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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순례- 이종무 화백의 당림미술관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9. 1. 14. 08:32
<미술관 순례> 가을 산에 묻혀 그림을 읽다.
(이종무 화백의 당림미술관)
김대근** 당림미술관 전경
** 이종무 화백이 생전에 사용하던 화실풍경
가을은 빛의 계절이다. 단조로운 청록에서 울긋불긋 수많은 색으로 세포분열을 하다가 마치 인간에게 만사귀일(萬事歸一)의 법칙을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 대지의 색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고비에서는 사람도 숨이 가쁜 것처럼 자연도 계절의 끝자락에서는 바쁘기는 매 한가지인 듯하다. 당림미술관으로 가는 길인 아산에서 공주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는 은행나무가 내뿜는 황금빛으로 온통 물들어 있다. 이 39번 국도에서 당림미술관이 빤히 보이는 건널목에서 그는 하늘정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설화산 아래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말년의 예술혼을 불태우던 그는 2003년 5월 26일, 88세를 기념하는 미수전을 준비하며 화집출판일로 서울의 출판사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 자화상(이종무) -그림속 아이는 이 화백의 아들로 지금 당림미술관 관장이다.
그는 우리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당림(棠林) 이종무 화백이다. 191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우리나라의 첫 서양화가인 고희동 화백에게서 사사했다. 1941년 동경동방미술학원을 졸업하고 동경미술가 협회전등에 참가했다. 1955년부터 66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길러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미술계 발전을 이끌어 왔다. 1950년 이후 국내외에서 20여회의 개인전을 열어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종무 화백의 작품세계는 “황토의식에 집약된 미의 순례”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그가 출생지인 아산으로 돌아와 자연에 묻힌 노년기의 작품들에서는 흙냄새가 강하게 풍겨 나온다. 대부분 미술가들의 작품세계가 나름대로 변모를 거듭하듯 이 화백의 작품세계 역시 크게 나누어 3번의 변화를 거친다. 사실적 양식을 추구한 초기의 작품세계는 장년기에 접어들면서 추상적인 면모를 보이다가 노년기에는 다시 구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추상화를 추구하던 중기를 제외한 대부분 작품이 인물과 풍경이 주제다. 그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캔버스에 옮기는 매개자이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 떠도는 방랑자이기도 했다. 우리가 들숨과 날숨처럼 편안하게 생각하여 미처 발견하지 못하던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는 한 올 한 올 캔버스에 엮어내었다. 특히 이종무 화백은 만년에 산(山)에 몰두했다. 1975년경부터 하늘 정원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의 산에 대한 애착은 이어졌다.
來年이면 米壽가 되니 꿈만 같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할 터인데 그저 후회 없는 餘生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力動하는 생활보다는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黃昏의 자연처럼 조화로운 여생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다. 거짓 없는 신비로운 대자연을 벗 삼아 그 속에 파묻혀 자연을 讚美하며 살련다. 끝없는 아름다운 自然風景을 내 마음에 담아 표현하며 평화롭게 살련다. 深奧하고 神秘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놀라운 마음으로 표현코자 心血을 기울여 가고 있다. (故 이종무 화백 작가수첩 중 발췌)
그의 작가수첩 메모에서 만년에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염원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종무 화백의 작품 앞에 서면 자연으로 가는 길이 스르르 열린다. 그 길의 끝에 황토빛 담이 사람의 길을 만들고 산이 따스한 복사열을 뿜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든다. 사실 당림 미술관에 전시된 이종무 화백의 작품은 150이지만 이 화백이 중요한 작품들 100여점은 그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기증되었기 때문에 이종무 화백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고려대학교 미술관도 방문해야 한다. 최근에 고려대학교에서는 이종무 화백 기증전을 열기도 했다. 인물화와 정물화도 몇 점 감상할 수 있는데 추운 겨울이나 풍경을 그릴 수 없는 여건일 때 주로 실내에서 그린 작품이다. 그 중에 이종무 화백 자화상에 눈길이 머문다. 붓을 들고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자화상의 배경에 문틈으로 화실을 넘겨보는 개구쟁이를 슬며시 끼워 넣고 있다. 이 화백의 둘째아들로 현재 당림미술관의 관장인 이경렬 씨이다. 이경렬 씨에게 이곳은 부자간의 추억이 갈무리된 공간인 셈이다.
이종무 화백이 호는 당림(棠林)인데 아가위, 즉 산사자(山査子) 열매라는 말이다. 아가위라는 산사자 나무의 열매는 둥글고 맛은 시며 껍질은 단단하다. 당림(棠林)은 일중(一中) 선생이 지어준 이종무 화백의 아호인데 여유가 있으면서 자신에게 엄격한 화백의 인격이 “아가위”에 담겨있다는 의미이다. 미술관 2층에는 이종무 화백이 생전에 쓰던 화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커다란 뿔테 안경부터 유화물감이 아직도 묻어 있는 팔레트, 단아한 매력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한 부인의 초상화 등이 흐른 세월의 흐름을 막고 있는 방주마냥 버티고 있어서 화백이 호흡이 느껴진다. 화실의 테라스로 내어다 보이는 풍경이 또 다른 그림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산 쪽으로는 아산의 명산인 설화산을 향한 솔숲사이로 고즈넉한 산길과 시내 쪽으로 넓은 뜰에 그득하게 익어가는 벼의 황금빛이 한 폭의 풍경화가 되는 곳이다.** 과수원(이종무)
**풍경(이종무)
어느 때부터인가 이 땅에서 예술의 세계에서 우리 미술, 우리 노래, 우리 문학이 백안시 되고 우리 강토의 아름다움이 경시되는 풍조가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강토의 아름다움에 천착한 이종무 화백이 그립다. 세상의 빛들이 황토의 빛깔로 귀일(歸一)하는 가을의 언저리에서 그의 그림 앞에 서서 길을 찾아보자. 그 길이 끝나는 또 다른 세상에 닿고 싶다.** 계간 『문학미디어』2008년 가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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