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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순례-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실 /김대근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9. 4. 5. 20:05
<미술관 순례> 그녀의 고독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실)
김 대 근
서울시립미술관은 작품을 기증한 천경자 화백을 기려 별도의 전시실을 두고 있다. 이곳에는 천화백의 미술작품외에도 육필, 저서, 소소하게 손때 묻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천화백의 모든 것을 느낄수 있다. 20대의 초반에 작은 표지그림으로 만나 가졌던 강렬함은 50대 초반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빛깔이었음은 그녀의 그림이 가진 힘이 여전히 넘쳐난다는 것이리라.
그녀는 자신의 전생이 황후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녀시절 “천옥자”라는 본명을 두고 스스로 “경자”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 개명의 덕일까? 그녀는 마침내 “경자”라는 이름을 당대최고의 여류화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 시절이야 여자에게 소학교도 사치일 정도로 전통적 가치로 무장되었던 때였지만 교육과 문화에 열린 사고를 가진 환경 덕분에 광주에 유학하여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림을 배우고자 동경유학을 계획했다. 당시의 대부분 여성이 그렇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이미 혼담이 들어온 상태였으니 집안에서는 반대가 극심하였다. 천 화백은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다. 미친듯이 깔깔대며 웃다가, 울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중얼대며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처럼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으로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오를 수 있었다. 동경여자 미술학교에 유학하던 중에 만난 사람과 귀국 후 결혼을 했지만 일찍 사별하고 말았다. 신문기자와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곧 이혼하게 되었다. 이런 개인적인 불행들은 그녀의 가슴속에서 진주로 영글어 영원히 타오를 예술혼으로 남았다.
18년 동안 몸담았던 홍익대학교 교수직을 박차고 1974년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방랑은 유럽,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으로 이어진다. 그런 여행들에서 강렬하고 짙은 원시적 색채와 자연과 동화된 인간에 대한 인상을 작품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1991년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의 『미인도』에 대한 진품 시비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많은 감정사들과 미술가들은 진품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미술관 측에서도 진품이라는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일로 큰 상처를 받은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 시립 미술관에 기증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 일이 있은 후 범인이 밝혀져 당시 천 화백의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천 화백의 그림주제는 뱀, 꽃, 그리고 여인이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성서의 원죄에 서로 잇대어 있어서 그림 보는 재미가 있다. 어쩌면 시대의 전환기에서 삶을 살아온 천 화백의 내면에는 여자로서의 한계적 모순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혼의 잇단 실패로 좌절을 맛보며 그녀가 선택한 소재는 “뱀”이었다. 전남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뱀에 대한 이미지를 탄생시키고 몰두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부산에서의 피난생활 중에 자신이 그린 뱀 그림을 전시하였고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뱀을 그렸다’라며 신기해했다. 이일로 “천경자”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뱀의 이미지는 인간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욕망이다.또 뱀은 숙명적 업을 지니고 태어난 슬픔의 존재이기도 하다. 화가 자신의 완전성에 대한 갈망이 뱀으로 표출되었다. 천 화백이 뱀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물 캐러 갔던 동네 소녀가 허리띠인 줄 알고 집었는데 그게 꽃뱀이어서 물려죽은 일이 있었어요.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끌리는 그 장면이 어릴 때부터 머리에 남아 언젠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지요. 그러나 내가 처음 그린 뱀은 꽃뱀이 아니라 한 뭉텅이의 푸른 독사였어요.”
천 화백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다루어지는 이미지가 꽃과 여자이다. 사실 꽃과 여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일반화된 관념이다. 그러나 천 화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꽃과 여자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처연하기도 하고 슬프고 고독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천 화백은 슬픔과 고독을 잘 버물러 화폭에 담아 놓았다. 꽃의 과한 아름다움은 여자의 슬픔이 상쇄하고 있고 여자의 고독은 꽃의 이미지가 조금 흐려 놓는다. 절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시詩에서 관념어는 시를 늙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념어를 가능하면 배재할 것을 주문하는데 천 화백의 그림에서는 관념이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천 화백의 그림 한 점은 한편의 시詩다.천 화백의 작품중
【청춘의 문(1968)】이 작품은 화가로서의 천경자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여럿중 하나다. 회색빛 얼굴의 여인은 죽은 사람인 듯싶기도 하고 꿈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꿈속의 또 다른 얼굴 같기도 하다. 게다가 그림 속 그녀는 분명 한국의 여성은 아니다. 천 화백이 생각하는 어디 먼 곳을 향한 동경의 표현이고 자신을 투영한 또 다른 천경자인 듯하다. 이 그림의 제목이 청춘의 문임을 염두에 둔다면 그녀가 꿈꾸는 이상형의 자신, 닮아가고 싶은 모델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거울을 보기가 싫어진다. 내가 젊었을 때 상상해보던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내가 통과했던 청춘의 문 앞에 걸린 자화상도 회색빛이었다. 이제는 천 화백이 청춘의 문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을 그린 모습을 보고 싶다.
【고孤 (1974)】
세상을 풍요하게 산 탓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절절한 외로움에 몸부림쳐본 일이 별로 없다.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실연으로 인한 상처가 오랫동안 가슴속을 자리 잡고 있었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흐르는 세월에 씻기고 말았다. 그림속의 그녀는 너무 아름답다. 머리에 가득 꽂혀있는 꽃은 이 여인의 아름다움에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과 색깔 짙은 입술은 공허한 슬픔을 전해준다. 차라리 시선을 정면으로 했더라면 스치고 말 일이지만 멍하니 한쪽을 응시하는 눈빛은 마치 큰 회색의 벽을 앞에 둔 답답함을 일깨운다. 고독한 눈빛의 여자는 남자가 애써 숨겨둔 비장의 무기인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턱밑에서 나비가 팔랑대건만 그녀의 무심은 극에 달했다. 저 외로움은 천 화백 자신의 외로움을 덧입힌 것이리라.
【황금의 비 (1982)】
우주에는 블랙홀이라는 공간이 있다. 모든 것들을 암흑의 공간으로 빨아들이는 공간이다. 공간마저도 이곳으로 빨려들어 간다고 한다. 그림속의 갈색피부의 여인,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으면 두 눈에서 흩뿌려져 나온 프랙탈 도형들이 나를 부양시켜 그림너머의 공간으로 빨아들일 것 같다. 황금색 꽃들이 비처럼 내리는 공간속 주인인 그녀의 눈빛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 온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꿈을 지배하는 우회의 수법으로 남자를 옭아맨다. 그녀의 눈은 그녀에 대한 기억을 강요하는 듯하다.
천 화백의 작품 중 걸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 많지만 지면의 한계로 세작품만 소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작품을 기증한 천경자 화백을 기려 별도의 전시실을 두고 있다. 이곳에는 천 화백의 미술작품 외에도 육필, 저서, 소소하게 손때 묻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천 화백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봄이 온다. 봄이 오면 천 화백의 그림 소재인 꽃이 지천으로 피고 뱀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턱을 한껏 벌릴 것이다. 여자도 봄에는 들뜨게 화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그 길모퉁이에 한발 디뎌 그녀의 고독을 만나러 떠나 보는 건 어떨까?
<문학미디어 2009년 봄호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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