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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깔론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9. 6. 2. 14:45

                   색깔론

                                                           김대근

     

    서민대통령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란색 물결을 타고 영면의 길로 떠나갔다. 그는 살아생전 빨강색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분이다.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은 그에게 빨강색의 오물을 던지고 빨강색의 화살을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노란색으로 빨강색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의 노란색은 이제 MB의 콤플렉스가 되었다. 그들은 노란색만 보면 간질 환자처럼 발작을 일으키고 만다. 경복궁 영결식이 열린 날은 여름 말씨로 제법 더워서 검정색옷은 피부의 모공을 열어놓기에 적당했다. 이날 입장객 몇몇은 땀을 훔칠 요량으로 경복궁 입구에서 나누어준 노란색 수건을 받아들었다가 이내 압수당했다고 한다. 노란색은 시위의 우려가 있어서 안 된다는 이유였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해방이후 우리 주변에는 늘 “색깔론”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지위가 높으신 분들은 대개 까만색을 즐겼다. 옷도 구두도 양말도 차도 까만색이어야 부티가 나 보였다. 하얀색은 서민의 색깔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온 나라가 걸레가 되고 난 이후에는 빨간색이 검정과 하양사이에 끼어들었다. 권력을 움켜쥐고 유지하려는 측에서 찾아낸 보도寶刀가 빨강색이었다. 국민들의 시선을 묶어 놓기에도 좋았고 적을 역사에서 패대기치는데도 자주 사용되었다. 이념전쟁의 와중에 밥 한 끼 제공한 사람, 총의 위협에 등짐으로 산채에 다녀온 사람은 모두 ‘부역자’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그 빨강색의 위력은 대단해서 사돈의 팔촌까지 사관학교나 고위직 공무원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탈 수가 없었다.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우리 역사에 있었던 하나의 흔적이다.

     

     

    우리나라에 칼라 텔레비전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색깔들이 사회의 여기저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파랑색도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역대 보수정당 깃발의 바탕은 대부분 이 계열이다. 빨강에 대응하는 색깔로 파랑색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빨강색이나 오렌지색의 보색은 녹색과 파랑이다. 보색끼리는 서로 어울려야 산뜻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이념의 세계에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색깔은 남과 나를 구별하고 끼리끼리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사용한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그룹들의 공연에는 추종하는 팬들끼리 정해진 자기들만의 풍선으로 결속을 다짐한다.

     

     

    2002년 월드컵 서울은 몇 십년동안 우리를 짓눌러왔던 빨강색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게 했다. 축구의 힘을 빌어 우리는 빨강색의 성찬을 마음껏 즐겼다. 빨강색도 즐겨보니 나름 좋은 색이란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간판의 여기저기에 빨강색이 사용되었고 빨강색 차들이 거리를 질주했지만 보수의 새장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몇몇을 제외하고 이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색깔은 한문의 ‘색色’과 상태 또는 바탕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깔’이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억지로 풀어 맞추자면 현재 인식되는 색의 상태나 바탕을 말한다. 인식된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눈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두뇌가 가공하는 단계에서 인식의 영역을 확대하여 전체화하는 경향이다. 전제를 미리 인식시켜두고 서서히 그쪽으로 마음을 이끌어 가는 최면과 같다고 해야 할까. 노동운동, 민중운동, 촛불 같은 용어만으로도 빨갱이를 연상하는 극히 일부 보수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역대 보수층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세워진지 겨우 200년밖에 안된 이 나라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로 성장한 것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비빔톤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비빔은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빨강색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사상이 자유스러운 나라라는 것은 최면효과일 뿐이다. 미국도 공산주의가 있었고 FBI를 앞세운 미국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미국에서 공산주의 종언을 고했다. 이쯤되면 자본을 무기로 세계경찰 행세를 하는데 자유의 여신상은 하나의 포장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가끔 색깔과 빛깔을 혼동한다. 세상의 모든 색을 섞으면 까만색이 된다. 반대로 세상의 모든 빛을 섞으면 하얀색이 된다. 사람에게는 ‘구리빛’, ‘낯빛’, ‘얼굴빛’ 등으로 주로 빛을 많이 쓴다.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이 ‘빛깔’이다. 가령 웃는 얼굴에서는 즐거움이 풍겨 나온다. 시각적인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표상이 하얀색으로 내리 물림한 것은 세상의 모든 빛깔을 섞어 놓으면 하얀색이 된다는 조상들의 가르침이다. 사람을 볼 때는 빛깔로 보자. 잘났건 못났건, 이쪽이건 저쪽이건 모든 빛깔들이 섞이어 무채색의 세상을 이루는 것은 백일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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