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종선종악(從善從惡)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3. 1. 3. 22:26

    종선종악(從善從惡)

     

    혁명(革命)은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박정희의 516은 선과 악의 외줄타기를 해온 대표적인 사례다. 5~70대의 세대들에게는 경제발전으로 모든 악을 덮을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은 민주화를 지체시킨 독재의 과가 무엇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그나마도 2대에 걸친 집권으로 경제발전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휘둘리워질 판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일까? 인간의 기준으로 그어지는 선과 악의 경계선은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것인지는 애매하다. 그저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위치에서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겠다.

     

    요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가 레미제라블이다. 대선후 맨붕에 빠졌던 젊은 세대들에게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사회부조리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오늘의 암울한 대한민국2013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장발장은 악의 길에서 선의 길로 궤도를 수정하는데 성공한 캐릭터여서 더 많은 공감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빵 한 덩어리를 훔쳤다가 징역5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에 잇단 탈출기도로 19년의 옥살이 끝에 출감하지만, 한 번 범죄자는 영원히 범죄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당시 프랑스의 현실에서 갈곳이 없던 장발장이 찾은 곳은 미리엘 주교였다. 그러나 장발장은 은혜를 배신하고,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려다 발각되나 미리엘 주교의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장발장이 개심(改心)한 것은 한 어린이가 놓친 동전을 발로 밟아 빼앗은 후 자신 은그릇을 훔쳤으면서도 용서받았는데 어린이의 돈을 강탈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으면서다. 그후 노력하여 막대한 부자가 되었고 선행을 쌓아 존경받는 시장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자베르 경감이 추적하자 그는 다시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장발장처럼 악을 행하고 이후 선을 행하면 지난 날 저지런 악이 소멸되는가의 문제는 인과의 법칙에 비추어보면 절대 아니다. 선과 악의 행위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하는 하나의 행위에서 누구에게는 선이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것이 어렵다. 그렇기는 하지만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을 지양(止揚)하고 선을 지향(指向)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선과 악에 대한 통찰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이 남긴 글이 도움이 된다. 1501년 태어나 성리학의 대가이며 사림(士林)의 영수로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1572년 72세로 타계하였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자신의 수양과 학문에 매진한 선생은 자신의 문집인 남명집(南冥集) <遊頭流錄>에서 착하게 사는 인생과 악하게 사는 인생을 산에 오르내리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착하게 사는 것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렵듯이 선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악하게 사는 것은 마치 산에서 내려오는 것과 같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발이 저절로 나아가듯이 나쁜 유혹에는 쉽게 빠지게 마련인 것이다."

     

    또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編) 9에는 이런 글이 있다.

    "東岳聖帝垂訓에 曰,  一日行善이면 福雖未至라도 禍自遠矣요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라도 福自遠矣니라. 行善之人은 如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나 日有所增이요 行惡之人은 如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나 日有所虧니라."

     

    이 말은 하루 선(善)을 행해도 복(福)은 비록 아직 당장 이르지는 아니하나 화(禍)는 저절로 멀어지고, 하루 악을 행해도 화는 비록 아직 당장 이르지는 아니하나  복은 저절로 멀어지느니라.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풀이 자라는 것을 보지는 못해도 날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바가 있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돌과 같아서 그것이 닳아 없어짐을 보지는 못해도 날마다 조금씩 이지러지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숫돌에 낫을 갈다보면 마치 낫의 날이 닳아져 벼려지는 것 같지만 숫돌 역시나 제 몸을 닳혀가는 것이다. 다만 천천히 닳아가므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불가(佛家)에서도 선과 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에는 "諸惡莫作 모든 악을 짓지말고, 衆善奉行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自淨其意 스스로를 맑게 하면, 是諸佛敎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라고 가르치고 있다.

     

    선과 악을 바르게 보는 것도 힘들지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惡은 아닐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