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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詩- (지하철) 지남철指南鐵 /김대근삼행詩 2007. 9. 11. 09:13
지남철指南鐵 /김대근
지/남철 하나 품기엔 가난이 너무 컸던 시절
하/굣길 약방 앞 쓰레기 뒤져 찾아낸 병따개
철/로에 실 묶어 얹고 목 빠지게 기다렸다
지/각을 흔들며 기차가 찌그려 만든 지남철
하/하하- 마침내 물감처럼 번지는 웃음들
철/길 옆 유년의 추억, 구름으로 피는 가을 아침
---------------------------------------------------------------------누구에게나 있는 유년의 기억들
추억이라 이름 지어진 이 기억들중에는 가난이라는 덧칠이 칠해진 것들이 유난히 많다.
가난한 집안의 5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학교에서 베풀어준 월사금 면제자가 정말 싫었다.
야속한 선생님은 흑판의 한귀퉁이에 월사금 면제자 이름을 한달에 한번씩 올렸고 나는
그때마다 가을 햇살에 말라가는 무우말랭이가 되었다.
이즈음에는 그 무우말랭이가 세월에 풀려서 그때의 아련한 향취를 그대로 전해준다.
어쩌면 그때 곤궁하지 못했더라면 그냥 소거된 기억들중의 하나였으리라.
그 곤궁함의 땟국물이 줄줄 흐르던 시절에 첫사랑이 찾아 왔다. 곤궁함은 많은 생각을
낳고 그 생각들의 자극이 내 사춘기를 일찍 앞당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첫사랑은 나와는 극과 극이었다. 구포에서 제일 컸던 빨간 벽돌집 딸래미에다
같은 분단의 제일 끝과 제일 앞이라는 지리적 길이가 왜 그렇게 길었던 것인지......
칠판에 월사금 면제자로 이름이 오를때 마다 나는 내 이름에 저주를 퍼부었으며 잠깐씩
그녀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그때의 기억이 이리도 선명하게 남는 다는 것은 아마도 매달 되풀이 되는 이런 아픔이
계속적 강화로 깊이 각인된 탓일 것이다.
한번은 준비물로 막대자석을 가져 오라고 했다. 한쪽은 빨간색으로 칠해진 막대자석을
사야겠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말해야 하는데 3살 터울의 여동생이 준비물 값을
달라고 했다가 이미 눈물만 몇 방울 얻어 걸린터라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삼켰다.
전자공고에 다니던 옆집 형에게 얻은 스피커를 분해해 얻었다는 둥근 자석을 서랍에서
찾아냈다. "이것도 지남철인데... 되겠지..."
준비물 검사에서 손바닥을 30센티 대나무 자를 세워 때리는 벌을 받았다. 손바닥의
아픔보다 내 가난이 발기발기 찢어지며 가슴을 저리게 했다.
방과후, 과외를 하지 않는 (하지 못하는~이 더 맞을듯... 당시는 학교에서 담임이 일정
돈을 받고 학교에서 방과후 과외를 했다. 정말 하고 싶었는데...) 아이들 서넛은 낙동강이
면한 철길로 놀러갔다.
철길을 가기전에 약방앞 쓰레기 통을 뒤지면 활명수 뼝따개를 몇개씩 줏을 수 있었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이 병따개는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한때 유행을 했다.
이 병따개는 앞쪽이 납작하게 눌러져 구멍이 나있서 실로 묶기에 좋았다. 우리는 실을
묶은 이 병따개를 철로위에 정성스럽게 놓고 철로및 언덕에 누워 가을 햇살을 쪼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잠시후 누워있는 등에 진동이 느껴지면서 점점 기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가 순간
눈앞으로 파파박~ 스치며 도플러 효과를 남긴 채 뒷모습을 보인다.
서리한 콩을 굽고난 후 재를 뒤지듯 주변을 뒤지면 묶인 실때문에 멀리 튀지 못한
병따개들이 납작해진 모습으로 하나둘 모습을 보인다.몸에 잔뜩 자석의 기운을 띄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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