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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땟국물이 줄줄 시커먼 목덜미를 탄다.
국회의원 모씨의 이름이 새겨진
책 보따리가 힘겨운 여름날이다.
오늘도 나는 말을 못했다.
선생님이 사오라는 참고서
몇 백원의 그 이야기를 오늘도
차마 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여동생이 그 얘기를
먼저했다가 머리를 쥐어 박히고
산탄총맞은 사슴처럼 눈물이 그렁해서
나는
대나무 뿌리에 니스를 먹인
매를 맞기로 했다.
매보다 더 아픈건
아무리 보아도 처녀같았던
우리분단 제일 뒤에 앉은
빨간 벽돌공장 사장집딸
그 어여쁨이 보내는 눈빛이다.
일과처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땡..땡..땡..
4시간째 종이 치면 몇 아이를 부른다.
다리를 떨며 나가 받는 옥수수빵
나는
늘 빵이 짜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삼키는 울음에 젖은 짜디 짠
그 맛을 얼굴 붉히며 먹고자랐다.
오로지 들판에서만 나는 자유롭다.
피리를 뽑아서 하얀 속살을 달게 먹어도
맵싸한 고추냉이를 질겅 씹어도
둑밑을 살살 파서 나오는 하얀 메뿌리
그냥 바지에 쓱쓱 문대어 먹어도
얼굴 붉힐일도
다리 후들거릴 일도
뒷꼭지가 뜨거울 일도 없는
들판에는 나의 자유가 있었다.
낡고 헤어진 부끄러움
메꽃은
내 부끄러운 추억의 꽃이다.
(2004년 8월 16일)*********************************************************************
어릴때는 참 가난했습니다.
물론 송기를 뜯어먹거나 하지를 않아서 똥꼬가 찢어질 정도까지는 아니였더라도
국민학교(초등) 6년동안 월사금을 면제받을 정도로 가난 했지요.
어려서도 참 자존심이 강했었던지 급식빵을 받아 먹을때나 월사금 면제자로
이름이 불리울때는 얼굴이 화끈거려 혼이 났습니다.
늘 까만고무신을 신고 국회의원 마크가 찍힌 분홍빛 책보따리를 메고 다녔지요.
물론 그렇게 다닌 아이들이 몇이는 되었지만 가방과 운동화를 신은 친구들편에
서지 못하는게 늘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아직도 가슴이 짜안해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때는 학교선생님이 과외를 돈받고 학교에서도 할때였는데 참고서도 출판사에서
로비해서 강요하던 시절이였지요.
단 한번도 참고서를 사본 적이 없습니다.
전과라고 했던 그 참고서를 안사오면 거의 일주일에 한번은
불려나가서 대나무뿌리에 니스칠을 한 몽둥이로 손바닥을 맞기도 했지요.
정말로 눈물이 나는건
그때 만덕에 빨간벽돌 굽던 공장이 있었는데 그 집의 딸레미가 참 이뻣습니다.
아마도 우리학교에서는 제일 이뻐보였고 아무리 나이를 낮추어보아도 아가씨같은
항상 하얀드레스를 입고 베시시~ 웃던 그 아이앞에서 급식빵을 받거나
월사금 면제자로 칠판에 이름이 적히거나 참고서를 못사와서 손바닥을 맞을때는
정말 어린마음에도 세상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개구리를 잡아다 교실에 풀어놓는다거나
고무줄을 끊고 달아난다거나 개구지게 놀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팔꽃과 닮았으면서도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메꽃은 그래서 더욱 애절하게
나의 가난한 추억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촌스럽게 생긴 이 메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메꽃에서는 아름답고 고운 수식어보다는 가슴이 짠한 수식어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 뱀다리(蛇足) 하나 ***
메꽃과 나팔꽃은 전혀 다른 종입니다.
도시적인 나팔꽃은 독이 있어서 먹거나 할수 없지만 메꽃은 반대로
순박한 시골적인 꽃이기도 하지만 꽃과 잎..그리고 줄기에 부리까지
하나도 버릴게 없습니다.
옛날 흉년에는 대표적인 구황식물이기도 해서 없는 사람들과 늘 함께해온
어쩌면 우리 민족의 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작은詩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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