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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
    우표로 만나는 문인 2008. 7. 10. 08:49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1564.4.23~1616.4.23)
    영국의 시인.극작가

     

     
    생애


    잉글랜드 중부 소읍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교구기록에는 그가 1564년 4월 26일 세례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날짜를 기준으로 당시 관습을 참조하여 2, 3일 앞선 4월 23일을 생일로 본다. 또한 그의 사망일이 공교롭게도 4월 23일이다. 아버지 존은 이 고을 유지로서 상공업에 종사했으며 1568년에는 읍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어머니인 메리 아든은 인근 마을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이며 약간의 농토까지 상속했다고 하므로 존에게는 신분상승을 이룩한 결혼이기도 했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세가 기울어 그의 교육은 그래머 스쿨로 끝나고 대학 진학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트랫퍼드의 그래머 스쿨은 훌륭한 교육을 제공했고 그 내용은 주로 라틴어 문학과 고전문헌 연구였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대학진학의 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셰익스피어의 학식과 교양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으며 그가 시인·극작가로서 성공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18세에 결혼했다. 장소와 날짜는 분명하지 않으나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스트랫퍼드 거주의 앤 해서웨이 사이의 결혼을 공고하는 1582년 11월 28일자 보증인 연서의 문서가 남아 있어 그가 8세 위인 앤과 결혼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기록으로는 딸 수재나의 출생(1583), 쌍둥이 남매 햄릿과 주디스의 세례(1585) 등이 문서로 남아 있다. 결혼 후 런던의 연극계 기록에 이름이 나타날 때까지 8년간 그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인근에 사는 귀족 토머스 루시의 정원에서 사슴을 훔치려다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든가, 시골학교의 선생이었다든가, 런던에 나가 처음에는 극장에서 손님이 타고온 말을 돌보는 막심부름꾼을 했다든가, 어느 귀족의 부하가 되어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에서 졸병노릇을 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 사실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1592년 비로소 런던 문학계에 그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타난다. 극작가 로버트 그린이 죽음의 병석에서 쓴 소책자 가운데 명백히 그를 두고 비방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다. 그린이 죽은 후 이 책이 출판되자 서문을 쓴 사람이 사과하는 내용을 담아놓은 것을 보면 오히려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인·극작가로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고, 유력한 문학적 후원자이며 그가 2권의 시집을 출판하며 헌정한 바 있는 사우샘프턴 백작과 이미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연극계 경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594년경부터 극단 '체임벌린스 멘'(제임스 1세 즉위 이후로는 '킹스멘'으로 개칭)의 주요단원이 되었으며 그 관계는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계속되었다. 당대 영국 연극을 대표하던 이 극단은 으뜸가는 배우 리처드 버비지, 최고의 글로브 극장, 가장 뛰어난 극작가 셰익스피어 등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20년 이상을 전속작가일 뿐만 아니라 극단의 공동경영자로 있으면서, 또 틈틈이 배우까지 하면서 40편에 이르는 희곡과 시집을 펴냈다. 그의 사생활을 말해주는 기록은 극히 드물다. 다만 1596년에 아버지 존이 가문(家紋) 사용의 허가를 관계당국에서 얻었는데 신분상승을 말해주는 이 일은 틀림없이 셰익스피어의 도움으로 가능했을 것이며 다음해 고향의 대저택 뉴플레이스를 구입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색인 : 문장). 이런 일들은 그가 세속적으로도 성공한 일면을 나타내주며, 견실한 생활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도 현존하는 약간의 재산 취득에 관계된 서류 대부분이 고향 스트랫퍼드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런던 극계 은퇴 후의 고향생활을 항상 염두에 두었고 자녀를 위해서도 그곳을 본거지로 삼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서류들은 쌍둥이 아들 햄릿의 죽음(1596), 아버지 존의 죽음(1601), 총애하던 딸 수재나의 결혼(1607) 등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죽기 훨씬 전에 그는 고향에 돌아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남아 있는 유서는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중 아내와의 소원한 관계를 추측하게 하는 대목도 있으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사후 7년 뒤인 1623년 극단동료인 존 헤밍과 헨리 코델이 편집을 담당해서 희곡 전집이 발간되었다. 전지(全紙) 2절 판의 대형본인 당당한 규모는 생전의 명성과 인기를 말해준다. 책머리에 실린 동판화 초상은 그가 묻힌 스트랫퍼드 교회 안의 흉상과 더불어 많은 그의 초상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참고


    작품과 시대구분


    (1) 제1기: 습작시대

     선배배우의 영향을 받은 시대로 3부작 역사극 [헨리 6세]를 그의 처녀작으로 보고 있다. 그 속편에 해당하는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에 많은 영향을 준 요크가와 랭커스터가의 싸움인 장미전쟁(1455-85)의 최종단계를 그린 것으로 주인공 리처드 3세를 창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의 작품을 번안한 [실수의 희극]과 익살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당시 인기있던 유혈비극의 로마 사극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등이 초기작품이다. 1592년부터 3년에 걸쳐 런던에 유행한 페스트 때문에 극장은 폐쇄되었고, 셰익스피어는 그동안 2편의 서사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을 사우샘프턴 백작에게 바쳐 그로부터 인정받았다. 극장이 폐쇄된 후 런던극단의 대규모 재편성은 그에게 유리한 기회를 제공했고, 그는 평생 이 극단을 위해 희곡을 쓰게 되었는데 최초의 작품은[로미오와 줄리엣]이다.

     

    (2) 제2기: 역사극과 희극의 완성기

     1590년대 후반, 인간에 대한 통찰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리처드 2세]: 시인기질이 있으며 자기도취적인 국왕이 수많은 고난을 겪고 비극의 주인공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극.

    [한여름 밤의 꿈]: 아테네 교외에서 밤의 숲을 무대로 환상의 세계를 그린 낭만적인 희극. [헨리 4세]: 대표적인 역사극으로 리처드 2세한테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성립한 헨리 4세 치하의 음모와 혼란의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방탕생활을 하는 무뢰한이자 늙은 기사 폴스테프는 햄릿과 함께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성격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핼 왕자와 함께 벌이는 만행은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18세기 이래 셰익스피어의 성격론의 중심이 되어왔다.

    [베니스의 상인]: 감미로운 연애희극 속에 욕심 많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등장시켜 사회통념에 따라 악인의 운명을 겪게 하면서도 소수 피압박민족의 슬픔과 분노를 강하게 호소하여 인간에 대한 온정과 공정한 사회의 관찰의 시각을 보여준다.

    [뜻대로 하세요]: 아덴 숲을 무대로 궁정에서 쫓겨난 공작과 가신의 전원목가적인 생활이 배경이 되어 젊은 남녀의 연애를 낭만적으로 그린 걸작 희극이다.

    [십이야]ㅣ: 1600년 무렵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 최고의 희극으로 평판이 높다. 작품 전체가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분위기와, 익살. 재담. 해학 등 희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십이야]를 전후하여 셰익스피어는 로마의 역사에서 소재를 얻어 [줄리어스 시저]를 썼는데, 이때부터 몇 년간을 비극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제3기: 4대 비극의 탄생시기

     복수의 비극을 그린 [햄릿], 질투의 비극을 그린 [오셀로], 야심의 비극을 그린 [맥베스], 어리석음의 비극을 그린 [리어왕]등이 있다.  이 4대 비극은 각각 소재도 다르고 다루는 방법도 다양해서 4대비극에 대해서 반드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간의 장대하고 비극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죽음과의 관련에서 인간적인 가치탐구'를 시도하여 세계 연극사상 최고의 비극을 창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셰익스피어는 비극뿐만 아니라 [끝이 좋으면 다 좋지]와 같은 희극도 썼는데, 결말이 희극적이지만 줄거리를 억지로 끌고간 부자연스러움과, 작품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도덕성에도 혼미함이 보여 문제희극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 마지막 비극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등이 있다.

     

    (4) 제4기: 전기극의 시대

     폭풍우가 지난 다음의 체념과 화해의 심경을 반영한 전기극의 시대로 [겨울밤 이야기] [템페스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시집으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죽음]이 있다. 특히 시집 [소네트 집]은 154편으로 된 14행시로서, 정묘한 서정 속에 그의 내면생활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어 영국 소네트의 정화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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