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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詩- 마중물(남해/물맛 좋은 산사) /김대근삼행詩 2008. 6. 24. 13:10
남해
마늘종 발끝 들어 바다빛 물들고
중나리 고운 단장 산 향기를 전한다
물보라 제 몸 일으켜 하루를 여는 섬물맛 좋은 산사
마짓밥 멀었는가, 발돋움을 해보다가
중천을 가로 넘는 햇살에 등이 밀려
물맛만 가득 채우고 돌아나온 산문山門
마수걸이 해달라는 산채장수 주름에
중모리 장단이 한 가닥 흘러나와
물뽕을 한 줌 집다가 마주 보고 웃었다
*마짓밥: 부처에게 올리는 밥. 대개는 쌀을 올리고 예불한후 이 쌀로 밥을 지어 점심공양을 한다
*물뽕: 비에 젖은 뽕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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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은 마중하는 물이라는 뜻이다. 옛날 우물물을 긷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이 손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펌프였다. 이 펌프를 통해 물을 긷기 위해서는 작동하기 전에 한바가지의 물을 부어야 했다. 이 한바가지의 물이 마중물이다. 엄마는 특별히 마중물을 귀히 여겨 우물옆 단지에 담아두고 썼다. 어릴쩍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 단지에 담겨진 물 한 바가지를 펌프에 붓고 손잡이를 아래위로 작동하면 시원하게 쏟아지던 물…
버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는 마중물의 진리는 가슴에 새길만 하다.
마중물이 있어야만 물을 길을수 있었던 펌프에 대한 추억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니 어언 40년에 육박하는 오래전 기억이다.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다. 친구들에게 거꾸리와 장다리로 불릴만큼 키와 덩치가 큰 친구와 단짝이었는데 일찍 잠이 든 친구의 고추에 낮에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긴 볼펜의 심을 꺼내고 촉을 제거한 후 입으로 불어내 칠해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소피보러 갔다가 알게된 친구와 싸움이 붙었다.
석굴암 해돋이를 가기 위해 부산한 가운데 세면장에 세수하러 갔을 때 였다. 여관 마당에 마중물을 부어서 물을 긷는 펌프가 있었다. 나는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붓고 손잡이를 잡는데 아직도 분이 덜 풀린 친구 녀석이 손잡이와 펌프가 이어진 곳에 손가락을 쑥 들이 미는 것이다.
"빼라"
"싫다"
"다친데이"
"괘안타. 니맘대로 해라"
"눌린데이(손잡이를 움직이겠다)"
"눌리라"
막상 손잡이를 천천히 움직이면 손가락을 빼겠지 했고 친구는 그 반대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국은 친구의 손가락 끝은 찢어졌고 한 바탕 소란이 있었다.
둘은 친구들이 모두 석굴암의 해돋이를 떠났다 오는 동안 벌로 여관방에서 빈둥대야만 했다. 그 이후로 여러곳에서 해가 돋는 것을 보았지만 석굴암에서의 해돋이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석굴암의 새벽은 갈 때마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왔다.
친구 녀석은 몸에 묻은 잉크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데 거의 보름이 걸렸다. 손에 붕대를 먼저 풀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그 시절의 앨범에 붙은 사진중 단체 사진 이외에는 그 녀석과 단둘이 찍은 사진밖에 없다. 잘 사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그 녀석……'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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