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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열대야(지리산 운무(雲霧))/김대근삼행詩 2013. 8. 26. 15:57
열대야-지리산 운무(雲霧)
열병熱病처럼 와서 한철 내내 단근질로
대지는 달구어진 채 모로 길게 누웠고
야들한 팔등신 위로 부드럽게 덮인 그림 한 폭열망의 산하山河 쓰다듬어 재워줄
대장부 기상, 빠릿빠릿한 이 누구인가?
야하게 나신裸身 보일 때 헐떡이며 그 山 오를 이들註)* 빠릿빠릿하다: 똘똘하고 날래다. '빠릿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 행동이 유난히 빠릿빠릿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Memo-----------------------------------
최근들어 전라도 순천으로 출장이 잦다. 업무에 쫓기다보니 길어야 1박2일이고 대부분은 하루만에 다녀와야 한다. 그러다보니 왕복 600키로 가까운 거리를 주변을 돌아볼 여유없이 다닌다. 그럴때는 내가 마치 운전용 로보트 같이 느껴질때도 있다. 순천은 요즈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어서 업무를 마치고 한 번 들러보리라 했지만 焉敢生心...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이다. 사는게 된 고구마처럼 팍팍하다.
그렇다고 말라 비틀어진 고구마 삐떼기같은 출장길은 아니다. 한 여름 점심시간이 잘 맞아 떨어져서 섬진강 은어맛을 보기도 하고, 업무를 마치고 늦은 시간 가까운 여수로 가서 제철을 맞은 민어부레를 식도락으로 즐기기도 했다. 출장지의 모텔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쳐져 일찍 잠깬 날은 새벽에 나서 '야망의 계절'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했던 곳의 달동네도 들렀다. 삶은 평균치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따져보니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 물렁한 삶이다. 이 삶을 좀 더 사랑해야 겠다.
순천 갔다가 歸路에 빠지지 않고 들리는 곳이 순천-전주간 고속도로 황전휴게소다. 순천쪽 휴게소보다 전주쪽 휴게소에서 빠지지 않고 쉬는 것은 이곳 휴게소 데크에서 바라보는 구례읍내와 오산... 그리고 지리산이 조화를 이룬 멋진 풍경을 완상할 수 있는 곳이라서 이다. 이곳에서는 섬진강의 풍경도 한 눈에 들어온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가뭄이 오면 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술을 금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술 자체가 곡식을 소모하는 일이니 일을 삼가하는 것은 아마 당연했으리라. 대신들이 '가물징조가 보이므로 술을 금하게 하소서'하니 왕이 '그리하라'하고 조칙을 내린지 하룻만에 비가 오자 다시 대신들이 '왕께서 술을 드소서'하고 간할 정도였는데, 이런 풍경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굉장히 흔한 장면이다. 농사가 주업이던 조선왕조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실 최근에 남부지방의 가뭄은 심각한 정도였지만 심각성을 몸으로 느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좋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간적 인연을 잘 만난것도 행복한 일이다.
오랫만에 남부지방에도 비가 왔다. 아직도 농사가 많은 남부지방에 가뭄은 치명적인 재해가 될 수도 있다. 숨이 목에 차서야 속시원히 비가 내리니 모두들 한 숨 돌렸다. 비가 내리다가 휴게소에 들리니 짬깐 멈추었다. 그 순간에 지리산에 운무가 덮히었다. 장엄하다. 이 시간적 찰라의 순간에 내가 여기 있음이 행복하다.
추신)
예전에 열대야로 주제가 올라온적 있었지요. 옛글을 더듬어 보는 재미도 좋네요.2007. 7 http://cafe.daum.net/emunhak/9HsJ/1327
2007. 7 http://cafe.daum.net/emunhak/9HsJ/1323
위 링크를 클릭하시면 옛 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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