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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을 낳은 군산(群山)의 탁류(濁流)여행기 2007. 5. 21. 15:49
채만식을 낳은 군산(群山)의 탁류(濁流)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 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 ---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한 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 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엄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 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 노령)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 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左右道)의
접경을 흘러간다. -채만식(蒸萬植)의 소설 "탁류(濁流)" 중에서 -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전라남도 군산과 북쪽의 충청남도의 장항이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며 대문의 역활을 하고 있다. 강의 하류가 대부분 그렇듯 상류에서 떠 내려온 기름진
퇴적물들이 갈대들의 키를 흠뻑 키워 놓는 법인데 금강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가는 철새들이
한 동안 쉬면서 몸을 살찌우고 기운을 저축하는 곳이기도 한 곳이다.
군산이나 장항이나 모두 일제의 수탈목적으로 크게 번성한 곳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번 여행은 사실 장항선의 종점인 장항이 목적지였지만 포구의 바닷가 정취에 이끌려
바닷가로 나왔다가 1인당 1500원의 도선을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말을 했지만 바다와 강이 혼재되는 곳을 건넜으니 바다라 해도 맞는 말이고 강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할 만하다. 장항에서는 사실 이렇다할 유적이나 구경거리가 없었고 이왕에 나선
길이니 오랫만에 바닷고기 맛이라도 보아야 겠기에 회값이 싸다고 소문 난 군산으로 가자는
나의 제의에 동행한 옆지기도 대 환영을 했다.
제법 오래전에는 관광유람선으로 제법 기세를 날리며 창파에 뽕짝 가락을 실어 세월을
보냈음직한 풍채였으나 지금은 녹슨 자국을 감추느라 페인트를 떡칠하듯이 표나게 바르고
한 사람당 편도 1500원의 값싼 대가에 연명하는 애닯픈 자신의 처지에 목이 메이는지 크르륵
거리는 탁한 엔진 소리를 억지로 내고 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늙는 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유는 이렇게 가치가 평가 절하되고 말기 때문일 것이다.
군산은 예전이 참 좋았다. 최소한 관광객들로 발 디딜틈이 없어져 버린 지금보다 몇년전의
한산함에 대한 동경이 강하게 일어난 것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횟집에서 텔레비젼의
연속극에 넋을 잃고 있다가 일어나 내민 식당주인의 메뉴판을 보면서 였다. 도회의 내노라
하는 일류 식당보다 더 비싸져 버린 물가에 안 그래도 작은 가슴이 더 쫄아 붙었다. 군산이
횟감이 싸다는 소문이 난 것은 묵은 냄새 폴폴 나는 고리짝 옛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바가지 군산이 훨씬 더 어울리겠다.
도선장에서 받아든 관광지도를 놓고 보니 시간이라는 것이 영 여의치 않다. 여섯시 배로 다시
장항으로 돌아가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2시간의 시간을 어찌 보낼까 고민하다가
이 지역출신의 소설가로 <레디 메이드 인생>등을 쓴 소설가 채만식의 문학비를 보기로 했다.
생각같아서는 그의 생가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처지라 부릴 여유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아래로 금강을 내려다 보며 써낸 <탁류>가 가장 잘 보일만한 곳이
바닷가에 있는 월명공원이고 그의 문학비는 지도에 잘 그려져 있었다.
문학비에는 금강을 소재로 한 그의 소설 "탁류"의 한 장면에 새겨져 있다. 역시 문학이
낡아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그의 문학비 주변에는 잡초가 제법 성기었지만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는 않은듯 하다. 관리하지 않을 문학비는 왜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소설가 채만식(蒸萬植)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沃溝)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릉(白陵) 이다.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중퇴했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남긴 작품으로는 장편 <탁류>(1937), <태평천하>,<레디 메이드 인생>(1933), <치숙(痴叔)>,
<쑥국새>등 반어(아이러니)의 기법을 통한 풍자소설들이 있다.
1935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한때 금광업에도 손을 댔으나 사업보다 창작에 몰두했다.
1950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는 그의 생가유적이 있으며 월명공원에는 그의 문학비가 있다.
돌아오는 길 역시 금강의 물들이 바다를 만나 몸을 섞으면서 만들어내는 탁류를 건너왔다.
그는 그의 부친과 그 자신의 친일시비에 한때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가 살아온 시대가
어쩌면 건너기 힘든 탁류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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