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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안동 봉정사에서 /김대근작은詩集 2007. 10. 23. 08:50
안동 봉정사에서 /김대근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였다지
잘 익은 연꽃 한 송이
크게 깨달은 이가 들어 보였다지
멀뚱한 눈들 사이로
마하가섭, 동전크기로 웃었다고 했지
소나기 오가는 날
봉정사에 들렀더니 천년 묵은 극락전을 둘러
매미는 통천음경通天音經을 외고 있었고
쓰르라미 때아닌 도량석에
화들짝 놀란 바람,
풍경을 범종삼아 하늘을 열었다
봉선화, 달맞이 꽃, 메꽃들 경건에 몸을 떠니
그 자리가 잘 차려진 천등산회상天燈山會上이 되었다
햇살이 열걸음 옮길 시간 지났어도
여전히 극락전은 열릴줄 몰랐고
조바심에 몸이 달아
한 소식 보여 주십사 참나리를 들어보였더니
와글대던 대중들만 까르르 웃었다+++++++++++++++++++++++여행메모(2007.8.8)++++++++++++++++++++++++++++
하회마을로 가다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다. 봉정사鳳停寺 간판을 본 것인데 몇 번의
안동 나들이에서 번번히 들러보지 못한 곳이다. 별다른 계획이 있는 여행이 아니니
시간에 대한 부담이 없다.
안동시 서북쪽의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天燈山 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고운사
孤雲寺 말사로 신라 문무왕 12년(서기 672년) 의상스님의 제자 능인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의상대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바 있는데 또 다른 절을
짓기 위해 자리를 찾던 중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종이 봉이 앉은 곳인
이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고 햇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에는 의상스님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 산을 오르는데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혔고 그로 인해 산이름을 천등산天燈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의상스님은 신라 스님들중에서 최고의 혈통을 자랑한다. 그는 왕가의 핏줄로써 불문에
귀의했다. 물론 본인의 의지라기 보다는 당시 권력투쟁을 막아보고자 한 신라왕실의
안배에 의해 출가를 했다. 그후 그는 왕실의 적극적 후원과 신라왕실 출신임을 고려한
당나라의 배려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신라불교에 최신의 학문을 접목해 불교문화를 꽃 피웠다. 그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원효는 당나라로 가는 와중에 유학의 꿈을 접고 말 그대로 자생불교의 싹을 틔운다.
전설에는 유학을 가는 도중에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갈증에 못이겨 마신 물이 나중에
해골에 담긴 물임을 알고 토하다 문득 '일체유심조'를 깨닫고 굳이 유학의 길만이 전부가
아니라 깨닫고 되돌아 왔다고 한다.
나는 가끔 그가 유학을 포기하고 중도에 돌아온 것이 동시대의 라이벌 의상의 뒷배경에
한계를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셍각할 때도 있다.
의상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사찰들을 창건하게 되는데 그것은
당시 호족들이 다스리던 신라에서 왕실의 핏줄에 대한 호족들의 호의라 할 것이다.
봉정사는 극락전(국보 제15호).대웅전(보물55호).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등의 주요 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살아가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봉정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공민왕이 들리기도 했고 최근에는 영국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우리 나라의 고유 사찰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절이다.'작은詩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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