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안테나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8. 7. 22. 18:42
<수필>희망 안테나
김대근
한 달에 한 번 모여 한 가지 이야기로 집중되는 곳이 아마추어 무선을 취미로 하는 동호인들 모임이다. 요즈음 화제의 축인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도 대운하 이야기도 힘을 못 쓰고 그저 모이면 무전기와 안테나의 이야기가 화제의 전부를 이룬다. 누구는 며칠 전 미국하고도 교신 했다고 하고 또 누구는 스리랑카하고 교신 했느니 등등,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자연 이야기의 화제 자체가 같은 방향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공시청 안테나는 방향을 잘 맞추어야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전파의 방향을 잘 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이렇게 방향에 따라 전파의 질이 달라지는 안테나를 지향성 안테나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에도 이런 지향성 안테나가 있어서 자신과 잘 맞는 파장에는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 따라서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편 안테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안테나는 색(色)과 질량…, 이렇게 형체를 가지는 선(線)이나 면 등의 매체를 통하지 않고 타인(他人) 또는 다른 세계와의 교감을 이루는 통로이다. 사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안테나와 접하게 된다.제일 일반적인 것이 누구나 하나씩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다. 이것도 작은 안테나를 통해서만이 다른 사람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물론 요즈음 신제품들은 안테나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에는 작은 안테나가 숨겨져 있다. 차를 타고 라디오를 켜면 솟아오르던 안테나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뒷유리에 선(線)의 형태로 인쇄되어 여전히 남아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안테나는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안테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소통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안테나는 교감의 통로이다. 아마추어 무선사의 안테나는 같은 아마추어 무선사들끼리 교감을 나누는 통로이며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안테나는 개인과 사회대중이 나누는 사회적인 교감의 도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교감의 안테나는 미소이다. 우리가 가진 인체의 장기나 신체의 어느 부분도 미소만큼 효율이 좋은 안테나도 없을 것이다. 마주 나누는 눈빛에도 미소를 담느냐 아니냐에 따라 지향(指向)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러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미소는 그 파장의 힘이 덜하다. 상대편에게 도달하기 전에 소멸되고 말 것이다. 진심을 담은 미소야말로 상대의 깊은 내면의 파장과 공진(共振)하는 힘이다.
희망 안테나도 있다. 아침밥도 챙겨 먹지 못하고 집을 나서서 새로운 새벽에나 집에 들어오는 자식들을 보면 측은지심이 드는데 이건 아니라 하면서도 다들 그렇게 하니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미래와 교감을 나누는 희망의 안테나임에 틀림이 없다. 부부가 공동으로 희망의 전파를 쏘아 올리는 미래의 안테나…, 그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나는 종교를 떠나서 고즈넉한 절을 무척 좋아한다. 절에 가면 이끼 낀 기왓장 담벼락에서 천년 전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안테나다. 구름 낀 하늘과도, 파란 하늘과도, 담 넘어 감나무와도 잘 어울리면서 바람이 센 날은 센소리를, 잔잔한 날은 잔잔한 소리를 내는 풍경소리야말로 내가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풍경은 자연교감 안테나이다.
인간의 세계를 넘어서 또 다른 세계와 교감하는 안테나도 있다. 길 가다가 만나는 무당집 입구에 높이 솟아있는 대나무는 그 무당과 주파수가 상통하는 영혼세계와의 교감통로이다. 그 끝에 매달린 수많은 수박 풍선이며 울긋불긋한 천 조각들은 어쩌면 그 무당이 영계로 보내는 주파수의 표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휴대전화가 특정번호와 서로 상통할 수 있는 것처럼 ○ ○동자, ○ ○보살, ○ ○장군 등등 저마다 영혼세계와 딱 맞는 주파수를 서로 공유한다는 표지일 것이다. 주파수가 맞지 않아도 다른 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교감도구가 교회의 십자가요 절의 불상일 것이다. 교회의 십자가가 메시아와의 정신적인 교감도구인 안테나라면 절의 불상은 자기 자신과의 교감 안테나이다. 불상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내면과 교감하는 안테나 인 것이다.
안테나도 세월이 가고 바람을 많이 맞다 보면 퇴락을 하여서 여기저기 전파가 새어나가 소위 효율이라는 것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새로 부품을 갈고 방수액도 발라주고, 어떤 부위는 멍키스패너로 좀 더 조여주어야 효율도 좋고 새는 전파로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이것처럼 나의 주위를 둘러싼 많은 안테나를 손질해 주어야 한다. 오늘 나는 어떤 안테나를 손볼까나? 그래 그동안 소홀했던 아이들…, 좀 늦게 자더라도 깨어서 맞이해야겠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려 주어야겠다.
오늘은 희망안테나 손질을 좀 해야겠다. 더 세월이 가기 전에……
<월간 한국수필 통권 제161호 2008년 7월호 수록>'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무공 이순신의 여자들 (0) 2008.12.09 수필- 넘겨진 페이지의 활자 /김대근 (0) 2008.10.18 1박 2일 봄꽃여행記 (두레문학 상반기호) (0) 2008.07.15 마누라 /김대근 (0) 2008.06.24 실상과 허상 (0) 2008.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