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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선생의 유허를 다녀오다.여행기 2006. 6. 24. 07:38
김옥균 선생의 유허를 다녀오다.한이 가슴속에서
삭고 삭다가
마침내 농익어 피고름을
사방으로 튀길때
우리는 혁명이라 하지요.
그것도 역사의 양지에
서있을때 우리는
그것을 일러 혁명이라고 하지요.
삶이 공평치 않은 것은
우리들에게 내려진 숙명,
다들 고개 숙이고 못 이긴 척
살고들 있지요.
그 삶속에는 성공도 실패도
동전의 앞뒤처럼 그렇게 있지요.
오래전에..
뭐 그다지 오래는 아닌 오래전
꿈이 실다히 크고 넓은
눈빛 맑은 사내가 있었지요.
그 사내도 가슴으로 한이 삭다가
마침내 곪아서 피고름을 튀겼지요.
아..그러나
그 사내의 발자국은 음지에 있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그를 풍운아라 부르곤 하지요.
김옥균...
3일 동안의 짧은 햇살을 뒤로하고
일본..중국을 떠돌다가
육혈포 화약연기를 맡으며 떠났지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떠나는것도 영원히 떠나는게 아니라고..
그래서 그는 돌아 왔지요.
그가 태어난 이 땅으로 말입니다.
송진으로 염을 해서 썩지 않는
껍데기 육신으로 다시 돌아왔지요.
또 누군가가 말했지요.
남자는 자기일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그래서 그는 비록 껍데기일망정
참시를 당했고
몸통을 잃은 머리는 뭇사람들 침뱉는
저자에서 바람에 흔들렸지요.혁명은 로또입니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이룰수는 없는...
김옥균...
이 사내도 꿈을 잠깐 꾸었더랬지요.
그리곤 이제
두평짜리 흙이 되었습디다.
우리는 그를 일러 풍운아라고 합니다.
충청도 땅...
둔포가 있습니다.
민초들도 한때 김옥균이라는 사내와 같은
꿈을 꾸어 죽창으로 피를 튀긴 적이 있었지요.
그 때 푸른옷 입은 청나라 군대가
배를 타고 들어와 마구 뭉개고 간 동네입니다.
그 바로 옆에 영인이 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이곳이 둔포를 다스리던 관아가 있었지요.
뗏놈들의 노략질에
넌더리가 난 동네가 영인입니다.
김옥균...
그 꿈 큰 사내의 2평짜리 무덤은 그곳에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 라고나 할까...
오늘 그 곳에 슬며시 다녀왔습니다.
술 한잔...향 하나 피우지도 못했지만
산비둘기나 가끔 바람과 더불어 오는 곳에
비비적~
비비적~
사람냄새 눙쳐놓고 왔습니다.
유허에서 냐려다본 영인읍내의 모습...
저 멀리 툭트인 곳으로 옛날에는 세곡선들이 들락 날락 했답니다.
세곡선이란 백성들이 나라에 바치는 세금으로 거둔 쌀을 싣고
다니는 배를 말합니다.
유허로 오르는 입구의 돌계단에 머리를
꼿꼿하게 세운...그러나 이름을 모르겠습니다.혹시 찾아가 보실 분을 위한 서비스...
작년에는 김옥균 선생의 생가를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혹시 김옥균의 생가가 보고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김옥균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숙제로도 딱일 것입니다.풍운아 김옥균의 생가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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