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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위해 떼를 써다오..딸들의 비망록 2006. 5. 11. 22:30
아빠를 위해 떼를 써다오..
2004-06-28 오후 6:16:04
사랑하는 나의 딸들아!
오늘은 무지하게 짜증이 나는 날이다.
나만 짜증나는게 아니고 에어콘도 없는 콩나물교실에서 공부하는 너희들은
더욱 짜증이 나겠지.
오늘은 후덥지근한 날씨도 날씨려니와 이라크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분을 두고
기독교단체들이 가족을 부추겨서 국립묘지를 운운하고 있는게 참 가슴이 아프고
자증도 저절로 난다.
더군다나 여론의 매를 피할려는 정치권도 동조를 하고 있다니....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규칙이 있단다.
이 규칙은 우리가 서로 지키자고 만들어지는 것이란다.
이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입법부..집행하는 쪽이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잘지켜지는지를 관리하는게 사법부이지.
요즈음은 모두가 이라크에서 덧없이 생명을 앗긴 한 젊은이에게 관심과
애정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과 애정이 너무 일방적이어서 나는 이글을 쓴다.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우리사회의 약속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때문에 이글을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그 젊은이의 불행에 대해서는 경건하게 명복을 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무었인가가 있는것 같아서 아빠는 사회의 잘못과
개인의 잘못을 밝혀두고자 하며 너희들이 이 글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을때
건실하고 균형잡힌 사회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애초에 외무부의 대응도 잘못되었고 정부의 파병방침이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도
분명 잘못되었으므로 공무원들도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만 할것이다.
어느정도 알면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은 미국도 과연 맹방인지가 의심스럽고
테이프를 가지고 있으면서 독점의 욕심에 빠져서 대충 넘어간 AP통신사도
역시나 크나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본다.
이번기회로 정부에서는 책임질사람에게 무거운 책임을 과해야 하고
또 다시 있을지 모를 유사한 일에 대비할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은자의 나라에서 세계로 나서는데 대한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가나무역이라는 회사의 문제다.
이 회사는 미국회사의 하청회사인데 그 미국회사는 회사가 아니라 아예
미국의 기관에 가까운 회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 회사관계자들에게는 테러단체들이 현상금으로 금 10키로에서 20키로를
걸어둘 정도라고 하는 구나.
세계의 누구에게나 이라크전쟁의 성격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종교와 석유를
꼽고 있을 정도로 종교전쟁의 색채가 강한것이 사실이다.
이런 전쟁터에 기독교를 전도한답시고 가는 사람들도 문제를 키운것은 사실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가 될때도 그랬고 카톨릭이 이나라에 전해질때도
엄청난 피비린내가 있었다.
고조선의 강대함과 고구려의 강성함이 찾아볼수 없게 된 이면에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서양종교들의 전파로 정신세계에서 우리것이 없어진데도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지금의 이라크 사람들이 가지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의 강도는 아마도 엄청날것이다.
이런때는 좀 피해야 한다.
그들이 전쟁의 상흔을 털어버리고 온전히 바로 서있을때 토론과 모범을 통해서
또는 감화를 통해서 스스로 개종하도록 해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도리이다.
미국의 힘에 눌리어 힘들어 하는 그들에게 총칼을 앞세운 강요는 앞으로도 수많은
피를 부르게 될것이다.
아빠가 단 한번도 너희들에게 아빠가 가진 종교를 강요치 아니하는것은
나중에 어느정도 자라서 세상이 무었이고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를
스스로 자각할때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라는 생각에서 이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남의 생각..남의 행동..남의 사상..남의 종교를 철저하게
존중해주고 그것을 바꿀려고 노력하지 마라.
아빠는 이슬람의 모든 예언자를 존중하는 태도는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불교의 자비와 통하고 우리조상이 믿어온 하늘님과 통하기 때문이다.
남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좋은점을 찾아서 온전히 내것으로 만드는게 훨씬더
가치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너희들이 자라서 그런 위험한 전장의 한 가운데 서있게 되었을때는
반드시 스스로 위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나라에
도움을 청하도록 하고 나라의 통제에 따르도록 해라.
우리가 약속으로 만든 나라에서는 통제되는 구성원에 대해서만 책임질수 있다.
통제되지 않는 국민까지 나라에서 보호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미국..일본..프랑스..어느 나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직장생활 27년...
요즈음 천대받는 기술자로써 당당하게 살아온 27년이다.
내가 큰딸..너만했을때 아빠는 교복보다도 교련복보다도 실습복이 최고로 마음에
들어서 거의 대부분을 입고 다녔다.
오른쪽 어깨에 달려있는 견장의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그 말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였다.
졸업한후 여태껏 용접불꽃이 튀고 그라인더 소리가 귀청을 때리며 햄머질의 둔탁한
소리에 길들어져 왔고 그속에서 너희들을 키웠고 앞으로도 키울것이다.
지금도 아빠는 양복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다른친구들의 아빠와는 달리 유니폼을
입기를 즐겨한다.
아마 너희들은 어릴때부터 유니폼으로만 살아온 아빠가 익숙하겠지.
아빠는 아직도 유니폼이 자랑스럽다. 아직도 가슴의 한켠에는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그 짧은 문구가 멍처럼 남아서 뻐근하게 한다.
나도 나중에 은퇴를 하고 너희들이 시집가서 낳은 외손주를 보다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뭍이고 싶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스스로 생명을 버린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알았는데 요즈음 세상은 그런것이 아니더구나.
그때쯤에는 너희들도 나를 위해서 떼를 써주기 바란다.우리아빠도 조국근대화의 기수였으니 국립묘지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면 갈수도 있지
않을까....먼저가서 묻혀있는 그 분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고 염치를 가르쳐준 할아버지에게도
미안한 자식이 되겠지만....'딸들의 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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