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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 하나 남겨 놓은 거리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9. 11. 16. 01:52

    추억 하나 남겨 놓은 거리


    오늘은 무척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월요일부터 출장을 창원으로 계획했는데 급하게 화요일 포항 일까지 겹쳤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번 출장도 제법 빡빡한 길이 되겠다 싶다. 매달 지인들에게 문자 메세지를 하나 넣어 준다. 20원으로 나를 기억해 달라고 떼를 쓰는것과 같은 것이다. 보통 100여통을 발송하는데 회답율이 20% 정도이다. 투자에 비해서 거두는 수확이 다소 부실한 편이다. 그러나 나와 연을 맺고 있는 많은 이들이 나이가 좀 있는 분도 있어서 문자 메세지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회답을 주는 대부분은 그래도 연령이 좀 적은 편에 속한다. "반갑습니다. 어디 십니까?" 밀양에 사는 이성민 시인의 답문자다. 창원으로 출장을 간다는 전언에 저번에 이루지 못한 만남을 잠시 가질수 있겠느냐는 요청이다. 창원에서 포항을 가려면 중간에 밀양을 잠깐 들리면 된다. 거리도 줄곧 고속도로로 달리나 밀양을 거쳐서 언양간의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나 거의 비슷하다. 저녁시간에 특별히 포항에 도착하여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까지 합해서 4시간 정도 달리게 되는데 이번 여행길은 계절의 아날로그적 풍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싯점이 계절의 풍경을 아날로그로 감상하기 좋은 계절이다. 출발하는 곳의 가로수들중 활엽수들은 이미 잎들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내보이고 있지만 100킬로미터쯤 내려간 속리산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처럼 화려함을 보여준다. 또 다시 100킬로쯤 달려서 닿은 창녕쯤에는 아직 산에 푸른 기운이 성성하다. 그곳에서 30킬로쯤 달려서 도착한 창원은 이제 슬슬 물이 오르는 모습이다. 겨우 4시간의 여행은 이처럼 아날로그적 계절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만든다.


    다행히 창원에서는 일이 일찍 끝이 났다. 이성민 시인에게 전화를 넣어두고 밀양으로 달렸다. 그가 사는 곳은 밀양시 하남면 수산리다. 수산은 내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우리나라 고대의 3대 인공못 중의 하나인 수산제가 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막상 수산에 도착을 해서 전화를 하니 급한 일이 생겨 30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번째 약속도 무산되었었는데 두번째 약속 역시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다. 사람의 인연이란 쉬운것 같지만 어렵다. 서로이 마음을 잘 다스려야 좋은 인연을 만드는 법이다.


    30분에서 4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차안에서 스케치한 그림에 가필을 좀 하다가 답답하여 추억을 찾아 나섰다. 이곳 수산에는 큰 이모님 댁도 있었고, 30리 떨어진 곳에 외가도 있었다. 유년기에는 장날이 되면 외삼촌의 짐자전거 뒤에 실려 자갈이 깔린 신작로를 엉덩이에 가해지는 고문같은 진동을 감내하며 실려왔다. 그렇게 장마당을 내 손을 잡고 도시다가 내복도 한 벌, 운동화도 한 짝, 책가방도 하나 안겨 주시곤 했다. 40년도 넘은 그 세월을 아직 시장 골목은 지키고 있었다. 외삼촌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날이 덜 갈린 바리깡에 머리를 맡기고 눈물을 떨구던 이발관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워낙 신식으로 변해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구포에서 타고오던 버스가 멈추어 쉬던 터미널은 40년전이나 지금이나 겨우 2대를 겨우 댈 수 있었다. 가슴속의 풍경들이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은 살아가다 만나는 행운 같은 것이다. 하루가 몇 초 같은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에 말이다. 한번은 배가 무척 아팠는데 외가의 뒤란에서 몰래 키워 장만한 양귀비 진액도 듣지를 않아 결국 외삼촌의 짐 자전거에 다시 실려 30리 비포장 자갈길을 달려와 외삼촌의 넓은 등에 업혀 올라갔던 터미날 앞 2층 내과병원은 지금은 문을 닫았는지 창문에 40년 세월의 썬팅이 그대로다. 빨간 소방차가 신기했던 유년기의 소년은 장날에 소방서 앞에서 넋을 읽곤 했다. 그랬던 소방서는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여기가 소방서의 옛 건물임만을 흔적으로 남겨놓고 있다.


    20대의 초반에 주제넘게도 무안이라는 사명대사 비석이 있는 동네의 절에서 어린이 불교 지도교사를 한 2년동안 했었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구포에서 시외버스로 수산까지 와서 다시 부곡으로 가는 차를 갈아타고 중간에 다시 한 번 더 갈아타고서야 도착하는 먼 거리였지만 부지런하게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그렇게 순수한 눈망울들을 만난 것도 큰 은혜 였으리라. 아마도 전생에 내가 지은 복이 솔솔했던 모양이다. 그런 길목에는 항상 수산이라는 지명이 버티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남은 것과 없어진 것이 절반쯤 된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반쯤은 남고 반쯤은 사라진…, 그러고 보면 인생은 따져볼 수록 본전이다. 처음 만났지만 살아온 굴곡의 꺾어진 저쪽과 이쪽을 서로 돌아보게 만든 이성민 시인도 굴곡지고 암울했던 세월을 걷고 막 본전을 건진듯 보였다. 내게 남은 절반의 추억을 한 겹씩 넘겨본다.


    추억의 거리에서


    세월은 곡마단 돌아가는 접시같다
    돌리고 돌려도, 그대로 멈춘 것 같은
    멈추면 기우뚱 떨어져 바람이 되는…
    멀리 가버려 남은 흔적이라곤
    전두엽 어디쯤 주름 하나인 듯 했는데
    옛거리 다시 거니는 발끝마다
    민들레 홀씨처럼 풀풀 날리네
    아! 이제 소년은 깨닫네
    곡마단 접시꾼은 멈춘적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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