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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아버지와 엉겅퀴
    작은詩集 2006. 2. 20. 21:45

     

     

     

    아버지와 엉겅퀴

     

    서걱 서걱 마당 한켠
    남루한 등 보인
    아버지 낫을 간다.
    10년 넘은 돌숫돌
    호박색 닳고 닳아
    반달인채로
    서걱 서걱 낫을 간다.

     

    피멍으로 날이 선 낫
    밭고랑 맴도는 바람 베어내면
    가난함은 피를 튀겨
    여름하늘에 꽃이 핀다.
    보라빛 엉겅퀴 꽃으로 핀다.

     

    울컥 차오르는 가래
    다시 삼킬 때 마다
    엉겅퀴, 제 몸 가시 뱉어 낸다.
    잎으로 줄기로
    모질던 세월의 가시 뱉어낸다.

     

    아버지가 뱉어버린 가시는
    속깊은 추억 여기저기를 찔러댄다.

     

    내 가슴속에는
    아버지가 심어준 보라빛
    엉겅퀴가 자란다.
    수십년 세월흘러서
    자줏빛으로 짙어진
    한송이 가시 세운 엉겅퀴가 자란다.

     

    나이가 되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낫을 갈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누구에겐가
    내 등도 보여야 할 나이가 되었다.

     

    *****************************************************************

     

    왜정시대에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셨다.
    아버지의 아버지...나에게는 할아버지인 이분은 일본의 탄광에서 돌아가셨다.
    혼자되신 할머니는 보상금을 절반으로 딱 잘라서 아버지 몫으로 장조카에게
    아버지와 함께 맡기고 삼촌만 데리고 재가를 하셨다.


    아버지뻘되는 형님과 어머니뻘되는 형수..나에게는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가
    된다...밑에 맡겨져서 양육되기 보다는 머슴살이를 하다시피 했다.
    학교 보내마 하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체구가 작은 아버지는 지게도 따로
    맞추어서 30리 산길을 매일 나무하러 다녔다.


    어깨너머로 배운 한글과 한자를 산모롱이 돌다 조금 쉬는 틈에 지게작대기로
    흙바닥에 그리며 글도 배우셨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논 네마지기를 할아버지의 목숨값으로 돌려받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논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곤 하셨다.
    밀가루 공장에 다니면서 논농사를 지어서 5남매를 키우셨는데 알뜰히 하신덕에
    논보다 더 넓은 밭도 하나 사셨다.


    배가 주렁 주렁 열리던 과수원과 이웃한 곳에 있는 밭이였는데 밭에서 보면
    낙동강이 훤히 보이는 전망좋은 곳이였다.


    그 밭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산소가 두개 나란히 있었다.
    몇십년이 흘러도 역시나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이 산소는 해마다 아버지가 벌초를
    했고 막걸리도 한잔씩 올려지고는 했다.
    "아부지요! 저 산소는 주인도 없는데 파푸믄 안돼는기요? 배추심어도 백포기는
    나오겠구만은요..."
    어림잡아 10평정도는 자리를 차지하는 듯 보이는 이 주인없는 산소는 밭 가운데
    차지하고 있어서 여간 눈에 거슬리는것이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라믄...죄 짓는 기라..."
    되돌아 오는 아버지의 대답은 언제나 이랬다.


    내가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전에 3살 터울인 바로 밑의 여동생이 중학을 가야할
    때였는데 둘다 중등교육을 시키기에는 아버지는 너무 가난했다.
    며칠을 고민하던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장만한 아끼고 아끼던
    밭을 팔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낫을 갈고 날이 선 낫으로 아버지는 밭둑을 깨끗히 정리를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슴속에서 밭의 미련을 지우신 것이다.
    그날 우리 밭에는 유난히 엉겅퀴가 꽃을 많이 피웠었다.
    아버지 가슴속에 든 피멍처럼 자줏빛으로 짙어진 엉겅퀴 꽃이 많이 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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