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행시-열대야(코스모스)/김대근삼행詩 2013. 9. 9. 19:34
열대야 (코스모스)
열 구름 하늘에 바람 고랑 만들어
대숲 흔들어 조각난 소리 다듬다
야리고 하늘 한 허리, 비틀어 허공에 그린 마음열어 내놓은 마음 가닿은 곳은
대거리로 울렁대는 파도의 산허리
야살한 숨결로 핀 꽃, 한 송이 하늘에 심다註)
-열 구름: 지나가는 구름, 行雲
-야살: 얄망궂고 잔재미가 있는 말씨와 태도
-대거리:일을 시간과 순서에 따라 바꾸어 함. 또는 그일
---------------------------------------------------------
가끔 삶의 여정을 돌이켜 볼 때가 있다. 우리의 삶에서 현재란 없다. 미래라는 것도 실상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 삶이 마치 누에같다는 생각을 해볼때가 있다. 오로지 뽕잎을 먹으면서 끝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을 갉으며 앞으로만 전진하도록 운명지어진 시간의 노예... 그것이 우리 인간의 자화상이 아닌가.시간을 갉아서 생긴 찌꺼기같은 추억들만 남기는 게 우리들 아닌가. 삶을 크게보면 앞으로만 나가는 설국열차와 같다. 어찌보면 설국열차는 해마다 같은 곳을 지나지만 우리의 삶에서 같은 곳이란 없다. 그저 나아갈뿐이다. 지나치는 시간의 공간을 짐작해보려 하지만 빛 한줄 들어오지 않는 어둠일 뿐이다. 젊은 시절,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출가를 꿈꾼적도 있었지만 내깔린 찌꺼기에 더 천착했던 나는 결국 그 길을 가지 못했다. 같은 꿈을 꾸었던 친구는 그 숲길의 푸른 빛 너머로 용기있게 걸어갔다. 남겨진 나는 욕망이라는 媒染劑로 인해 물이 들대로 들었다. 물이 들드라도 차라리 한 색깔로 곱게 드리울 수도 있었지만 삶이라는 물리적 제약들에서 허우적 대느라 수많은 색깔들로 물이 들었다. 아름다운 색도 한꺼번에 같이 섞으면 검정색에 가까워진다. 나는 검정색으로 물이 들었다.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탈색할 수 없는 한 조각 검정색 넝마가 되고 말았다. 푸른 숲길을 걸어간 그 도반의 현재가 궁금하다.
올 여름은 더위가 참 유난했다. 난생처음 겪는 무더위에 진이 빠진 날도 많았다. 공장이 제법 넓어 한 바퀴 돌고 나면 땀으로 목욕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 염천의 날씨에도 용접을 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고는 했다. 그런 무더위도 비끌어맬수 없는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듯 아침저녁으로 추워졌다. 들판에 나락들도 머리색이 누렇게 탈색되고, 메뚜기 같은 한철 곤충들도 脫俗의 눈빛이다. 충청도에 코스모스가 이즈음 핀 것은 오히려 늦장이다. 염천의 여름인 7월 중순에 경북 문경에 들렀다. 국도변에 둠벅하니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보며 이제는 자연도 사람을 속이는가 싶었다. 사실은 이것도 우리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이다. 코스모스는 자신의 생리에 맞는 기후였기에 피었을 뿐인데 괜스레 우리 인간이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라는 관념을 만들고 그 허상의 대물렌즈에 맞추어 세상을 보려고 한다.
오랫만에 블로그의 옛글들을 읽어보았다. 특히 아이들이 자라면서 뜸해진 '딸들의 비망록'을 읽으며 추억에 잠시 젖었다. 문득 오래전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한 막내딸의 사진이 눈에 뜨인다. 이 조그만 녀석이 자라서 대학진학을 위해 수시를 쓴다고 분주하다. 아~ 그래! 내 열차만 앞으로 달린것은 아니였구나! 톡~하고 떨어지는 작은 깨달음의 씨앗....
'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행시-가마골(감 익는 마을)/김대근 (0) 2013.09.15 삼행시-길소뜸(또 가을인가?)/김대근 (0) 2013.09.13 삼행시-열대야(지리산 운무(雲霧))/김대근 (0) 2013.08.26 삼행시-국정원(콩물 한 병)/김대근 (0) 2013.08.19 삼행시-국정원(도라지 꽃)/김대근 (0) 201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