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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소나무(온양溫陽 가는 마지막 전철) /김대근삼행詩 2010. 1. 7. 08:31
온양溫陽 가는 마지막 전철
소음 줄어든 자리에 찾아드는 공간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 들었다 깨어
무연히 내다보는 창, 지나온 길 어둠에 잠기다
소담스레 내리는 눈 가로로 길게 눕고
나목들 가지 흔드는 시간의 분기점
무구한 풍경들이 인화되어 박히는 차창
소매걷은 취객이 빌려간 내 어깨
나깨떡 한 덩이로 돌아와 흔들리고
무너진 중년의 삶에 덩달아 잠기고 만다
소르르 풀렸다가 다시 잠기곤 하는 그녀
나른한 하루가 회색으로 풀어진다
무거운 영혼들 싣고 달리는 마지막 전철
*나깨떡: 메밀의 가루를 체에 쳐 낸 무거리인 나깨로 만든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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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이 개통되어 서울 나들이가 쉬워지기는 했지만 한댓잠을 자지 않으려면 항상 서둘러야 한다. 10시 반이면 온양으로 가는 마지막 전철이 떠난다. 이 시간에 타도 온양에 도착을 하면 다음날 새벽 12시 반이다.
소금기에 잔뜩 절은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부딛고 허리를 부대끼며 숨죽은 콩나물처럼 흐느적 거리던 전철은 수원과 병점을 지나면 여기저기 빈 자리가 생긴다. 비로소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면 건너편 차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세월의 빠르기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덜컹대는 열차의 진동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며 마치 최면술사의 기술에 걸린듯 누구나 할 것 없이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며 점점 바깥의 풍경에도 무감해져 간다.
오늘은 차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소담스런 눈송이들이 가로로 휙휙 지나쳐 간다. 옆에 앉아 있던 나그네가 내 어깨를 빌려간지 한참 되었다. 은은한 향수처럼 술냄새가 옅게 전해온다. 열차시간에 쫓기어 미처 다 비우지 못하고 남겨두고 온 소줏병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마주 앉은 그녀의 피곤한 하루가 흔들린다. 흔들림에 깜짝 놀라 그녀가 눈을 떴다. 마주치는 눈동자에 감흥이 없기는 서로가 마찬가지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시간 여행자일 뿐인 사람들......
달린다. 온양가는 마지막 전철은......'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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