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낮술(건강생활 2009년 봄호)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9. 6. 2. 08:47
낮술 한 잔 어때요?
김 대 근
혼자서 가방 하나 들고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는가? 혼자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현대인의 로망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과 소통 해본 적이 있는가? 그 소통의 방법은 무었이었나를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술이다. 이것이 술의 힘을 빌려야만 소통이 가능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둘기'로 불리우던 완행열차로 여행을 한적이 있다. 용산에서 출발한 여해의 시작은 마주보는 의자에 여섯명이 좁게 붙어 앉은채였는데 그중에서 한 사람이 소주 한 병을 내놓자 다른 한사람이 홍익회 수레에서 오징어와 계란을 샀다. 이윽고 술잔이 순서대로 돌고 새로운 술병들이 자리를 늘려갔다. 처음에 술을 샀던 사람이 내리고 새로운 여행객이 합류하여 남은 술 한잔을 받고는 미안한 마음에 또 몇 병을 술을 사는 사이에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이렇게 여행은 항상 새로움과의 소통이다. 새로운 경치를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억양을 만나는 설레임이 여행에 대한 로망을 키우는 것이리라.
요즈음 독립영화들이 부쩍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 시작은 '워낭소리'였고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영화 '낮술'은 사람끼리의 소통에 있어서 우리들이 얼마나 술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외국에 나가보면 그네들은 눈만 마주쳐도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눈인사를 회피하거나 오히려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이런 문화적 풍토에서 '술'이 그 중재적 역활을 하는 것은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지만 선을 살짝 넘는 것이 문제다.
술을 통해 소통하는 우리만의 특유한 문화의 좋고 나쁜점을 모두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은 우유부단 소심남 '혁진'이다. 영화의 시작은 실연당한 혁진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술자리다. 친구들은 술기운에 내일 당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의견을 모으지만 '혁진'은 망설임끝에 동의한다. 그러나 다음날, 강원도 정선 터미널에 도착한 멤버는 달랑 '혁진' 혼자, 술에 뻗은 친구들 때문에 시작부터 꼬여버린 혁진의 여행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래서 술자리에서의 약속은 신빙성이 없다고 알려진 것일까? 결국 혼자서 강원도를 여행하게된 혁진은 여행의 지속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갈등하지만 새로은 사건들과 만나면서 여행을 계속한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것 같았던 '혁진'에게도 여행의 설레임이 드디어 찾아 왔다. 잘못 들어간 팬션에서 발견한 옆방의 미녀, 친구들과 마실려고 넣어온 와인을 들고 옆방을 찾지만 이미 그곳엔 그녀의 남자가 있다. 다음날 '혁진'은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다시만난 팬션녀는 그에게 술한잔을 사달라며 은근히 유혹을 한다. 이런 장면에서 로멘스를 꿈꾸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꿈꾸던 로멘스는 처참하게 깨어지고……
작은 사건들을 만들어가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주인공 혁진과는 전혀 반대인 비현실적인 인물들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뜸 쌍욕을 퍼붓는 란희도 그렇고, 처음보는 혁진에게 담배를 빌리거나 술을 사달라는 팬션녀와 형님 형님하며 달라붙는 그녀의 애인도 비상적이다. 혁진의 몸을 더듬는 트럭운전수도 비현실적인 등장인물이다.
등장인물들은 늘 술잔을 권하고 소심한 혁진을 거절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던 지인이던간에 소통하는 방법이 술임을 알려주는 영화다. 우리들의 비뚤어진 술문화를 영화는 간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하고 술에 의존해야만 하는 이런 현실은 '술'에 대해 너무 관대한 사회 전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술'없이도 세상의 누구와도 소통되는 미래를 꿈꾼다.낮술 (Daytime Drinking, 2008)
[감독] 노영석
[출연] 송삼동, 김강희, 이란희, 신운섭(절주전문잡지 '건강생활' 2009년 봄호 수록)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조지아(Georgia, 1995)』/김대근 (0) 2009.08.20 색깔론 (0) 2009.06.02 미술관 순례-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실 /김대근 (0) 2009.04.05 미술관 순례- 이종무 화백의 당림미술관 (0) 2009.01.14 충무공 이순신의 여자들 (0) 200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