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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삼원색(삼거리 슈퍼에서)/김대근
    삼행詩 2011. 5. 25. 09:27

    삼원색 (봄비 내린 날)


    삼거리 슈퍼집 낡은 양철지붕에
    원무(圓舞)로 한바탕 신명 나는 소나기
    색 고운 이파리 하나 길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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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는 보슬하게 내려야 제맛이다. 마치 비단 한필이 바람에 흩날려 몸에 닿는 느낌으로 와야 봄비의 맛이 아닐까. 이번 봄비는 한 여름 소나기처럼 종일 내렸다. 아산에 있는 신정호수는 서울 경기지방의 6~70대 노년층에게는 추억의 장소다. 이 지역에서는 한때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 온양온천이었고 오리배를 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던 이 호수는 신혼부부들이 한 번 씩 다녀가는 명소이기도 했다. 둘레 길이가 5킬로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크기지만 걷기 열풍이 부는 요즈음에는 시민들의 산책로로 거듭났다.


    며칠전 거금을 들여 아내가 장만해준 워킹화를 처음 신고 산책을 나선 날 난데없는 소나기가 내렸다. 중간 지점에 있는 슈퍼까지 한달음에 달렸지만 봄비에 속옷까지 적시고 말았다. 호수 주변에 하루가 다르게 최신식 건물들이 식당이며, 오리집의 간판을 걸고 지어지고 있는데 이 슈퍼는 몇 십 년 그 모양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 맨입으로 장사 집 처마 끝을 빌릴 수 없어서 따스한 캔커피 하나를 사들고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으니 빗소리가 한 편의 장쾌한 오케스트라를 펼친다.


    빗소리는 상념의 촉매다. 유년시절 살던 집의 빗소리와 오버랩이 되기도 하고,  비오는 어느날 헤어진 옛여인의 뒷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중학교 시절이었나 싶다. 하교길 버스를 타고 오는데 차창으로 빗방울이 가로선을 긋는 모습에 차에서 내렸다. 학교와 집의 중간쯤으로 아직 집까지는 20여분 더 버스를 타야하는데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내 기억회로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 두시간 반을 꼬박 맞은 비에 감기는 며칠 동안 육신을 괴롭혔다. 그렇게 비에 흠뻑 젖어왔어도 관심을 기울여줄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가난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에 사람을 집에 묶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빈집, 그게 서러워서 혼자 울었다. 그날 밤, 잠잠하던 비가 다시 내렸다. 패망하고 도주한 일본인이 지은 적산가옥인 집은 원래 지붕이던 루핑과 잇대어 늘린 스레이트 지붕, 태풍으로 날아간 부분을 때운 양철지붕이 나란히 붙어서 제각각의 소리로 화음을 만들었다. 루핑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테너처럼 둔중하고 부드럽다. 스레이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아주 깊은 바리톤같다. 반면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비의 소리는 마치 경쾌한 소프라노와 같다. 겨우 몇 평의 공간에서 동시에 들려주는 이런 소리의 향연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잘 적셔주었다. 가난한 시절도 유산이라는 생각이 든것은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 였다. 인생의 깨우침이 무척이나 늦은 셈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둔재(鈍才)였던 셈이다. 그것을 모르고 아둥바둥 했으니 부질없는 삶을 살았던 셈이다. 내 그릇이 간장 종지였음을 안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하나의 장소에서 상념의 폭과 깊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내 생각의 장난일 뿐이다. 아마도 해마속에 저장된 암호화된 부호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어딘가 저장되어 있을 기억의 토막들을 이끌어 내고 있을 뿐이다.


    삼거리 슈퍼에 앉아 있으니 어느해 강원도 테백과 경상도 봉화를 여행하면서 들렀던 육송정 삼거리 슈퍼가 또 생각난다. 육송정 삼거리는 강원도 태백에서 경상도 봉화로 가는 길에 석포로 가는 길과 삼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름이 육송정 삼거리지만 그곳을 지키던 여섯그루의 잘 생긴 소나무는 백년도 넘은 세월전에 잘리워 물길을 따라 경복궁의 서까레가 되었다. 그곳에 있던 삼거리 슈퍼에서 만난 주인 할머니와 인연이 있었다. 속 썩이는 아들에 대한 푸념을 나그네인 나에게 스스럼없이 풀어 놓으시던 할머니였다. 오래전에 내 블로그 [반디불의 똥꼬]에 "문디같은 가스나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적이 있다. 다시 읽어보기는 다음 링크를 클릭하시기를~   http://blog.daum.net/roadtour/3374689 


    그 이야기에 어느분이 댓글을 달았다. 할머니의 아들 본인인지 또 다른 가족인지 댓글로 할머니의 안부를 전해왔다. 『육송정 할머님 돌아가셨습니다.   2009년6월에요.   지금은 큰아들이 관리하고 있어요.   맛있는 청국장 대접해드릴터이니 한번 들려주세요.』


    비가 그쳤다. 캔커피가 바닥을 보인지 한참 되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재촉한다. 발끝이 멈칫한 곳에 비에 떨어진 이파리 하나가 눈길을 잡아 끌었다. 아피리 하나에 네가지의 색이 마치 누군가가 그린 것처럼 물들어 있다. 어디로 나서는 길일까. 하필이면 번잡한 산책로로 길을 나선 것일까. 순간 물욕이 배꼽 아래로 부터 올라왔다. 그렇게 핸드폰 케이스에 고이 펴서 주워왔다. 인연이라는게 꼭 사람과 사람만의 관계에 한정지을 것은 아니다. 살펴보면 하루에도 수 십 번, 수 백 번씩 처음 만나는 낯선 것들과 스치게 된다.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세한 기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라서 그냥 스쳐보내고 만 작은 기쁨들을 발견하는 기술을 잘 습득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의 근원은 생각속에 있다. 불행하다는 것은 내 생각이 불편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모든 것이 생각의 장난이다. 그래서 불가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오늘같은 잠깐의 소나기는 선물이다.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고 새로운 인연들을 발견하게 하는 돋보기며, 과거와 현재의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자가 되기도 한다. 회상과 명상의 경계가 무채색으로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그것도 작은 기쁨이다. 감사할 일이다.


    이 글을 쓰다가 불현듯 이파리를 갈무리해둔 책을 펼친다. 노란색 부분은 갈색으로 빛이 바랬다. 책속에서 어둠에 짓눌린 탓일까. 괜스레 욕심을 부렸구나 싶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초침 한 눈금이 움직일때마다 변해가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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