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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르 [Tagore, Rabīndranāth, 1861.5.7~1941.8.7]
    우표로 만나는 문인 2008. 7. 7. 18:05

    타고르 [Tagore, Rabīndranāth, 1861.5.7~1941.8.7]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우리에게 정말 친숙한 시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가 동북방의 작고 불쌍한 나라를 위해 읊어준 이 시는 그가 남긴 한국을 소재로 한 두편의 시 가운데 하나다. '동방의 등불' 과 '패자(敗者)의 노래'가 그것인데 '패자(敗者)의 노래'는 최남선의 요청에 의해, '동방의 등불' 은 타고르가 1929년 일본에 들렀을때 동아일보의 기자가 한국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을 담아 동아일보에 기고한 작품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주요한 옮김. 1929.4.2)


    타고르는 인도의 시인으로 1861년 캘커타에서 태어났다. 벵골의 명문가에서 아버지 데벤드라나트의 15명의 아들 중 열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문의 전통에 힘입어 11세경부터 시를 썼고, 16세 때 처녀시집 《들꽃》을 출판하여  벵골의 P.B.셸리(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라 불리웠다. 1877년 영국에 유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며 유럽 사상과 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인도로 돌아온 후 벵골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동시에 스스로 작품의 대부분을 영역했으며 산문·희곡·평론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하여 인도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초기에는 유미적(唯美的)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으나 1891년 대지주였던 부친의 명령으로 농촌의 소유지를 관리하면서 농촌개혁에 뜻을 두면서 작풍에 현실미를 더하게 되었다. 아내와 딸의 죽음을 겪고 종교적 색채가 짙어 졌으며, 1909년에 출판한 시집 《기탄잘리 Gī tāñ jalī》로 1913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문화의 융합에 힘썼고, 캘커타 근교에 샨티니케탄(평화학당)을 창설하여 교육에 이바지하였으며 벵골분할 반대투쟁 때에는 벵골 스와라지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세운 학당은 1921년에 국제적인 비스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는 국립대학이 되었다.


    시집에 《신월(新月) The Crecent Moon》 《원정(園丁) The Gardener》(1913) 등, 희곡에 《우체국 The Post Office》(1914) 《암실의 왕 The King of the Dark Chamber》(1914), 소설에 《고라 Gorā 》(1910) 《카블에서 온 과실장수》, 평론에 《인간의 종교》 《내셔널리즘 Nationalism》(1917) 등이 있다. 벵골 지방의 옛 민요를 바탕으로 많은 곡을 만들었는데, 그가 작시·작곡한 《자나 가나 마나 Jana Gana Mana》는 인도의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M.K.간디와 함께 국부(國父)로 존경을 받고 있다. (네이버 검색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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