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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cafe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동기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과거의 모임이란 서로의 목적이 같거나 동창회처럼 삶의 궤적을 같이 해온 사람끼리의 모임이 였다면 현대는 사람이 모이는 동기가 다양해졌다. 목적과 궤적, 나이의 제한이 없어진 것이다. 심지어는 얼굴을 몰라도 모임이라는 집합속에 스며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의 모임에 있어서 인터넷 카페의 역활은 참으로 막강하다.
2년 전에 아내와 동네 산악회를 다라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우리 앞에 60~70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몇 십명 무리지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앞에 가던 한 분이 큰 소리로 "구름공주님! 괜찮겠어요?" 하고 뒤로 묻자 이내 "젊은신사님! 걱정마세요."하는 화답이 나왔다. 그제서야 배낭뒤에 매달린 명찰을 유심히 보니 某포털의 "실버카페" 회원들이다. 외지에 있다 보니 부산에 있는 학교동창회에 참석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지난 달에는 동창회를 다녀왔다. 인터넷을 통해 고등학교의 재경동창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때 인터넷 공간을 풍미하던 홈페이지는 이제 석양처럼 걸려진 신세가 되었다. 이제 카페가 대세인 것이다.
원래 카페는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소규모 음식점을 말하는 것으로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영어의 카페(café)는 '커피'라는 뜻의 터키어 kahve에서 유래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유럽사람들의 문화를 바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커피였다. 과거 사교생활의 중심역할을 하던 술은 커피와 커피 음료가 도입되면서 사교의 장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200년 동안 커피를 마시면서 사교를 나누는 카페들은 런던을 중심으로 번성하였고 카페는 새로운 소식의 통로였으며, 정견발표의 장이 되었다. 주식이나 선박, 심지어 노예매매까지 이루어 지는가 하면 배우, 예술가, 문필가들은 자신의 단골 카페에서 공연을 하거나 시 낭송회를 가지기도 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소포와 편지를 전달하는 우편업무도 이루어 졌다. 이 시기에 발표된 문학작품들에서는 최고의 사교장소로 카페를 묘사하기도 했다.
카페 cafe를 우리말로 하면 다방茶房, 커피숍등인데 지금은 커피숍이 귀에 익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방茶房이 더 널리 쓰였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다방茶房이 친근하다. 이 다방은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는데 다방마다 레지라고 부르는 종업원이 있어 손님의 시중을 들면서 매상을 올리기도 했다. 대도시에는 음악 다방이 있었는데 손님의 신청곡을 틀어주는 음악실에 DJ까지 있어서 젊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공단이나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서는 아침이면 다방 레지들이 오토바이에 물이 가득찬 PET병을 싣고 다니며 사무실이나 현장에 배달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유럽의 카페가 우리 땅에서 우리식으로 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는 다방 레지를 카페걸이라고 했다. 1933년에 유흥서비스 종사자중 여성에 대한 자료를 보면 예기 4,620명, 작부 1,438명, 창기 2,560명, 여급 2,489명으로 합계 11,107명의 여성이 이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 중 조선인 여성은 5,201명으로 절반 가량을 차지하였다. 당시만해도 기생문화가 사라지지 않았던 탓에 예기, 즉 기생이 4,620명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증 여급으로 분류된 여성들이 서구적인 근대풍의 인테리어와 상류문화층의 교류의 장이라는 문화적 장치를 가지고 있었던 카페였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해서 편지함을 열어보니 수신된 메일 서른여 통 중에 이런저런 카페에서 보내온 메일이 절반을 넘는다. 이래저래 카페 시대를 사는 셈이다. 가끔은 아침 일찍 시키는 커피에 넣어주던 계란 노른자 한 알이 그리워지기도 한다.'아리까리 현대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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