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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투이야기_똥광
    화투 이야기 2015. 12. 11. 13:21

     

     

    [사진은 병뚜껑 재활용 공예_병뚜껑+에폭시 레진]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내 노동의 대가를 받은 것은 노름판의 화투그림을 그린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으니 벌써 45년 전의 이야기다.

     

    날씨가 유난히 추웠던 겨울, 방학을 맞아 외가에 가 있을 때였는데 그 어느 날 밤 외조부 옆에서 이제 막 잠이 설핏 들었는데 작은 외가의 누이가 날 데리러 왔다. 작은 외가는 외조부의 동생이니 내게는 작은 외조부다. 작은 외조부는 일찍 돌아가시고 작은 외조모만 계셨다.

     

    밀양 근동에서는 꽤나 소문난 노름꾼의 전력을 지닌 외조부가 한밤에 넘나다니며 삵을 만나기도 했고 귀신에게 홀릴 뻔도 했다는 고개를 달빛을 어깨에 지고 넘어 도착한 작은 외가는 그야말로 동네 장정들 모두 모여 한 판 신나는 신명놀음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외조모의 회갑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친 외삼촌도 그 자리에 계셨다. 아마 친 외삼촌이 시켜서 나를 데려온 모양이었다.

     

    사연인즉슨 흥이 어느 정도 오르자 자연히 한 곁에 노름판이 벌어졌고 그 판에 끼이지 못한 젊은 청년들이 또 다른 판을 펼쳤는데 여벌의 화투가 짝이 몇 개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화투는 가운데에 횟가루가 들어 있었는데 뒷면은 남아 있고 앞면은 뜯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 외삼촌이 나서서 조카가 그림을 잘 그리니 앞면에 그려서 붙이자고 해서 그 밤에 나를 왕복 40리길을 오게 한 것이었다.

     

    그때 그린 그림이 화투의 똥광, 사슴이 그려진 풍열, 사꾸라 홍단, 새 세 마리 그려진 팔열이렇게 넉 장이었다. 크레용도 없이 이장님이 나라로부터 받았다는 모나미 볼펜 빨강색, 파란색, 검정색 세 가지로 말이다. 물론 꿩 대신 닭이라고 그냥저냥 화투역할을 잘 했고 몇 차례 판이 돌더니 판마다 떼어놓은 구전(데라라고 한다)으로 나로서는 상당히 큰돈을 받았다. 그것이 나의 노동에 대한 첫 댓가였다.

     

    그때 나는 만화그림에 빠져있을 때라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 중간에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슬쩍 찢어두고 종일 빼끼고 또 빼껴 그리곤 했다. 그것 알았던 외삼촌이 나를 불렀던 것이다.

     

    노름은 놀음이 변한 말이다. 놀음은 놀이를 말하는 것인데 기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놀이라는 여가를 즐긴다는 것이다. 노름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낱말인데 놀이에 돈이나 재물을 걸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화투는 노름의 대명사였지만 인터넷 도박이 파이를 키운 요즈음에는 그다지 즐기지 않게 되었다. 화투는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그 성가를 한껏 높였다. 일본에서도 포르투칼의 카드놀이를 모방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국의 놀이가 일본에서는 정착하지 못한듯 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투전이라는 노름이 숫자를 맞추는 방식으로 크게 유행을 하였는데 이것이 화투로 자연스레 대치되었다.

     

    화투 중에서 가장 대접을 받는 것이 똥이다. 하트 모양의 그림과 도라지꽃 같이 생긴 그림 탓으로 간혹 도라지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이 그림은 오동나무 잎과 오동 꽃이다. 위에 있는 새의 그림도 닭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지만 봉황이다. 예로부터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든다는 전설의 표현이다. 오동은 우리 화투에서는 12월을 나타내는데 일본에서는 11월이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오동나무는 역시 가을이 어울린다. 11월이 계절적으로 잘 버무러진다.

     

    "정월 솔솔 서남풍에 이월 매조를 맺어 놓고 삼월 사꾸라 산란한 마음 사월 흑싸리 흑송 되어 오월 난초 범나비는 유월 목단에 춤 잘 춘다 칠월 홍돼지 외로이 누워 팔월 공산 달 밝은데 구월 국화 굳은 마음 시월 단풍에 다 떨어지네 비 새 따라 강남 가지"

     

    하동지방에서 불리워진 화투타령인데 여기서는 오동에 대한 가사가 빠져있다. 광 하나에 상 피 하나 피 두개로 상당한 중요도에 비해 천대받는 느낌이다.

     

    또 하나 오동을 똥으로 부르는데 이는 돈과 비슷한 발음으로 더욱 사랑 받는 듯하다. 지금이야 수세식이라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농경이 주였던 예전에는 똥은 똥대로 오줌은 오줌대로 제법 값어치가 있었다. 똥은 밭작물의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원이기도 했다.

     

    오동 넉 장은 화투판의 귀족이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똥광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 대접을 받아도 좋으리라. 예전에 똥꿈을 꾸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했으니 오늘밤에 똥통에 빠지는 꿈이라도 꾸었으면 좋겠다. 내일이 로또 추첨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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