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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7. 9. 21. 08:33
9월 21일 오늘의 역사
국내
668(고구려 보장왕 27) 고구려 멸망
1374(고려 공민왕 23) 공민왕 피살
1894(조선 고종 31) 죄인연좌제도를 폐지
1928 함경도에 홍수. 인명피해 1400명, 가옥 손실 37,323호
1935 부산방송국(JBAK) 개국
1945 김일성, 소련군과 함께 입북
1947 <대동청년단> 결성. 총재에 이승만, 단장에 이청천
1953 북한 공군대위 노금석, MIG15기 몰고 귀순
1959 북한, 남한의 전쟁 복구를 위해 물자 제공 제의
1976 서울 풍납동 소재 백제토성 복원공사 준공
1987 동아일보기자, 안기부의 <신동아>지 인쇄중지에 항의 농성
1988 사할린교포 3명, 소련 당국의 허가로 첫 입국
1990 녹십자사, 세계 최초로 유행설출혈열예방백신 개발에 성공
1992 충남 천안 경부고속도로서 고속버스와 승용차 연쇄 7중 충돌
1992 이란 반다르 아바스시서 대우 근로자 4명이 무장 괴한에 피납됨
1994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일어남
1998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 제4회 서울평화상 수상
1999 `금오신화` 현존 최고본, 중국에서 발견
2004 한국-러시아 정상회담, ‘포괄적 동반자관계’ 선언
2005 한미, 대화력전 지휘통제 임무이전 서명
해외
1832 영국 계관 시인 월터 스코트 별세, 대표작: <아이반호>
1860 독일의 관념론 철학자 쇼펜하워 별세, 대표작:<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866 영국 소설가 H.G. 웰즈 출생, 대표작: <우주전쟁>, <타임머신>
1934 일본 혼슈 지방에 태풍. 4,000여명 사망
1937 국제연맹, 중일분쟁 조정위원회 개최
1949 중국 정권 수립 선언
1951 동-서독, 통상협정 조인
1979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무혈쿠데타로 보카사 축출
1993 러시아 옐친대통령, 의사당 포격으로 보수파 제압
1999 타이완에 진도7.6 강진 발생. 2,400여명 사망
2002 러시아 최악의 눈사태로 영화촬영팀 100여명 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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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역사중에서 고구려의 멸망 원인만큼 왜곡된 것도 찾아 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고구려 멸망의 원인에 '연개소문'이 있다고 배워왔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철이 들면서 끊임없이 연속되었다.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이 갑자기 죽자 그의 아들들간에 치열한 권력암투가
생기게 되었고 이 분열의 틈바구니를 뚫고 당나라의 이세민이 쳐들어와서 고구려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정설이 되어왔다. 그것은 5.16으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국민간의 화합을 강조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에 역사를 꿰어 맞춘 정황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연개소문의 전횡과 그 아들들의 권력투쟁도 당시 고구려의 멸망의 원인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바닥을 친 경제력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국이 정립하고 있을때는 백제와 신라, 왜등과의 무역을 통하여 고구려에서 나지 않는
여러가지 물산들이 소통이 되었지만 당나라와 손을 잡은 신라에 의해 백제가 망하고 나자
왜와의 무역로가 차단되었고 주요 무역국가였던 백제는 물론 당, 신라와도 교역이 불가능
하여 졌다. 당시 무역중에서 고구려는 소금이나 제철제련품은 대부분 외부에 의존하여
조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비단과 같은 것은 추운지방인 고구려에서는 생산량이
극히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당나라와 신라에 포위되어 있는 형국으로 이 상태가 십여년 이상 흘러가자
마침내 고구려의 경제는 바닥을 치게 되었고 일반 소비재를 충당할 수 없었던 귀족계급의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한반도 남부를 신라가 장악하게 되면서 당나라는 군사를 나누어 한반도 남부에서 고구려를
직접 압박하였고 전선이 넓어짐에 따라 고구려의 힘도 자연스럽게 분리될 수 밖에 없었다.
당나라의 이세민은 돌궐, 선비족을 우대하면서 고구려의 우방을 자신의 우방으로 반드는
작업에 오랜 공을 들였고 고구려 귀족들간의 불화도 역시 조장해 나갔다.
당시 아시아 제일의 선진문물을 가진 당나라의 유혹에 점차로 동화 내지는 동경하는 귀족
층이 늘어나게 되면서 점차 내부분열을 일으켰고 마침내 절대권력자 '연개소문'의 죽음으로
고구려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고구려만 유일하게 당에 대항하는 나라였고 그 대당투쟁의 선봉에 '연게소문'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왕권에 우선하는 힘을 갇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내부분열을 자초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외부적 환경이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갔다'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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