아저씨는 올해도 혼자서 명절 음식을 마당 수돗가에서 장만중이다. 저 낙서의 주인공인 아들은 몇 년 전에 제대하고 직장을 다닌다고 한다. 세월이 이리도 흘러갔구나 싶다. 멈추어 버린 낙서의 흔적에서 비틀어 짜보아도 녀석의 옛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다.
성묘길에 나섰다. 명절전에 벌초를 해두면 좋으련만 멀리 있다는 핑계로 늘 명절 하루전이나 명절 당일날 갈 수밖에 없다. 성묘길은 작은 산 3개를 넘나다녀야 한다. 그중 종할매(從祖母) 산소가 제일 풍성하다. 가을볕도 참 실하게 들어서 항상 안온하다. 산소옆에 토종 밤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알밤 떨어지는 범위가 딱 할매 산소의 영역만큼이라 벌초하고 나면 항상 토종밤톨이 양손에 그득하다. 게다가 할매산소 경계에 상수리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데 해마다 서너송이의 영지버섯도 수확을 한다. 정말 풍성하다. 우리 종할매... 생전에도 후덕하셨다더만~~
할배 산소는 그중 제일 높은 산, 그 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다. 가장 힘든 코스다. 그래도 할배 산소에서 50보 정도면 이 산에서 제일 유명한 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터에는 아버지 흔적이 많다. 바위밑에서 조그맣게 솟던 곳을 아버지와 몇 분 어르신이 수년간 다듬어 이렇게 훌륭한 곳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돌아가신후 이 산에 몸을 누이진 못하셨지만 할배 산소로 인해서 한 해에 두어번 오게 되는 곳이다. 물맛이 참 좋은 곳이다. 모두 조상 잘 둔덕에 맛보는 시원함이다.
아버지는 추석을 딱 열흘 앞두고 세상을 버리셨다. 위독하다는 전언을 듣고 내려오던 열차안에서 임종소식을 듣게 되었다. 장남으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큰 불효를 저지런 셈이다. 게다가 삼년째 맞이한 이번 기제사에도 첨석하지 못했다. 불효가 겹겹으로 쌓여 스스로를 자책하게 했다. 살아 생전에 더 자주 뵙지 못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아버지가 생전에 애지중지 보살핀 나무 두 그루, 동백나무 한 그루와 두충 나무 한 그루다. 동백나무는 청상이 되어 아버지를 큰 집에 맡기고 재가를 했다가 실패후 다시 돌아오신 할매에 대한 용서로 할매 세상버린지 10년만에 손수 심어신 것이다. 할매는 유난히 동백기름으로만 머리 손질을 하셨다. 두충은 당신에게 당뇨가 있음을 아신후 두충차가 좋다는 말을 듣고 제법 나잇살 먹은 것으로 구해다 심어신 것이다. 봄이면 두충잎을 따서 광에다 말리셨다. 성묘가려고 광을 열었더니 주인잃은 두충잎이 바람에 저절로 바스라졌다. 그리웠다. 낮잠에 빠진 동생을 추달해서 아버지 모신 시립공원묘지로 차를 달렸다.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올리고 왔다. 아버지는 늘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나마 아버지라는 그늘이 아직 나에게 남아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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