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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6. 12. 6. 09:00
12월 6일의 지나간 오늘
국내
1536 가사 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 출생
1884 갑신정변 실패 (김옥균등 일본 망명)
1907 13도 창의군 결성, 의병 6600명 양주에 집결
1925 경성부 청사 상량식
1945 윤치호 자결
1949 첫 징병검사 실시
1964 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1971 박정희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언
1978 국립광주박물관 개관
1979 통일주체국민회의, 제10대 대통령에 최규하 선출
1979 부산 세창 고무공장에 화재. 30명 사상
1986 전북 김제군 금산사 본당 대적광전(보물476호)전소. 피해 1억4,000만원
1990 서울방송, 초대 경영진 확정
1995 유네스코, 석굴암 팔만대장경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등록
1996 반부패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사회원로 103인의 시국성명 발표
2000 팔만대장경 CD롬 봉정식
해외
1917 캐나다 헬리팩스항서 선박 충돌사고로 1,654명 사망
1917 핀랜드, 러시아로부터 독립
1922 아일랜드, 정식으로 독립국가 선포
1926 미국, 유성영화 제작에 성공
1952 폴란드와 헝가리, 유네스코 탈퇴
1955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오스트리아 연방공화국 승인
1957 일본과 소련, 통상조약 조인
1967 인류 최초의 심장이식수술 성공
1990 후세인, 모든 인질 석방 결정
1998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 우고 차베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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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어지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 사람이 울며 가나....
장진주사(將進酒辭)의 한구절이다. 풍류가객과 냉혹한 정치인, 그 사이를 줄타기로 살다간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거목 송강(송강) 정철(정철)이 1536년 태어 났다.
그는 조선의 가사문학을 크게 발전시킨 당대의 시인이다. 사미인곡, 속미인곡,관동별곡
등은 참으로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중 대부분은 한시문학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대부분 한시들이 충(忠)을 주제로 한
반면에 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것이거나 사소한 애정의 문제가 많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의 가사문학 자체가 귀양살이에서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연과 애정을 모토로 하여 풍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습과는 달리 정치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냉혈한 이상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정치가들은 대부분 시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가 유교경전등을 바탕으로 하여 시를 짓는 것이니만큼 시라는 것은 결국 출세의 바탕이
되며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시에 대한 소양을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율곡 이이가 당시의 정치를 개탄하며 은퇴할때에 후계자로 송강 정철을 추천할 정도로
그는 정치가로써 상당한 신망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 정치에서는 실패를 하여
잦은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냉혹한 면을 보인것은 정여립의 모반사건에서 인데, 송강 정철은
이를 게기로 그의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최영경등은 정치와 크게 관련되지도
않았고 그와 크게 다르지 않는 기호학파의 인물임에도 라이벌이란 것만으로 제거를 했다.
그후에도 계속해서 송강정철은 서인들의 정적인 동인 정치인들을 유배보내거나 제거하여
선조임금조차도 그를 일러 '독철간혼'이라 할 정도였다. 당시의 관례가 조정의 중신이
죽게되면 추천에 의하여 그의 아들에게 관리의 길을 열어 주었는데, 마침 송강 정철이 죽자
서인 정치인들이 송강 정철의 아들을 천거했으나 왕이 거부할 정도였다.
관련글 읽어보기
송강정철 선생의 鄭松江祠를 다녀오다..
http://blog.daum.net/roadtour/2951345 ◀클릭
담양- 가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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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3일만에 개혁파의 천하가 끝이 났다. 김옥균등의 개화파들이 일본의 무력을 등에
업고 정치를 혁파하였지만 관록의 보수파가 그냥 있을리 만무하였고 그들은 청나라의
힘을 빌려 청병 2,000명으로 정변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조선에서의 보수진영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고 새로운 사상으로 개혁하려던 젊은
개혁가들의 꿈은 무산되었다. 물론 이 개혁이 성공을 하였더라면 조선은 좀더 빨리 개화의
길을 걸었을 것이고 상황이 좀더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초에 남의 힘을 빌어서 정변을 일으켰기에 긍정적 성공에 닿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보수진영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는 정변을 진압할 힘이 없어 청나라의 힘을 빌어 진압하여
조선에 대한 청나라릐 입지만 강화시키고 조선은 청국의 속국이라는 외국의 인식이 깊어졌다.
이날 김옥균등은 본국으로 후퇴하는 일본공사를 따라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서 유랑객
으러 살던 김옥균은 중국 상해에서 홍종우의 손에 암살당하여 시신으로 환국하게 된다.
★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국적인 저항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자결을 하거나,
신문에 사설을 싣거나, 무력으로 항거하기 위한 의병등 전국적인 규모로 이루어졌다.
전국에서 거병하여 활동하던 의병들은 회합을 갖고 전국의 의병들을 하나로 모아 서울로
진공하여 일본을 몰아내자는데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에 13도 창의군 결성되었으며
경기도 양주에 의병 6600명이 집결하였다.
그러나 이 양주집결은 신돌석, 홍범도,김수민등과 같은 평민출신 의병장들은 인정하지 않고
각 부대의 의병장에 양반이나 유생으로만 편성하는 등 한계를 드러냈으며 군사적 경험이
전무한 그들의 지휘는 애초부터 실패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시때문에 망한 나라가 중국의 漢왕조라면 양반때문에 망한 나라는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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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는 유네스코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재 불국사와 석굴암, 팔만대장경과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정식등록을 했다.
유네스코의 선정기준과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불국사. 석굴암
석굴암은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며, 불국사는 불교교리가 사찰 건축물을 통해 잘 형상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등록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Ⅰ), (Ⅳ)
(Ⅰ)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 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하는 유산
(Ⅳ)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2.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 대장경 (엄밀히는 장경판전만 문화유산)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 그리고 고도로 정교한 인쇄술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세계 불교경전 중 가장 중요하고 완벽한 경전이며, 장경판전은 대장경의
부식을 방지하고 온전한 보관을 위해 15세기경에 건축된 건축물로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한 보존과학 소산물로 높이 평가되고있다.
*등록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Ⅳ), (Ⅵ)
(Ⅳ)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Ⅵ)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성이 현저한 사상이나 신념, 사진이나 인물과 가장 중요한
연관이 있는 유산
★
팔만대장경하면 대부분 해인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의 목판은
해인사에 그 목판을 이용하여 만든 책은 월정사에 있다. 그 중에서 해인사의 것은
목판본이라고 하여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선 고종 2년(1865)에 해인사의
고려대장경 경판에서 직접 찍어 월정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강원도유형
문화재 5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때 몽골군이 침입하여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이 불태워지자
당시의 임시수도 격이던 강화도에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서 만들었다.
이 국가적으로 시행된 사업은 1236년부터 1251년에 이르는 동안 이루어 졌고 제주도와
거제도등의 자작나무를 바닷물에 절인 다음 그늘에서 말리는 등 그 절차와 정성이 많이
들어야 했었다. 글자 하나 하나를 반대로 깍아야 하는 작업도 보통 힘든게 아니고 숙련을
요하는 작업이였다.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디지탈의 시대다. 어쩌면 아날로그 시대의 전형적 종교라고 할
불교경전, 그 중에서도 해인사에 보관된 민족정신의 산물인 팔만대장경이 종이를 넘어
디지탈로 CD ROM에 담겨졌다.
2000년 한문으로 된 불교경전 1514종 8만여장의 경판에 담겨진 고려대장경을 700년만에
디지탈로 새로 만들어 봉정식을 거행했다.이 작업은 1993년 시작해서 이날 서울 올림픽
공원 펜싱경기장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고려대장경 전산화본 봉정식`을 가졌다.
이 디지탈 팔만대장경의 가장 큰 특징은 색인기능인데 한자 하나마다 그 글자가 포함된
부분을 모두 찾아 볼 수 있는 `일자색인(一字索引)`으로 사용자들은 한자의 음이나 부수
-획수를 이용하여 관심있는 글자가 들어있는 구절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사이버 법당도 몇개나 문을 열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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