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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 장영실의 묘..
    아산소식 2006. 6. 7. 15:26


    과학자 장영실의 묘..

     

     

    지식검색으로 유명한 포털사이트 엠파스에서 설문으로 조사한 내용중에
    가장 만나고 싶은 우리나라 위인 3위..십만웑;폐의 인물로 추천하고 싶은
    사람 7위를 기록한 사람은 장영실이라는 분입니다.


    장영실...
    보편적으로 낯익은 이름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에도 몇번씩 아니면 몇십번씩 이분의 흔적을 만나기도
    하는데 정작 그 흔적에서 이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최고액 화폐인 일만원짜리 지폐에는 앞면 왼쪽에 물시계가
    그려져 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정밀기계라고 할 만한 이 물시계는
    바로 장영실이라는 분이 만든 것입니다.


    조선시대를 통털어 이 분만큼 자수성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것입니다.


    장영실은 조선 전기 과학자로 본관은 아산(牙山)입니다.
    기생의 아들로 동래현(東萊縣)의 관노로 있을 때 재능이 뛰어나 세종의
    명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공부하였습니다.
    귀국하자 면천되고, 1423년(세종 5) 상의원별좌(尙衣院別坐)에 임명되어
    궁중기술자로 활동하였습니다.


    1424년 물시계를 완성하여 정 5 품의 행사직(行司直)으로 승진하였고, 1432년
    천문관측의기(天文觀測儀器) 제작 계획에 착수하여, 먼저 간의(簡儀)·혼천의
    (渾天儀)를 완성하고, 1437년 대간의·소간의 및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懸珠日晷)·천평일구(天平日晷)·정남일구(定南日晷)·앙부일구(仰釜日晷)·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규표(圭表) 등을 만들었습니다.


    1434년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완성하여, 그 공로로 대호군
    (大護軍)에까지 승진하였고, 38년 다시 천상시계와 자동물시계 옥루(玉漏)를
    만들었는데 서양보다 약 200여년 앞선 것입니다.


    또한 이천 등과 함께 금속활자의 주조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조선시대의
    활판기술을 대표하는 갑인자(甲寅字)와 그 인쇄기를 완성하였습니다.
    42년 그의 감독으로 제작된 왕의 가마가 부서져 투옥되고, 장형(杖刑)을 받은 뒤
    파면당했는데 그 이후의 기록은 없습니다. (야후검색에서 일부 참조)

     

    장형 100대에 쳐해졌으나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세종은 형을 감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이미 장 80대를 맞은뒤라 감옥에서 장독으로 죽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술자..과학자..무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푸대접이
    얼마나 심한지 장영실의 묘를 찾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행의 길입니다.
    아산시 홈페이지에도 아산을 빛낸 인물로 버젓히 올려놓고 그의 행장은
    요란스레이 써놓고도 정작 그의 유일한 아산에서의 흔적인 묘소에 대하여는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겨우 다른 사이트를 통해서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1구까지만 알고서 무작정
    차를 몰아서 문방리1구 노인정까지 간 다음 주민에게 물어도 사람없는 농촌에서
    그 나마 만난 두사람 모두 절레 절레 고개를 흔들 뿐입니다.


    소로를 한참 헤맨 끝에 겨우 간판 하나를 찾아 냈습니다.
    아산 장씨 대동회..그리고 장영실 묘...
    장영실이 선비였다면 조선초에 활동한 사람이니 만치 아마 관광지로 개발을 하려
    난리를 쳤을텐데..참 아쉬움 가득했습니다.


    절대로 차 두대가 비켜갈수 없는 길을 한참 들어가니 이번에 만난 곳은 아산 장씨의
    시조를 모시는 대종회..즉 사당이 나옵니다.


    차에 내려서 대종회를 관리하는 집에 초인종을 눌러서 물어서야 겨우 찾았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보면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일러서 태종이 아꼈고 나도 그를
    아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끔찍하게 생각 하셨나 봅니다.
    그 만큼 재주가 남달랐다는 이야기이지요.


    하루는 세종대왕이 가마를 타기가 불편하니 쉽게 오르내릴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장영실은 이번 참에 계단도 만들 뿐 아니라 바람으로 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칸막이를 설치하는등 최선을 다했지요.
    그런데 바람이 무지막지 하게 불어서 가마꾼들이 중심을 읽게 되어 가마가
    와지끈 부러지고 말았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평소 장영실을 고깝게 생각하던 무리들이 연이어 상소를 올리고
    결국에는 장영실은 벌을 받게 됩니다.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수 없습니다.
    10년 정도만 현직에 더 있었더라면 더 많은 업적을 우리앞에 남겨두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찾아가는 길은 참 어려웠습니다.
    아산시 홈페이지에 약도만 하나 있었더라도 쉽게 찾을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약도 하나를 그렸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면 송악나들목에서 아산,도고방면으로 길을 잡아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목표로 가다가 문방리 삼거리(엄격하게는 사거리)를
    만나면 영웅장어 옆길이 있는데 이곳으로 잠깐 가면 죄회전하는 세멘트길을
    만나게 됩니다.
    일단은 아산장씨 제실까지 가서 길을 물어보아야 제대로 찾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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