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詩- 할매의 연탄재
    작은詩集 2006. 2. 21. 23:47

     

     

    할매의 연탄재


    살아온 세월
    쌓여온 한을
    우리 할매는 이맛살 주름만한
    빨래 방망이로 마구 부셨다.

     

    눈 내린 아침
    뒷간에 쟁여둔 연탄재,
    두개씩 들고나와
    어젯밤 흘린 눈물로 생긴
    하얀 고랑같은 연탄재를
    빨래 방망이로 섦게 부셨다.

     

    뒷봉창 동백나뭇닢위로
    흩날리는 30년 과부살이는
    잘게 부셔진 연탄재로
    하얗게
    하얗게
    내린 눈위로 살아온 세월처럼
    드문 드문 뿌려졌다.

     

    할매~ 머하노?
    울강생이 미끄러바서...

     

    눈바람 차가운 대청마루에 서서
    밤새 불어진 고추를 잡고
    뜨거운 오줌을 뱉어면
    하얀 눈위에는
    세월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울 할매 주름살만큼 깊은
    새로 고랑이 생겼다.

     

    나이 이 만큼 먹고서야
    타고 남은 연탄재는
    할매의 그리움인줄 알겠다.

         ( 2005년 3월 20일)

     

    ***************************************************************


    우리 할매는 참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았다.
    어찌보면 그 시대의 누구나가 그 길을 걷지 않았던 사람이 없겠지만
    경주에서는 제법 사는 전주이씨의 딸로 자라서 열여섯의 나이로 시집을
    왔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증조할배는 6대째 대물림 훈장으로
    그저 호구지책이나 하는 처지 였단다.
    고조할배도 그랬고 증조할배도 요샛말로 널푼수없는 훈장으로 일년에
    쌀말이나 보리 두어말이나 받으니 궁색함을 면키는 어려우니 그속에서
    자란 할아버지는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셨는가 보다.

     

    우리 할배는 삼형제중의 막내였는데 위로 형님 두분은 만주와 하얼삔에서
    돌아 가셨으니 3형제가 새로운 세계를 동경함은 당연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 할매는 이유없이 시름 시름 앓아서 의원을 전전하다가
    동네 만신에게서 신기가 있으니 신내림을 해야 나을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굿을 크게 벌리고 족보를 불살라버리고 고향을 떠나야
    된다고 해서 할아버지는 숙고끝에 고향을 등진다.

     

    울산..울주군 인보...
    울산이라고는 하여도 실상 이곳의 생활권은 경주다.
    그만큼 경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울산과는 오히려 먼길이다.
    경주는 친정이고 해서 할아버지는 솔가를 해서 밀양으로 이주를 한다.
    밀양은 전형적인 농사를 위주로 발전한 곳이다. 그런만큼 토박이들의
    텃세 또한 대단하다.

     

    다시 할아버지는 길을 남으로 잡아서 구포에 정착한다.
    당시 구포는 육로교통이 미비하던 터라 농사보다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외지인에게 상당히 포용적인 곳이였을 것이다.
    아이도 둘이나 생겼다.
    아버지와 삼촌은 무럭 무럭 자라나고 생활은 안정이 되어갔다.
    그렇게 정착을 하고 나서 이번에는 잠자고 있던 역맛살이 할아버지를
    일본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돈벌어 오겠다고 떠났는데 결국에는 하얀 나무상자에 담겨오셨다.

     

    할머니는 청상의 몸이 되었다.
    조물 조물 자라는 아이를 건사할 재간이 없었다.
    친정에서 더 난리를 피워서 아버지는 큰 집에 의탁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젓먹이였던 삼촌을 데리고 재가를 했다.
    할아버지의 몸값을 반분해서 큰 집에 주었는데 큰 집에서는 그 돈으로
    운수업으로 크게 돈을 벌었지만 아버지는 머슴같은 생활을 했다.

     

    땅에 질질 끌리는 지게를 지고 매일 산을 헤매면서 나무를 해와야했고
    논 농사를 도맡아 해야만 했다.
    종일을 그렇게 일을 하고서 겨우 사촌형수로 부터 식은밥 한덩이가
    하루 먹는 식사의 전부 였으니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는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할때는 눈물을 비치시곤 한다.

     

    어렵고도 힘든 삶을 사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세월이 흐른 다음 아버지가 철이 들 무렵에 재가를 했던 할머니는
    다시 혼자가 되시어 구포로 돌아오셨다.
    이번에는 삼촌 한분과 고모 한분이 새로 생겼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같은 지붕아래에서 살기에는 아버지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할머니는 죄의식에 평생 아버지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고
    아버지는 가능하면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니 결혼 하면서도 살림을 따로 나게 되었다.

     

    그래도 좁은 구포바닥인지라 걸어서 겨우 오분이면 오갈수 있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그런 관계에서 오는 어색함은 결국 어머니의 몫이
    되었고 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남달리 살기도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어머니한테 쏟아놓았고 아버지는
    관습이라는 틀을 넘지 못하는 착함을 무기로 애써 외면을 했다.

     

    "우리 장손~ 우리 장손~"
    그런 집안의 분위기때문에 가까이 있어도 끼고 살수가 없어서인지
    할머니는 유난히 나에게 집착을 하시곤 했다.
    그래서 자주 나는 어머니에 의해서 할머니께로 보내졌고 할머니에게서
    잘때도 많았다.

     

    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가끔 일어나면 이슥한 밤에도 할머니는
    잠 못 이루고 할아버지가 일본가시기 전에 사주고 갔다는 명경을
    앞에 두고 눈물을 지으시곤 했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머리를 다듬어시는데 항상 동백기름만을 사용했다.
    우리 어머니는 맏며느리이면서도 모시지 못하는 미안함을 장날마다
    2홉들이 소줏병에 담겨서 나오는 동백기름을 사는 것으로 채웠다.
    나는 그 동백기름의 배달을 전담했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 구포에도 겨울에는 눈도 자주오고 추위도 제법
    매섭기도 했다.
    그때 막 때기 시작한 연탄아궁이의 재를 뒷켠에 모았다가 잘게 부셔서
    밭에도 뿌리기도 하고 길을 다지는데 쓰기도 했다.

     

    겨울밤이 지나고 아침에 문을 열고 밤새 불러서 팽팽해진 오줌보를
    비울려 할때 눈앞에 하얗게 눈이 내린 모습을 보게 될때는 그야말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그때마다 먼저 일어나서 손주 미끄러질까 염려해서 빨랫방망이로
    연탄재를 깨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는 했다.

     

    평생을 가슴에 대못 하나를 박고 살아가셨던 우리 할머니...

     

    요즈음 할머니 산소에 갔을때 유난히 오랫동안 엎드려 계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삶의 아픔을 치유하는 유일한 약은 세월인가 싶다.

     

    아버지는 그렇게 할머니의 가슴에서 대못을 빼시는 중이다.

    '작은詩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방생가는 사람들  (0) 2006.02.23
    詩- 추풍령을 넘어며..  (0) 2006.02.22
    詩- 팔봉산의 진달래  (0) 2006.02.21
    詩- 두견새와 진달래  (0) 2006.02.21
    詩- 그리움  (0) 2006.02.2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