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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6. 11. 29. 08:43
11월 29일의 지나간 오늘
국내
1394 조선 태조2년 한양으로 천도 (음력 10월28일)
1920 독립운동가 강우규 서대무형무소서 순국
1968 서울시 전역, 전차운행 정지
1968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 별세
1976 제주 성산포서 세계 희귀조인 황새 발견
1979 수원성 중수공사 완료
1985 남극탐험대 제2진 빈승봉(5,140m) 정복
1987 북한 테러로 대한항공기 폭발
1988 교과서에 실린 5공 업적과 전두환 대통령 사진 삭제
1989 한국-소련 영사관계 수립 합의
1994 서울 천년 타임캡슐 남산골 공원에 매설
1995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집행, 안양교도소 수감
1995 대검, 정태수 한보 그룹 회장 구속 기소
2000 반달곰 17년 만에 지리산에서 발견
2004 김춘수 시인 별세
해외
1529 양명학의 시조인 명 나라의 사상가 왕양명 세상 떠남
1832 <작은 아씨들>의 작가 올코트 출생
1924 이탈리아의 작곡가 푸치니 별세
1932 프랑스와 소련, 불가침조약 조인
1945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 선언
1947 유엔총회가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독립아랍국가로의 분할 결정
1963 캐나다항공 소속 DC-8F기, 몬트리올 공항 이륙직후 추락. 118명 사망
1968 페니실린을 발명한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 별세
1978 동서독 국경협정 조인
1990 안보리, 91년 1월 15일까지 이라크군 철수 않을 시 무력사용 승인
2001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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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전 조선이라는 새나라를 세운 이성계가 왕실과 문무백관을 이끌고 개성을 떠나서
나흘만에 새로운 수도 한양(서울)에 도착을 했다. 600년 서울 시대의 첫날이 열린것이다.
대부분 기득권 세력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천도를 단행한것은 역성혁명을 통해
수많은 살육이 이루어 졌던 곳을 빨리 벗어 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계룡산
자락을 정해 일부 기초공사까지 하다가 중단시켰고 왕궁의 자리를 두고 보수의 대변자인
무학대사와 진보세력의 대변자격인 정도전의 다툼도 격렬했지만 이성계는 정도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정치적 진보를 택했다.
계룡산에서 한양(서울)으로 결정된데에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세곡선의 접안이 쉽다는 것이
크게 고려되었다고 한다.
풍수상으로는 개성이 1위이고 계룡산이 2위로 한양은 처음에는 길지축에 들지도 못했지만
당시 국토의 중심이고 계룡산보다 바다가 가깝다는 것과 강이 넓어 세금을 바치는 배들이
접안하기 쉽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아뭏던 오늘은 수도 서울의 600년 역사가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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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강우규[姜宇奎]의사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무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855(철종 6)년에 가난한 농가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한의학을 배워 한약방을 운영했다.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하여 조국의 독립운동에 힘썼다.
1915년 라오허 현[饒河縣]으로 옮겨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했고 농토를
개간하여 신흥촌(新興村)을 건설하고 1917년에는 동광학교를 설립했다.그는 3.1운동 소식을
듣고 같은해 3월4일에 만세시위를 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 노인단(老人團)의
길림성 지부장에 취임했다.
그는 노인단의 독립투쟁노선을 따라 일본총독, 중요요인등을 암살하기로 결의하고 그해 7월
수류탄 1개를 구입하여 8월 서울에 잠입했다. 1919년 9월2일 남대문 정거장(서울역)에서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마침 파편이 총독의
가죽혁대에 박혀 암살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정무총감· 만철(滿鐵)이사· 일본경찰 등
37명을 사상시켰다.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은거하다가 9월 17일 일제의 앞잡이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1962년 3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강우규를 체포한 사람은 일본사람이 아니라 일본의 개노릇을 하던 김태석이라는 고등계
형사였는데 그에 대한 것도 알고 넘어가자.
김태석(金泰錫, 창씨개명한 이름: 金村泰錫 <가네무라>1883~?)은 강우규 의사를 체포한
일본 고등계 형사로 1883년 평안남도 양덕에서 출생하였으며1909년 3월에 서울의 관립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야간부 법과 2년을 수료했으며
1912년 조선총독부 경찰관 통역으로 전출되어 경찰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후 경찰의 요직을 두루거쳐 1923년 경기도 형사과장으로 근무하다가 12월 퇴직하고 그후
가평,연천,부천군수등을 지냈다. 1940년 일본정부로부터 친일의 공로를 인정받아 종 4위
훈4등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철저한 친일행각으로 1944년에는 친일파의 최고 명예직인 충추원참의에
임명되기도 했다.
1919년 8월 5일 사이토 총독에게 강우규 의사가 폭탄을 던졌는데 총독은 죽이지 못했다.
이때 현장에 김태석이 경기도 경부로 현장경비를 하다가 강우교가 폭탄을 던지는 것을 보고
강우규 의사의 체포에 전력하여 9월 17일 임재상의 집에서 그를 체포하였다.
해방후에 김태석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어 반민자 최초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무기징역과 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언도로 공판을 끝냈다. 그후에
김태석은 재심청구끝에 감형되어 1950년 봄에 석방되고 말아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른 민족반역자들을 이승만정부에서 대거 기용했던 탓으로 옛동료 봐주기가 있었던듯~★
1987년 11월 29일에는 북한의 테러로 바그다드발 서울착 KAL 858편 보잉 707기가 버마의
랑군 상공에서 폭발하여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천인공노할 이 만행의 범인은 북한
공작원이였던 김현희라는 여인으로 14대 대통령 선거 전날 서울에 도착하여 대통령 선거에
최대 변수로 작용하였다.
이른바 북풍으로 명명된 이 사건에 대하여 최근에 몇몇 사람들이 풀리지 않는 여러가지의
의문을 들어 음모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1947년 유엔총회는 미국과 영국의 강력한 입김으로 팔레스타인을 반으로 나누어 2천년을
유랑민족으로 지내던 유태인에게 한쪽 절반을 나누어 주어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했다.
나라없이 떠돌던 이스라엘에게는 "이게 왠떡~" 이였지만,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은 기독교의 국가다.
기독교로써는 성지와 같은 땅이 팔레스타인이니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 성지를 지키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야 말로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이 연합한 현대판 십자군 전쟁이나 다름없는 일이였다.
어릴때의 일이다. 논에 물꼬를 보러 나갔다가 한무더기의 쇠붙치를 줏어와서 엿과 바꿨다.
엿 한가락을 들고 동네 나갔는데 동네 형을 만났다. 그형은 중학생이였고 그 형의 동생은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이였으므로 나보다 두살이나 어렸다.
"야~ 임마! 엿 이리 줘봐" 그리고는 반을 뚝 잘라서 지 동생놈한테 주고 조금 더 작은 쪽을
나에게 주고는 사라졌다.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 억울해서 다음 날 학교에 가서 그 형의
동생을 흠씬 패주고는 한달 동안 골목길을 눈치껏 피해 다녔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에서 맡고 있는 나라들의 역활은 이렇다.
미국= 깡패새끼, 지 마음에 안들면 졸라 패버린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것 빼앗아 동생준다.
영국= 미국을 짱으로 알고 섬기는 샤키, 졸라 신사인척 뻐긴다.
이스라엘= 형을 잘 만나서 무었이던 날로 먹는다. 불리하면 십자가를 높이 들고 흔든다.
그러면 자기형 "샘"이 졸라 뛰어와서 편들어 준다.
팔레스타인= 불쌍한 녀석이다. 자기것 절반이나 빼앗겼지만 힘이 부족하다. 얄미운 놈인
이스라엘을 가끔 패주려다가 "샘"한테 종종 두들겨 맞는다. 그러니 열받지~
★
1968년에는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별세하였다.
그는 1928년 포도상구균 계통의 화농균을 배양하다가 우연히 세균이 죽어있는 배양접시를
접하게 되어 연구끝에 특정한 곰팡이가 세균을 죽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실험끝에 페니실리움속의 곰팡이가 생산하는 물질이 여러 종류의 세균에 대하여
항균작용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물질에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 공로로 194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페니실린은 2차 대전에서 수많은 부상병의 생명을 구해냈다. 페니실린은 지금 현재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가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안되는 된장의 푸른 곰팡이도 페니실린이라는 항균작용이
있는 물질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지 얼마되지 않았다.
어릴때 친구들과 놀다가 머리를 다쳐 (경상도 표현으로 "박"이 터지면~) 피를 흘리며
집에 가면 할머니는 된장을 머리에 발라주셨다.
한문은 커녕 한글도 모르시던 우리 할매는 그 푸른 곰팡이가 상처에 좋다는 것을
도데체 어떻게 아신 것일까?'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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