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노기스 챙기라이~~
    젊은날의 자화상 2006. 4. 30. 15:13


    [키워드-주변의 일제잔재]
    노기스 챙기라이~~ 
    2004-03-01 오후 12:24:36

     


    저는 197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요.
    고등학교는 공고였는데 3년동안 실습복왼쪽 어깨쯤에 붙어있는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마크를 참 자랑스러워 햇었지요.
    톱니바퀴와 주먹..그리고 횃불로 이루어진 그 디자인도 참 마음에
    들었었지만 그보다는 기술자로서의 앞길에 대한 기대가 더 큰 탓이였지요.


    졸업을 하고 야반도주성 가출을 해서는 서울에서 힘든 타향살이를 시작하면서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입니다.
    그때만해도 현장이나 사무실이거나 사실 공고졸업자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었지요. 그때 반장쯤되는 사람은 국졸이거나 잘해야 중졸로 몸으로 기술을
    배워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입을 배정받은 부서에서는 다른 부서의 부러움을 받기도 했지요.


    배속후 첫일은 반장이 생산부서에서 파손시킨 일제감속기의 부품을 스케치해서
    설계한다음 발주를 내서 수리가지 완료해야 하는 일에 보조를 하는 일이
    였었지요.
    그분도 성질 급한 경상도 사람이였지요.


    "어이~~ 노기스 챙기라"


    "......................."


    "머하노..퍼뜩 챙기라카이"


    "......................."


    "절마가 머하고 있노..바뿌다 카이"

     

    속으로 노기스...노기스..노기스만을 자꾸 밤복하면서 3년동안 배운 모든 지식들과
    대조를 해보아도 도무지 알수가 없습니다.


    "김기사님~~ 여기요.."
    사무실에 하나뿐인 미스리가 내민건 버어니어 캘리퍼스라는 측정기구 입니다.
    멀거니 보던 반장님이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갑니다.
    그제서야 노기스란 버어니어 캘리퍼스를 가르키는 구나 생각해봅니다.
    다시 쳐다 본 미스리의 얼굴이 그렇게 환해보일수가 없습니다.

     

    잠시후 현장입니다.
    이리저리 해체를 한후에 다시 조립을 할때였습니다.
    저야 보조를 맡았으므로 이거 달라면 이거주고 저거 달라면 저거 주면되었는데


    "어이~~"


    언제나 이분한테는 제가 어이로 통합니다.


    "예?"


    "니부 보도하나 찾아온나"


    "......................."

     

    앞이 캄캄해집니다.
    니부는 무었이며 보도는 또 무었이란 말입니까?
    "그기 먼데예?"
    이번에는 신참이 큰 용기를 냅니다. 모르는것은 물어보는게 편하겠다 싶지요.
    그래서 무조건 물어보기로 합니다.


    "일마가..머라카노..고등학교까지 나온놈이 그거또 모르나..어이!"


    버럭 화를 내더니 냅다 몽키스패너를 발밑으로 획~ 던지더니 다짜고짜 초댓뼈라고
    하는 정강이를 차버립니다.


    "아~~~욱..."
    눈물이 아픈 정강이보다 더 슬픈지 줄줄 흘러내립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니부는 1/2인치를 말합니다.보도는 볼트의 일본말이지요.
    학교에서는 미터법으로 측정기구는 영어원어로만 배운 탓입니다.


    너무 고생한 탓에 일년동안 현장에서 쓰는 일본말을 나름대로 정리를 했지요.
    그리고 모교의 선생님에게 보내서 좀 가르켜서 현장으로 내 보내주십시고 했지요.
    이제는 현장도 그런 시대를 담당햇던 분들은 퇴역을 하거나 실무에서 물러나서
    대부분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건설계통에서는 많이 남아있는게 사실입니다.
    노가다..산성각..공구리...


    사실 호적도 일제의 잔재입니다.
    우리 전통적인 호적정리 방법과는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호적이 관리되고 있는데
    그게 일본식이라는 겁니다.
    조선후기에 호적을 정리하였던 방법을 오늘에 되살려서 좀 개선해서 사용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요원합니다.


    그러나 무었보다도 빨리 청산하여야 하는게 교육에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입니다.
    주입식,획일적,군대식 교육방식으로 표현되는 이 일제교육의 잔재를 하루빨리
    탈피를 해야합니다.
    사실 해방이되면서 가장 많은 수의 친일파가 남아있었던 직능단체가 교원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폐혜를 시회에 끼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우리 주변의 일제잔재입니다.

    '젊은날의 자화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간신문..내 인생의 밑거름..  (0) 2006.04.3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