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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이별가[여름여행길에서_강원도 양양]
    삼행詩 2022. 8. 3. 12:42

    삼행시-이별가[여름여행길에서_강원도 양양]

     

    홍련암

    이태 만에 다시 찾은 언덕에 번진 푸른 먹

    별들이 밤마다 피워놓은 해당화 참나리

    가없이 드넓은 우주, 꽃으로 건너는 다리

     

    해수관음상

    이런저런 세상사 감탕물에 빠져 허우적

    별원(別願) 세워 건지리라 뜻하신 그대로

    가루라 날개 타시고 사바에 납시어라

     

    죽도암

    이승에 펼쳐진 저승의 풍광들

    별나라 기괴한 바윗돌 내려와 앉은

    가냘픈 작은 암자에 여승과 고양이 서넛

     

    서퍼 비치

    이국의 해변인 듯 열려있는 푸른 바다

    별난 풍경 잘 그려진 지구촌 부채 하나

    가랑비 태워 온 파도, 잠깐 젊어진 마음

     

    건봉사

    이빨 사리 모셔둔 적멸보궁 건봉사

    별들은 지난밤에도 떨어져 계곡을 맑히고

    가람은 금강산 아래 그리움으로 서있다

     

    양양 남대천

    이제는 돌아가야지 산 그림자 물 내음 되는 곳

    별빛 따라 물길 너머 아득한 그곳으로

    가야지 가야만 하지, 그렇게 돌아오는 연어들

     

     

    *별원(別願)[명사]부처나 보살이 각각 개별적으로 세운 서원(誓願).[아미타불의 48(),약사불의 12원 등.]총원(總願).

    *가루라[迦樓羅garuda ]/가루라(迦樓羅garuda )[명사]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머리는 새,몸은 사람을 닮고,날개는 금빛인데 부리로는 불꽃을 내뿜으며,용을 잡아먹고 산다 함.]금시조(金翅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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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급쟁이에게 여름휴가의 무게만큼 무거운 게 또 있을까 싶다. 한 달 전부터 남으로 가야한다 북으로 가야한다 식구 간에 설왕설래하다가 마침내 북으로 가자하고 또 몇 년 만에 여행일정표도 만들어 보았다.

     

    23일의 짧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원래 계획은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서 건봉사와 고성해변이었다가 고성 쪽에 숙소를 잡을 수 없어서 조금 아래에 있는 양양으로 정했다. 마침 둘째딸이 여행길에 같이 해주었다. 첫날은 저녁에 숙소 도착해서 자기에 바빴다. 하기사 도로에 4시간을 뿌렸으니 시간이 있는 게 이상하다. 다음날 아침 낙산사를 들렀다. 낙산사는 이삼년에 한번 정도 오는 것 같다. 이태 전에는 아내와 둘이 온 곳이다. 이 절에서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바닷가 절벽에 자리한 홍련암이다. 이 절 역시 의상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전국의 오래된 사찰 중 의상스님이 창건한 절이 무척 많다. 경이로울 정도이다. 하지만 신라가 제법 부유한 시절이고 의상이 왕족이어서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홍련암.... 자연이 부처님전에 올린 꽃이 환하다

     

    낙산사에서 빼놓지말고 보아야 할 곳...해수관음상

     

    이 홍련암도 672(문무왕 12) 의상(義湘)스님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 대나무가 솟은 곳에 지은 불전(佛殿)이라 한다. , 다른 이야기는 의상이 이곳을 참배할 때 푸른 새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하였다. 7일 후 바다 위에 홍련(紅蓮)이 솟아 그 가운데 관음보살이 현신하였으므로 이 암자 이름을 홍련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바닷가 암석굴 위에 자리 잡은 이 암자의 법당 마루 밑을 통하여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의상에게 여의주(如意珠)를 바친 용이 불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이와 같이 지었다고 한다. 법당에는 조그마하게 밑을 볼수 있는 창이 있는데 마침 법회중이어서 보지는 못했다.

     

    홍련암 부근에는 해당화, 참나리, 수국, 접시꽃등이 지천이었다. 마치 자연이 법당의 부처님 전에 꽃 공양을 하는 듯하다.

     

    기암괴석들이 죽도암의 마당처럼 늘어서 있다.

     

    다음 코스를 둘째에게 일임했더니 젊은 아이답게 알려진 까페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핫하다는 서퍼비치를 가보자고 한다. 해변으로 몰려오는 큰 파도를 멋있게 타는 서퍼는 영화에서만 보던 이국적 풍경이었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서핑으로 통일된 해변이다. 아쉬운 것은 가랑비가 잠재운 듯한 고요한 바다였다. 서퍼들은 파도를 기다리느라 다들 목이 한발이나 빠진 듯하다. 구경하는 사람도 맥이 빠져 강원도 명물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60년 정도 되었다는 노포는 현대식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해변에 주황색 스레이트 지붕의 낡은 건물이었다. 노포답게 맛도 푹 익어 있었다. 해변의 끝단에 면한 죽도라는 작은 섬에는 죽도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었다.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절 주변에 있는 바위들을 물이 깎아 만든 수많은 자연의 조형물들이었다. 마치 어디 먼 행성의 돌들을 가져다 놓은 듯한....

     

    오색탄산온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요즈음 무릎이 고장나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잡은 코스인 오색탄산온천으로 길을 잡았다. 도착한 오색탄산온천, 이 곳은 찜질방도 같이 하는데 요즈음 이 쪽에서 숙소잡기가 만만하지 않으니 찜질방에서 하룻밤 유숙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탕 안에 조그만 별도의 탕이 탄산온천탕인데 온천이라면 따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사정없이 깨버린 곳이었다. 좁은 탕은 사람들로 빽빽했고 한참을 기다려 한 사람이 나온 틈을 비집고 몸을 담그니 물이 차가웠다. 27도 정도 된다고 하니 온천이라 하기엔 그렇기는 하다. 완전히 흙탕물이다. 탁도가 얼마나 높은지 허벅지에 올려놓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안내판에는 탄산성분의 산화로 인하여 처음에는 맑은 물이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흙빛이 된다고 한다.

     

    비는 종일 내렸다. 음악의 높낮이처럼 빗줄기의 강약만 바뀌면서 줄기차게 내렸다. 다행인 것은 차에서 내리면 가랑비로 차를 타면 다시 소낙비로... 무더운 여름 여행하기에 딱 좋은 정도로 비가 오니 그로인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도 줄기차게 비는 내렸다. 숙소 바로 옆은 남대천이다. 남대천은 가을에 연어들이 회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강릉에도 같은 이름의 남대천이 있다. 연어들은 DNA속에 저장된 고향의 정보를 따라 태평양의 파도를 넘고 넘어 고향을 찾는다. 사실 여기서 상류의 물살이 거센 계류를 타고 오르는 길이 더욱 지난하다. 고생의 시작은 지금부터인 셈이다. 그렇게 오른 계류에 알을 낳고 수정을 하고 연어는 일생을 마감한다. 골짝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물 냄새, 산 그림자를 DNA에 새기고 다시 바다로 길을 떠난다.

     

    건봉사의 적멸보궁... 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 축소판이다.

     

    다음날 아침 펜션주인에게 체크아웃을 통보하고 길을 나섰다. 가고 싶었던 절 건봉사(乾鳳寺)로 길을 잡았다. 중간에 조금 늦은 아침을 먹었다. 양양 지방에서는 유명한 김영애 할머니 순두부가 있는 곳에는 10개 가량의 순두부집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은 이 집 뿐이다. 다른 집들은 줄을 설 필요도 주차를 고민할 필요도 없을텐데 모두 이집에만 몰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 속을 모르는 사람들에 나도 끼어 한 끼를 해결했다.

     

    고성에 접어들어 길 번호도 없는 소로로 들어서자 군용차들이 부쩍 눈에 많이 뜨였다. 언덕으로 이어진 길 가생이에는 적군 전차를 막기 위한 장애물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여기가 접경지역임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이 십여 년 전에 왔을 때 건봉사는 아예 민간인이 들어갈 수 조차 없는 곳이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제약 없이 오갈 수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절 바로 입구까지 차가 들어가니 내심 아내에 대한 무릎걱정이 사라졌다.

     

    건봉사는 조선시대 전국 5대 사찰중의 하나였고 한국전쟁 전에는 36본사중의 하나였던 거찰이었다. 고구려 승려였으나 신라에 불법을 전한 아도(阿道) 스님이 신라 법흥왕 7(520)에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고, 그 후 도선국사가 중수할 때 서봉사라 하다가 고려 공민왕 7(1358) 나옹선사가 다시 중수하면서 건봉사(乾鳳寺)라 하였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기둥이 4개인 불이문이 있는데 한국전쟁때 유일하게 불타지않고 온전하게 남았다고 한다. 불이문을 지나면 보물 1336호인 능파교를 만난다. 이 능파교를 지나야 대웅전으로 들어선다. 대웅전 앞에서 보는 풍경은 산속임에도 꽤나 시원한 풍광을 베푼다. 이 자리에 대웅전을 지은 이유를 알만하다.

     

    대웅전 옆 전각에서 부처님 치아사리 친견장이 있었다. 탑을 새로 지어 그 속에 모시기 전에 대중에 친견을 하도록 배려했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치아사리 친견하고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적멸보궁은 통도사 금강계단을 축소해 놓은 모양이다. 오대적멸보궁중의 하나이다. 애초에는 통도사에 불사리와 치아사리 100과가 모셔져 있던 것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통도사에서 탈취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도일하여 담판을 지어 다시 찾아와서 전국 다섯 곳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그중 건봉사에는 치아사리를 모셨다.

    마치 오래된 숙제 하나를 완성한 느낌이다. 오래전 마음 내어 왔을 때는 민간인이 갈 수 없는 곳이었고 민간인 출입이 자유스러워 졌을 때는 삶이 발목을 잡았다. 금강산 초입에 자리 잡아 예부터 금강산 건봉사라 불리워진 절... 이제는 등에 금강산과 그 사이를 가로막은 철조망을 걸망처럼 짊어진 수행자처럼 서있다.

     

    촌음(寸陰)이라는 말이 이런 때 쓰이는 것인지... 이제 돌아가는 길이 남았다. 마지막 행선지 는 양양의 핫 플레이스라는 바다뷰제빵소.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정도였는데 이미 빵들이 거의 매진이다. 이 집은 빵맛보다 바다 풍경이 한 맛 하는 곳이다. 뷰 포인트가 좋은 2층에는 자리 쟁탈전도 대단했다. 재료소진으로 다시 만들지 않는다고 하니 남은 빵 몇 개와 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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