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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7. 3. 30. 09:21
3월 30일 오늘의 역사
국내
686(신라 신문왕 6) 원효대사(617-686) 입적
1108(고려 예종 3) 윤관, 여진족 물리치고 개선
1445(조선 세종 27) <태평요람> 완성
1493(조선 성종 24)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별세
1895 일본은행과 조선 정부간 3백만 엔의 차관계약 성립
1902 작가 나도향 출생
1965 무즙파동
1949 38선 이북지역 도/시/군/구역 인민위원회 대의원 선거 실시
1972 박정희 대통령, 북한에 4대 군사노선 폐지 등 5대 평화원칙 제시
1978 호남선, 대전-이리 복선 개통
1981 미국 지방고등법원,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망을 선고
1984 북한 올림픽위, 남북체육회담 제안
1990 한국-루마니아 수교
1990 화가 남관(1911-1990) 별세
1995 대한변협, '현행 제도의 점진적 개선' 사법개혁안 발표
2004 한국 `고속철 시대` 개막, 고속철(KTX) 개통
해외
1746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출생
1853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출생
1854 미국 페리 제독, 일본에서 개항조약 체결
1867 미국,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사들임
1889 프랑스의 교량 기술자 에펠, 에펠탑 준공
1905 독일군 탄지에르항 상륙, 제1차 모로코 사건 발생
1967 프랑스, NATO탈퇴로 NATO사령부 폐쇄
1945 영국의 불루스 록 기타 주자 에릭 클랩튼 태어남
1965 베트공, 사이공 미국대사관 폭파, 218명 사상
1967 나토군사령부 파리철수 완료
1998 아르메니아 대통령으로 로베르트 코차리안 당선
2003 미셸 콴(미국),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에서 5번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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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대치하며 살얼음위를 걷는 박빙의 평화를 지키고 있던 때에
불교가 이땅에 들어왔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던 시기였던지라 자연스럽게 불교는
민족신앙으로 발전을 했다.
불교가 이땅에 뿌리내리게 한 두 거목을 들라고 하면 의상과 원효스님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두분의 성사가 민족의 정신발전에 끼친 영향은 크다.
의상대사와 원효대사는 여러모로 서로 판이한 환경과 수행의 길을 걸었다. 출신성분에서는
원효대사는 평민출신이고 의상대사는 왕족의 일원이었다. 수행에 있어서도 원효는 실천을
의상은 계율을 내세웠다. 무었보다 원효를 오늘날 빛나게 하는 것은 당시 대부분의 승려가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오던 관례를 벗어 순수한 국내파라는 것이다. 불교의 깊은 깨달음을
당시 선진문물의 본산이던 당나라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깨우쳐 일가를 이루었다는 데서
원효대사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것이다.
원효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압량군 불지촌(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은 서동
(誓幢)이라 하였다.
<송고승전>에서는 원효가 비교적 이른 나이인 십세 무렵에 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효가 출가하였을 때는 불교가 공인된 지 100년이 지나지 않았
지만 이무렵 신라에는 적지 않은 고승들이 배출되어 있었으므로 원효가 그들을 찾아 배우고
물었겠지만 그의 깨달음에 있어서는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다.
원효의 행적 가운데서 각별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입당(入唐) 유학을
시도했던 그가 문득 스스로 크게 깨닫고 발길을 돌린 일이 그것이다. 원효는 34세때 당에
유학하기 위해 의상(義湘)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요동까지 갔다가 그곳 순라꾼에게 잡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45세에 다시 역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해로(海路)로 해서
당(唐)으로 가기 위해 백제 땅이었던 당주계(唐州界)로 향하였다. 항구에 당도했을 때 이미
어둠이 깔리고 갑자기 거친 비바람을 만나 한 땅막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그곳은
땅막이 아닌 옛 무덤 속임을 알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그날 밤 원효는 동티(귀신의 장난)를 만나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는 곧 그에게 큰 깨달음의
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지난 밤 잠자리는 땅막이라 여겨 편안했는데 오늘밤 잠자리는 귀신의 집이므로 이처럼
편안치가 못함을 확인하였다. 이어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원효는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萬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랴.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하고 다시 신라로 되돌아 왔다.
마음밖에 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는 곧 진리이다. 당나라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왜 신라에는 없겠는가. 그는 이처럼 인간의 내면 속에 간직되어 있는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또한 신라인으로서 주체적인 자각을 이루고 있다. 원효의 이같은 깨달음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더욱 드라마틱하게 각색되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가 무덤 속에서 해골을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현존하는 원효대사의 저술은 20부 22권이 있으며, 현재 전해지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100여부
240권이나 된다.
특히, 그의 <대승기신론소>는 중국 고승들 조차도 해동소(海東疏)라 하여 즐겨 인용하였고,
<금강삼매경론>은 인도의 마명(馬鳴)·용수 등과 같은 고승이 아니고는 얻기 힘든 논(論)이라는
명칭을 받은 훌륭한 저작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대저술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한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1493년(조선 성종 24)에 오랜
방랑의 세월을 접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1445년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불사르고 승려가
되었다.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전국을 방랑하면서 많은 책을 썼다.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고, 시문집으로 <매월당집>이 있다. 죽은 뒤 이조판서의 벼슬이 내려졌다.
그는 불과 다섯살에 맷돌가는 모습을 보고 시를 지어 세살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다음은 그가 다섯살에 그가 지은 시다.
"비도 오지 않는데 어디서 천둥소리가 울려올까?
누런 구름이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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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는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이에 비례하여 낮은 교육행정의 질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른바 "무즙파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1965년도 중학교 입시
문제에서 무즙과 관련된 문제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논란이다.
1964년 12월 7일에 치른 서울 지역 전기(前期) 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18번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보기 1번 ‘디아스타제’가 정답이라고 발표했으나, 2번 ‘무즙’을
답이라고 선택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무즙도 답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고아 이를 실증하면서 무즙도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교육 당국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답은 하나라고 주장하다가 학부모의 반발이 계속
되자 문제를 무효화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1번을 정답으로 선택한 학생들의 부모들이 반발
하자 다시 원래대로 디아스타제만 정답으로 인정하는등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적공방으로 이어졌고, 1965년 3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하며, 이 문제로 인해 불합격된 39명의 학생들을 구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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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는 오래전에는 아시아와 붙어 있었다는 것이 지구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곳을 통해 몽골리안의 일부가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고 그들이 지금의
인디언들이다.
세월이 흐른후 알래스카는 러시아 황제의 의뢰로 덴마크 탐험가 베링이 1741년에 첫발을
디뎠다. 그 뒤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팔라노프를 지사로 파견하여 다스렸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러시아 황제는 별 쓸모가 없었던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았다.
1959년에 미국의 49번째 주가 된 알래스카는 면적이 151만 8717㎦로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주이지만 인구는 가장 적은 45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원주민은 남부의 인디언, 북부의 에스키모, 알류산의 알류트 족 등을 합해 2만명 정도이다.
알래스카의 주도는 주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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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교량 기술자 에펠이 1889년 에펠탑을 준공하였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세워진 에펠탑은 그 이전에 세워진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두 배 이상 높은 300m 높이의 철탑이다.
17개월 공사기간, 철골 7,000톤, 공사비 650만 프랑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타워를 세울 때 에펠탑보다 더 높이 세울 수 있었지만 당시 에펠탑이 이미
세계적 명소로 떠오르자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해 일부러 에펠탑보다 3m 낮게 만들
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에펠탑보다 3m 높은 도쿄 타워를 시바 공원에 세우고 세계
제일의 탑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니 수준의 차이란 이런 것이다.
문명은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어도 문화란 역시 오랜기간을 통해 쌓이는 것이다.'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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