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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길소뜸(또 가을인가?)/김대근
    삼행詩 2013. 9. 13. 17:00

    길소뜸(또 가을인가?)

     

    길섶에 가락으로 늘어진 볕 살을
    소담한 어깨로 떠받치고 서 있는 들국(野菊)
    뜸마다 익는 가을 들, 물드는 치자 빛

     

    길의 저 끝으로 달려가는 우리
    소걸음 걷는 곁 화살로 스치는 세월
    뜸들일 시간도 사치, 내일 없는 오늘

     

    길의 구비마다 돌아보는 뒤란
    소가지 좁은 틈 잘도 지나왔구나
    뜸들여 익혀볼 한철, 가을 초입(初入)이다


    註)
    1.뜸: 마을, 산모롱이등에 몇 집씩 모여있는 작은 단위, 예>위뜸과 아래뜸
    2.뜸: 시간의 단위
    3.소가지: '마음속'을 속되게 이르는 말, 소갈머리

     

    ## "길소뜸"이 단어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예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세영 시인께서 올려주셨기에 저도 길소뜸으로 한 수~ 예전에는 마을 이름에 "뜸"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길소뜸도 어니 아름다운 마을의 이름은 아닐런지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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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시간(時間)의 노예다. 어떤 사람은 돈의 노예라고 하기도 하지만 돈과 시간의 무게감은 천양지차다. 돈의 노예임을 자처하는 사람도 실상은 시간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을 살 수는 없다.

     

    문명의 발달은 기실 인간이 시간을 정복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필요가 산업혁명을 낳았고, 근대과학을 태동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예전에 시간을 갑자(甲子)나 겁(劫)과 같은 큰 덩어리로 보던 것에서 시,분,초.... 백만분의 몇초까지 발전해왔다. 그럼에도 끝없이 쪼개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요즘 某통신사에 1초로 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광고를 방영하고 있다. 1초에 영화 몇 편...음악 몇 곡... 하는 광고인데, 광고대로라면 사실 1초도 얼마나 긴 시간인가 말이다. 며칠전부터 회사의 컴퓨터가 심상치 않다. 버벅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클릭하면 하고 나서 금방 원하는 화면이 뜨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그 속도라는 것이 수년전에 환희작약했던 속도임에도 빠름에 길들여진 내 모습을 새로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상담학 석사 공부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용어중 하나가 "Here and Now"였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한다. 그래서 시점을 지금 현재로 옮겨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지금"이라고 말하거나 글로 쓴 그 순간이 이미 과거다. 다가오는 미래는 가늠할 수 없는 카오스다. 알수없는 미래와 지나가버린 과거중에서 우리 뇌는 당연히 기억된 것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기억된것도 사실은 실제하지 않는데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30년전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때의 그와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인간의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또 그만큼 사멸해 간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나는 이미 사멸한 후이다. 새로 생긴 세포들이 내 몸을 채우고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Here and Now"란 말은 현재시점으로 생각하라는 관념적 용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최근에 크게 힛트한 '설국열차'라는 영화에서 특정한 루프를 끊임없이 돌게 설계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어느 특정한 지점을 통과할때 죽고 죽이는 처절한 싸움마저도 중단하고 축하한다. 사람은 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는 죽어 가고 태어날 뿐 아니라, 투쟁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 출발한다는 것, 새로운 계절이 왔다는 것... 이런 것들도 관념적 용어다.

     

    올 여름은 참으로 무덥고 힘이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도 자연의 시간을 거스를수는 없는 모양이다. 다시 시작하는 가을이다. 내 삶이 만나야 할 가을의 절반쯤이 지나고 있다. 관념적으로 말이다. 올 가을에 내게 필요한 것은 "쉼"이다. 가혹하게 달려 온 스스로에게 쉼이라는 상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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