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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9. 11. 13. 00:51
아침마다 만나는 풍경
김 대 근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는
전봇대 하나가 경계다
부르조아는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알아서 풍경을 만든다
아침마다 만나는 이 풍경에서
나는 어느 쪽에 서야 하는가?
참새가 저쪽에 앉은 건
자리를잡은 걸까? 똥 싸러 간 걸까?
-----------------------------------------------------------------------------------------------은행잎들이 까만 아스팔트와 대비되어 더욱 노랑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좁은 아파트에서 조금이라도 늦게되면 주차하기도 어렵습니다. 모두들 좋은 자리 차지하고 남겨놓은 모서리거나 은행나무 아래거나 둘 중에 하나 뿐이다. 은행나무는 한 그루 뿐인데 이게 숫나무라 은행알이 떨어져 냄새를 풍기거나 하는 일 없는 데도 유난히 이 자리가 인기가 없는 것이다. 어제도 모임때문에 좀 늦었더니 은행나무 밑만 비어있다.
오늘 아침은 아파트 출입구를 통해 매섭게 몰려드는 바람이 제법 차다. 선뜻 문을 열고 나서기가 두렵다. 크게 심 호흡을 한다. 어젯밤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비도 제법 흩뿌렸으므로 차의 앞유리며, 지붕에 달라붙은 은행잎을 떨구어 내려면 제법 몸 고생을 해야 겠다.
출근하는 내내 길가장자리에 수북히 쌓인 은행잎들과 아스팔트의 선명한 대비가 주는 색감이 즐겁다. 빗물들에 몸을 적신 은행잎들은 달리는 차의 관성이 만들어 내는 풍동의 힘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도시는 유난히 은행잎이 많다. 이순신 장군의 성장지와 그를 기리는 현충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벚나무 따위 보다는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전국을 다니다보면 각 지방 자치단체별로 벚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벚나무는 빨리 자라서 그늘을 만드는 가로수로서의 가치외에 봄날의 한때 화려한 풍경을 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은행나무만한 자원이 없다. 벚나무는 목재로서의 가치나 열매의 이용등에 있어서도 열악한 존재이다. 은행나무들이 떨구어낸 노란 잎들이 포도를 굴러다니면 마치 개울물에 노랑 치자물을 풀어 놓은 것 같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새로 도로 공사중인 도로의 깎인 언덕에 달맞이 꽃이 지천이더니 이제는 그 마저도 성냥불 하나면 화르륵 태워버리고 말 만큼 마른 풀섶이 되었다. 공사가 거의 다된 상태로 어제, 오늘 하면서도 개통이 지지부진한게 벌써 1년이 넘었다. 중앙정부(이 말은 서울과 동의어다)에서 지원하는 예산이 찔끔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몇 몇 지인들은 여당정치인이 없어서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이 꺾어진 길을 돌아나오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은 예전에는 가까이 갯가가 있었던지 대원군의 척화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루어진 듯 지금은 공장들이 모여있는 공단과 읍내로 갈라지는 곳이다. 공단으로 통하는 가장 짧은 동선에 위치한 이길로 가장 많은 직장인들이 출근을 한다.
벌써 1년째다. 그들은 두사람씩 교대로 프랭카드를 들고 출근길을 지킨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어제와는 달리 오리털 파카까지 동원했다. 계절이 가는 것을 알려주는 또 다른 지표중의 하나다. 모 제약회사 근로자들인데 노동조합과 사용자간의 갈등이 있는 모양이다. 힘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알리는 것외에 무었이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법이란 지남철指南鐵이다. 항상 플러스극에만 반응하면서 이름처럼 남쪽을 가르키는게 아니라 오로지 오른쪽만 가르킨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플러스극 쪽 아니면 마이너스극 쪽이다. 과학적 개념과는 달리 작용하는게 바로 대한민국의 법이다. 원래 법이란 힘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법이란 인간이 스스로 진화를 했고 또한 앞으로도 진화를 해갈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균형따위는 안중에 없는 법이다.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을 더욱 핍박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추어진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 한다. 그러니 힘이 없는 사람들이 싸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힘있는자의 치부를 물고 늘어지는 일이다.
몇 년 전에 '맷돼지사냥견대회'라는 좀은 특별한 대회가 열렸었다. 호기심도 있고 사진도 좀 찍어야 겠기에 구경꾼들의 틈에 끼었다. 집채만한 멧돼지를 우리에 집어 넣고 나름대로 사냥에 있어서는 명견이라 자랑하는 사냥개들이 전국에서 주인에 이끌려 왔다. 두 마리씩 멧돼지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우리에 집어 넣는다. 멧돼지 앞에서의 용맹성, 공격의 효율성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모양인데 어떤 사냥개는 멧돼지의 도리질 한 번에 거의 5~6미터는 날아가 떨어지기도 한다. 영리하고 노련한 사냥개는 한 마리가 앞에서 주의를 끄는 동안 뒤로 돌아가 불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육중하고 커다란 엄니를 자랑하는 멧돼지도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다. 있는 자들의 아킬레스는 항상 두어개씩 있는 법인데 힘이 없는 사람이 이들과 싸우는 방법은 그 치부를 물고 늘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사냥개처럼 직접 물고 늘어지려니 법이 그들을 보호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도 법을 행사하는 사람도 실상은 그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싸우는 방법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이곳에 자리잡고 억울함이 적힌 프랭카드를 들고 출근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아침 시간은 늘 쫒기듯 가게 마련이어서 알뜰히 눈에 넣을 수는 없지만 자주 보니 그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일들이 자꾸 생기고 상황이 바뀌는 것인지 문구도 자주 바뀌었다.
어제는 그들이 땅에 발을 딛고 팔 아프게 프랭카드를 들고 서있는 옆에 새로운 프랭카드가 높다랗게 걸렸다. 누군가의 아들이 장군으로 진급했단다. 某 동창회 이름이니 두가지 뜻이 있을게다. 하나는 출세한 동문에 대한 자랑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앞으로 가지게 될 권력의 콩고물을 한 점이라도 시식해보겠다는 뜻일 게다. 묘하게도 참새들도 모두 그 쪽 전선에만 졸망졸망 앉아 있다. 대한민국은 부르조아만 인간답게 사는 곳이다. 프롤레타리아도 인간답게 살기는 하지만 대우 받지는 못하는 곳이다.
오늘 뉴스에는 침과 뜸으로 유명한 구당 김남수 선생이 법에 의해 핍박을 받아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는 명의가 왔다고 난리도 아니란다. 우익이라는 기성보수세력이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요, 사대해야할 강국이며, 법이 참 잘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미국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그의 꿈인 의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덜 익은 은행알을 씹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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