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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자 알렉산더
    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0. 21:18


    동성애자 알렉산더 
    2005-01-05 오전 10:41:47

     

     

    알렉산더 ( Alexander )

     



    감 독 : 올리버 스톤 
    주 연 : 발 킬머 , 콜린 파렐 , 안소니 홉킨스 , 안젤리나 졸리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안젤리나 졸리다.
                인테넷으로 '안졸리나?졸리!'등으로 패러디 되기도 했지만
                참 매력있는 여인네이기 때문이다.)
    각 본 : 올리버 스톤 
    촬 영 : 로드리고 프리에토 
    음 악 : 반젤라스 
    편 집 : 알렉스 마르퀴스 
    미 술 : 잔 뢸프 

     



    (극장에 가기 전.....)

     

    두번이나 헛걸음을 치고 생뚱맞게 다른 영화들만 보고 한 끝에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결국에는 평일날을 골라서 보게 된 영화가 알렉산드이다.
    내가 이 영화를 꼭 볼려고 안달이 난것은 워낙이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있는 역사의 흐름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있는 탓이다.

     



    나는 알렉산더라는 인물을 역사에서 되새김질 할때 두가지 생각을 한다.


    첫번째는 동양과 서양의 첫번째 싸움의 주역이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싸움에서는 알렉산더라는 인물에 의해 승리의 여신이 서양쪽에
    그 미소를 보냈고 동양으로서는 첫번째 굴욕을 당한 것이기도 했다.
    이 싸움의 두번째는 잘 아는 징기스칸에 의해 말끔히 복수된다.
    전쟁은 특히 고대의 전쟁은 진법의 싸움이다.


    마케도니아가 속한 그리스諸國은 중무장한 보병위주의 진법을 개발했다.
    자기 키보다 몇배나 긴 창을 방패막으로 1개 중대가 뭉쳐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 백병전이 전쟁의 주요 전략이던 당시의 전쟁에서 한동안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반면에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지역이였던 페르시아는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서 항상 첨예하게 서양과 대립하고 있었다.
    다리우스1세때부터 끊임없이 그리스를 침범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거듭했다.


    알렉산더와 일전을 벌였던 사람은 다리우스3세 였다.
    그는 할아버지 다리우스1세가 발명한 전차...지금의 전차와는 다르고 말이
    끄는 마차를 전투에 알맞게 개조를 한 전차를 주력으로 진법을 펼쳤다.
    다리우스가 진법에 충실했다면 숫적으로 열세였던 알렉산더는 변칙을 사용했고
    그 변칙에 보기좋게 당한 것이 결국에는 다리우스의 패배로 이어졌다.


    두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알렉산더가 승리를 이룰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마케도니아가 속한 그리스諸國에 널리 퍼진 관습때문이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다리우스는 절대 군주였지만 그리스는 군주가 일정한 권한만 소유했을뿐
    완전한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겠다.
    절대군주밑에서는 전쟁에 이겨도 모든 전리품의 권리는 왕에게만 있지만
    그리스는 전쟁에 이기면 전리품을 계급순으로 공정히 배분을 한다는데 있다.


    "인간은 남의것보다 자기것을 위해 싸울때 몇배의 힘을 발휘한다."
    이것이 내가 역사를 읽고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진리중의 진리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내 것의 질량적 증가를 위해 투쟁해왔고 앞으로도 이것을
    위해 투쟁해 나갈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첫판은 알렉산더에게 동양을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는 인도의 수백개 왕국들중에 겨우 몇개를 정복하고 무더위와
    우기와 코끼리군단에 쫓겨서 퇴각을 하고 만다.
    두번째판에서 징기스칸에게 서양은 완전히 무릎을 꿇고 만다.
    알렉산더가 동양에 거둔 승리가 미완의 승리라고 한다면 진기스칸이 서양으로
    부터 거둔 승리는 완벽한 승리 그 자체였다.


    이 영화도 영웅의 미화라는 측면에서 내셔널트레져처럼 서양인의 시각에서
    만든 일종의 서양적 영웅의 미화이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 자체가 서양은 항상 우월하고 동양은 항상 야만인
    할리우드 영화의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번쯤은 나는 동양인이다에 형광펜을 그으보기 바란다.

     


    (영화관에서....)

     

    애꾸눈 싸움꾼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이 영화의
    주인공인 알렉산더대왕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한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으로라고 역사는 쓰고
    있으나 반디불이는 인도부분은 승복하기 어렵다.
    인도에서는 자연환경과 전염병에 견디다 못해서 퇴각을 했고 통치를 위한 총독도
    없었기 때문이며 당시의 인도는 수백개의 왕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탄생에 관해서는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영웅전 작가)가 “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 또는 “필립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다.
    영화에는 애꾸눈 필립왕과 알렉산더의 갈등을 비중있게 다루기는 하지만
    필립왕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데려다가 아들을 공부시킬 정도로 열성적이였으므로
    알렉산더도 역시 부친을 존경했던것 같다.

     


     

    그는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여 원정(遠征) 때도 그 책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
    대동하여 각지의 탐험(探險) ·측량 등을 시킨 일, 또는 변함없이 그리스 문화를
    숭앙한 일 등은 스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부왕으로부터는 전술 ·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웠고, BC 338년의 카이로
    네이아 전투에 직접 참가하였다.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니, 그리스
    도시의 대표자 회의를 열고 아버지와 같이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혔다.
    때마침 마케도니아의 북방에 만족(蠻族)이 침입하고 서방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친정 (親征)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그리스가
    동요하고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즉시 테베를 토벌하고 테베시(市)의 전시민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영화는 필립왕과 왕비 올림피아간의 불화를 근거로 해서 올림피아의 필립왕
    암살설을 강하게 지지하는 듯 하다.
    당시의 여러상황이나 당시의 평균수명으로 볼때에도 근거가 희박하기는
    하지만 필립왕의 암살배후에 대한 것은 지금도 역사의 베일에 쌓여있다.

     



    BC 334년에 그는 마케도니아군(軍)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小)아시아로 건너갔다.
    먼저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워 승리하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하였으며, 사르디스 그 밖의 땅을 점령한 뒤 북(北) 시리아를
    공략하였다. BC 333년 킬리키아의 이수스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대파하였
    으며, 이어 페르시아 함대의 근거지인 티루스(티로스) ·가자 등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시리아 ·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이집트를 공략하였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
    하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시(市)를 건설하고 1,000 km가 넘는 사막을
    거쳐 아몬 신전에 참배하였다.

     



    여기서 ‘신(神)의 아들’이라는 신탁(神託)을 받았는데, 이후로 그는 만인동포관(萬人
    同胞觀)을 지니게 되었다.
    BC 330년 다시 군대를 돌려서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가우가멜라에서 세 번이나
    페르시아군(軍)과 싸워 대승하였다. 이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도주하였으나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하여 바빌론 ·수사 ·페르세
    폴리스 ·엑바타나 등의 여러 도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정복하고 "록산느"라는 지역의 공주와 혼인을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만인동포관을 실천해 보인다.
    영화에서와 같이 록산느는 알렉산더의 아이를 임신하였으나 알렉산더의 급사로
    인하여 결국 유복자를 낳게되지만 그후 분열된 제국의 제후에게 암살당하고 13살의
    아들도 죽임을 당한다.

     



    그는 여기서 마케도니아군(軍)과 그리스군(軍) 중의 지원자만을 거느리고 다시
    동쪽으로 원정하여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강(江)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사 중에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고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인도의
    코끼리 군단에 밀려서 결국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왔다.


    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땅에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지은 도시를
    70개나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 동점(東漸)의 거점이 되었고, 헬레니즘 문화의 형성에
    큰 구실을 하였다. 그의 문화사적 업적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
    한 데 있다.


    그가 죽은 뒤 대제국 영토는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의 세 나라로 갈라졌다.
    영화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암살과 연관짓는 암시를 은근히 보여주지만 나는
    그의 암살설을 일축한다.
    끝없는 성공...한번도 실패가 없었던 그에게 인도에서의 패배에 가까운 실패를
    경험하고 크나큰 충격에 빠졌기 때문에 스 스트레스가 돌연사를 일으킨것이라고
    본다. 영화밖의 이야기를 언급하려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잠깐 나오기는 했다.
    이 예를 보면 평균수명이 겨우 40도 안되던 그 시절의 비절제가 죽음도 좌우
    했을만 하다.


    (영화관 바깥의 이야기들....)


    사람들은 알레산드로스를 신과 동일한 인간, 디오뉘소스 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격상시키고 싶어했다. 또한 자신도 강렬히 원한 일이기도 했다.


    왜 하필이면 디오뉘소스인가. `디오뉘소스'가 무슨 뜻인가. `뉘사에서 온
    제우스'라는 뜻이다.
    디오뉘소스는 인도 땅 뉘사 산에서 그리스로 온 신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원정길에 그리스에서 뉘사로 간 인간이다.
    만약 그가 인도의 정글에서 전사를 했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처럼 인간이였지만 신이 되어버린 몇사람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서 다시 돌아왔고 결국 영웅일망정 신으로 승화되는데는 실패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뉘사라는 곳(a place called Nysa)'을 포위 공격할 때의 일이다…."


    `영웅열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는 뉘사를 이렇게만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 `뉘사'라는
    지명이 지니는 어마어마한 의미, 뉘사가 태동기의 헬레니즘과 유구한 힌두이즘의 접점
    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플루타르코스는,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뉘사에서 그리스로 귀환할 때의 행렬은 차라리
    디오뉘소스의 귀환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쓰고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여덟 필의 말이 끄는 거대한 마차 위의 누대에서 장군들과 함께 주야를
    가리지 않고 주연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에 이르렀을 때는 장군들을 모아 한 탈란트짜리 금관을 현상(懸賞)하고 술시합을
    벌이게 했는데 포도주 12쿠오트(일곱 되)를 마신 이 시합의 승리자는 금관을 쓰고 사흘을
    좋아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카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시합의 후유증인 술병으로 죽은 장군이 물경 41명에 이르렀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본토로 개선했을 당시 도시국가 연합이었던 코린토스회의는
    그가 그리스 여러 도시국가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한다면
    신격(神格)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테마테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올륌포스의 13번째 신으로 인정하되, 인도로부터
    술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그를 주신(酒神) 디오뉘소스의 화신(化身)으로 숭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제안을 두고 `개같은 내 인생(Cynicos Bios)'을 노래하던 견유철학자(Cynicist)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빈정거렸다고 한다.


    "저 친구들이 알렉산드로스를 디오뉘소스의 화신이라고 한 다음에는 틀림없이
    이 디오게네스를 세라피스의 화신이라고 할 테지."


    `세라피스'는 디오뉘소스보다는 신격이 까마득히 높은 이집트 신이다.


    영화의 전체흐름에서 알렉산더가 동성애자임을 강하게 보여준다.
    알렉산더의 원정방법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제국이였다. 학자도 대장장이도
    여자도 아이도 심지어는 창녀까지 같이 하나의 거대한 집단으로 움직이는
    제국과 같았다.
    그런데도 "록산느"라는 이국의 여인과 결혼하기 전까지 그는 여자보다는 남자를
    탐했음을 영화는 여기저기서 보여준다.


    영화는 알렉산더의 의문사를 이렇게 매듭을 짓는다.
    유일한 심복이자 가장 신임하며 동성애의 파트너를 인도로 부터 가져온 열병으로
    죽게 만들고 그 충격으로 술을 탐닉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말이다.
    마지막 술잔속에 얼핏 보이는 메두사머리를 한 모후(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이
    투영됨으로써 아버지처럼 암살되었을지 모르는 알렉산더의 최후에 대한 숙제를
    스크린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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