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행시- 장미란(가을 난수표)삼행詩 2008. 8. 19. 17:03
가을 난수표
장롱밑 가을이 찌륵찌륵 울어댄다
미처 보내지 못한 여름 커텐에 걸렸는데
난수표, 가을의 소리 마음을 할퀸다--------------------------------------------------------------
같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임에도 한쪽은 늑대의 모양을 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으로 배웠던 적이 있었다. 조금씩 머리가 한 여름 수박처럼 익어가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쌀밥을 먹고 된장찌게를 먹는 것을 알았다. 남의 탓으로 남과 북으로 갈리워져 서로 다른 이념의 엑기스를 주입당하며 조금씩 세뇌당한 결과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이질적 존재가 되고 말았다.고등학교 2학년때 였을 것이다. 공고 기계과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전파상을 만났고 그곳에서 광석 라디오 조립키트를 샀다. 로케트 모양의 이 라디오를 조립하고 잡음과 함께 들려온 소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이후로 라디오 조립 편력이 계속되다가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구입한 라디오가 소니제 단파라디오 였다. 단파라디오 청취를 취미로 하는 것을 BCL 이라고 하는데 당시에 단파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다 보면 간간히 북한방송이 잡히곤 했다.
당시에는 남북대결이 첨예화 되어 있었고 우리측에서 보냈는지 모르지만 북에서 보냈다는 간첩들은 많았다. 그 시절에 삼천만원이라는 거금이 상금으로 내걸렸는데 간첩을 구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새벽에 산에서 내려오는데 구두를 신고 있거나 양복을 입고 있다.
요즘 같으면 나같은 사람은 신고 당하기 십상이다. 출장으로 자주 멀리 떠나고 새벽에 잠이 깨면 주변의 논두렁을 양복 입고 구두 신은채 산책을 즐기니 말이다.
2)담배값을 모르거나 시내버스 요금을 잘 모르는 사람.
이 항목도 나는 간첩에 해당된다. 담배를 일절 입에 대지 않는 내가 담배값을 알리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어떤 담배가 국산인지 외산인지 구분도 잘 안된다.
3)심야에 몰래 단파라디오를 듣는 사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미국의 소리(VOA)', 'NHK한국어 방송'들을 애청했으니 만약 누군가가 신고를 했더라면 나는 영락없이 간첩으로 조중동의 1면 머릿기사로 역사에 남을뻔 했다. 그러나 워낙 몰래 들었기 때문에 여즉 잘 살고 있다. 이 단파방송에 대한 관심은 나중에 아마추어 무선사라는 또 다른 세계에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가끔씩 주파수를 돌리다 보면 "지금부터 평양 모란봉에서 영순이 아버지가 남산밑에 사는 영순이 삼촌에게 보내는 전문입니다. 23670 32875 45997 …… " 등의 북한 방송이 들리곤 했는데 이 숫자들이 암호였다. 각 숫자는 낱말이나 알파벳에 대응되었고 이를 해독하려면 난수표(亂數表)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당시 간첩을 잡았다는 방송이나 신문사진에는 증거로 난수표가 빠지지 않고 있었다. 난수표는 특정한 사람과의 특별한 소통의 도구였던 셈이다.
며칠 비가 오더니 하룻사이에 이불을 덮고 자야 할 만큼 찬바람이 돈다. 귀뚤귀뚤 귀뚜라미가 운다. 귀를 쫑긋거려 보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저 녀석과 나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 난수표는 없을까?
'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행시- 이파리(취기빼는 중…) /김대근 (0) 2008.09.06 삼행시- 이파리(코스모스) /김대근 (0) 2008.09.06 삼행시- 바위섬(해당화) /김대근 (0) 2008.07.29 삼행시- 도연명(자귀꽃) /김대근 (0) 2008.07.21 삼행시- 요일제(충의백일장 다녀와서) /김대근 (0) 2008.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