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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11. 2. 09:03

     

    11월 2일 오늘의 역사


    국내
      1594(조선 선조 27)  임경업 장군 출생
      1925  정주 오산학교, 고등보통학교로 승격
      1946  민선 입법의원 45명 결정
      1955  사정위원회 발족. 위원장에 조용순
      1968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 출현
      1972  남북조절위 평양서 제2차 공동위원장회의 개최
      1974  김종필 총리 방일, 다나카 일본 총리와 회담, 김대중 사건에 유감 표명
      1981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 구성
      1988  원자력병원서 치료용 방사성원소 분실사고 발생
      1991  91 한일프로야구 수퍼게임 개막
      1992  영국 찰스왕세자부처 내한
      2004  3만 여명의 식당 업주들,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 모여 솥뚜껑 시위
      2005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 주민투표(경주 선정)


    해외
      1755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출생
      1865  미국 제29대 대통령 위렌 하딩 출생
      1874  만국우편조약 조인
      1874  일본, 요미우리 신문 창간
      1917  영국 외상 발포어 선언
      1948  트루만, 미국 대통령에 당선
      1950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 별세, 대표작: 인간과 초인, 성녀 존, 워렌인의 직업
      1963  베트남의 고딘 디 엠 대통령 피살
      1970  미소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헬싱키에서 다시 열림
      1982  아프카니스탄 살롱터널서 소련군 호송차와 아프카니스탄 유조트럭 충돌
      1986  이란 공군수송기가 고도계 고장으로 산에 추락. 103명 사망
      1993  LA서북쪽 말리부지역에 산불.
      2004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하얀 UAE 대통령 사망, 30여년 절대통치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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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업 (조선 무신)  [林慶業]
    1594(선조 27)~1646(인조 24).


    친명반청(親明反淸)에 투철한 무장으로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했으며,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된 이후에도 명나라와 협력하여 청을 공격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판서
    정(整)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황(葟)이다. 1618년(광해군 10) 아우 사업(嗣業)과
    함께 무과에 급제했다.


    1620년 소농보권관(小農堡權管)을 지내고, 1622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1624년
    (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정충신(鄭忠信) 밑에서 세운 공으로 진무원종공신
    (振武原從功臣) 1등에 봉해지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그뒤 우림위장
    (羽林衛將)·방답첨사(防踏僉使)·낙안군수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신경인(申景禋)의 좌영장으로 출전, 강화도로 갔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된
    뒤여서 후금군과의 전투는 없었다. 이듬해 체찰부별장, 1629년 용양위부호군, 1631년
    검산산성방어사·정주목사 등을 거쳐, 1633년 청북방어사 겸 안변부사에 기용되어
    백마산성(白馬山城)·의주성(義州城)을 수축했다.


    같은 해 명나라의 공유덕(孔有德)이 반란을 일으켜 후금군과 합세하려 하자, 명군과
    함께 이를 토벌하여 명나라의 왕으로부터 총병(摠兵) 벼슬을 받았다. 1634년 의주부윤
    겸 청북방어사에 임명되었으며, 중국무역과 둔전(屯田) 개설의 공로로 이듬해 가의대부
    (嘉義大夫)에 올랐다. 무역거래에서 폭리를 취했다는 탄핵으로 한때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하여 압록강 맞은편의 송골산(松鶻山)·봉황산(鳳凰山)에 봉화대를 설치하는 등
    국경경비를 강화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백마산성에서 청군을 차단하고자 했으나, 청군이 우회하여
    남하했으므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인조로부터 굴욕적인 강화를 받아내고
    돌아가던 일부 청군을 쳐서 무찔렀다. 1637년 청나라가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조선에 병력을 요청하자 수군장(水軍將)으로 출전했으나,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을 기회를 노리던 그는 명의 심세괴(沈世魁)에게 연락하여 몰래 명군을
    도왔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가 되었으며, 1640년 다시 청나라의 요청으로
    주사상장(舟師上將)으로 발탁되어 금주위(錦州衛)의 명군을 공격했지만 이때도 마찬가지로
    승려 독보(獨步)를 보내 명군과 연락을 취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1641년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의 행적에 의심을 품고 있던 청의 압력으로 벼슬에서 쫓겨났다가
    곧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로 복귀했다. 그러나 1642년 명장(明將) 홍승주(洪承疇)가
    청나라에 투항함으로써 명과의 관계가 발각됨에 따라 체포되었다. 청나라로 압송되던 도중에
    황해도 금천군 금교역(金郊驛)에서 탈출, 회암사(檜巖寺)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가 1643년
    명나라에 망명했다.


    그뒤 명나라 장군 마등고(馬騰高)와 함께 석성(石城)에서 청나라 공격에 나섰으나 마등고가
    곧 항복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탈출을 기도하다가 그의 부하였던 한사립(韓士立)의 밀고로
    잡혀 1645년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이무렵 조선에서 심기원(沈器遠)의 옥사가 일어나 그의
    관련설이 대두되자 1646년 인조의 요청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역모사실을 부인했으나,
    김자점(金自點)·원두표(元斗杓)가 강력히 처벌을 주장, 심문을 받던 중 형리(刑吏)에게
    장살(杖殺)되었다.


    사후 그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임경업전 林慶業傳〉을 비롯하여 많은 소설·설화가 전해지고,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되었다. 1697년(숙종 23) 복관되었다. 충주 충렬사(忠烈祠), 선천
    충민사(忠愍祠)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다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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