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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4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9. 14. 09:11

     

    9월 14일 오늘의 역사


    국내
      1818(조선 순조 18)  다산 정약용,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서 풀려남
      1910  <황성신문> 폐간, 작가 이상 출생
      1930  의열단원 박재혁, 부산경찰서 폭파기도
      1937  총독부, 군수동원법 실시를 결정
      1945  조선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 결성
      1948  경부선서 해방호 열차 충돌
      1949  목포 형무소에서 500여명이 탈출하는 탈옥사건 발생
      1966  한국과 미국, 평화봉사단협정 체결
      1968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덕수궁 대한문 22m 후진
      1969  공화당, 3선개헌안과 국민투표법안을 변칙 날치기 통과
      1972  일본 도쿄에서 제1회 한-일 축구정기전 열림
      1973  국무회의,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고 해군본부에 흡수키로 의결
      1977  서울 남대문시장에 화재. 점포 336개 소실, 피해 20억원
      1985  경찰, 고대앞 시위 관련 박찬종 조순형 의원 등 집시법 위반혐의 불구속
      1986  김포공항서 폭발물 폭발. 5명 사망, 30여명 중경상
      2000  소설가 황순원씨 별세
      2005  노무현대통령 유엔총회 기조연설(뉴욕)


    해외
      1321  세계 4대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 별세
      1812  나폴레옹 모스크바에 입성
      1852  영국 정치가 웰링턴 별세
      1901  윌리엄 매킨리 미국대통령, 9월 6일의 저격사건으로 별세
      1936  노벨 의학상 수상한 소련의 생리학자 파블로프 별세
      1959  소련 우주로켓, 달 표면 도달
      1960  석유수출국기구(OPEC)설립
      1972  서독-폴란드, 33년만에 국교 회복
      1982  모나코 그레이스왕비, 교통사고로 별세
      1990  이라크, 쿠웨이트주재 4개국 외국공관에 난입
      2002  중국 난징에서 최악의 독극물사건으로 600명 중독-80명이상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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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 - 그레이스 켈리(Kelly, Grace, 1929~1982) 사망  

    미국 영화배우 출신의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가 전날 막내 스테파니 공주와 함께
    타고 가던 승용차가 산길에서 전복되는 바람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1982년 9월 14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53세였다.
    1928년 11월 1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켈리는 18세 때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의 아메리카 연극아카데미에서 연기수업을 마쳤다.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서
    단역으로 출연 중 영화기획자의 눈에 들어 1951년 영화 '14시간'으로 은막에 데뷔했다.
    그가 주목받는 여배우가 된 것은 '하이눈'에서 게리 쿠퍼 상대역인 약혼녀 '아미'역을
    맡은 후부터였다. 이후 '다이얼 M을 돌려다' '상류사회' 등에 출연했고 1954년 '갈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56년 4월 모나코왕 레이니에왕과의 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왕비로 변신했다.
    생전에 3명의 자녀 캐롤란인 공주, 알버트 왕자, 스테파니 공주를 두었다. /조선일보

     

     

    1321 -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사망 

    피렌체 출생. 예언자 또는 신앙인으로서, 박해를 가한 조국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인류
    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 Divina Commedia》(1307?∼1321)을 남겼고, 이것으로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여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단테는 피렌체의 겔프당(黨:敎皇派)의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부친은 알리기에로 디 베를린
    치오네, 모친은 벨라라고 하였으나 그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조부는
    신성로마 황제를 섬겨 십자군에 참가하여 전몰한 피렌체의 기사 카치아귀다라고 《신곡》
    의 <천국편> 제15가(歌)에서 밝혀 두고 있다. 그가 9세 때에 마치 천사처럼 청순한 베아트
    리체를 연모하였음이 시집 《신생 Vita Nuova》(1293?)에 나타나 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시의 형성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틈? 단테는 수도원이 경영하는 라틴어학교를
    다녔고, 이어서 피렌체의 석학 B.라티니에게 사사하여 문법 ·논리학 ·수사학을 배웠으며
    볼로냐대학에서 수사학 ·철학 ·법률학 ·천문학 등을 연구하면서 특히 이탈리아어로 시를
    지었다.


    그 동안에 동급생인 G.카발칸티와 돈독한 우의를 맺어 고전작가로서는 V.베르길리우스를
    탐독하는 한편, 그와 시작(詩作)을 경쟁하여 서로 격려하였다. 그는 시칠리아파(派)와
    토스카나의 귀토네파의 서정시에서 받은 영향 아래 베아트리체를 향하여 싹튼 사랑을
    읊기 시작하였고, 그 후에 청신체파(淸新體派) 시인으로서의 시작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한 남성의 연정을 카발칸티가 주장하는 청신체(dolce stil nuovo)로써는 표현하
    기가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점차 독자적인 청신체의 시를 쓰게 되었다. 1290년 젊음과
    아름다움의 절정기에 있던 베아트리체가 요절하자, 단테가 찬미하는 여성의 이상화가
    급속도로 진전되었고, 《신생》의 권말에서 성녀 베아트리체를 위해 대작을 준비하겠
    다는 결의를 피력하였다. 《신생》은 운문과 산문을 섞은 소품이지만, 그의 거작 《신곡》
    의 중추가 되는 종교적 ·시적 사상의 싹틈을 엿볼 수 있고, 현실의 여성을 ‘영원한 여성’
    으로 승화시킨 수법은 당시 유행하던 청신체였다. 이 《신생》 직후 단테의 문학 및 철학
    에 대한 연구는 넓이와 깊이를 더해갔다. ... /naver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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