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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12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6. 12. 12. 08:59

     

    12월 12일 오늘의 역사


    국내
      1894  총리대신 김홍집, 고종의 명을 받아 홍범 14조 발표
      1923  강화도 근해서 선박이 전복. 40여명 익사
      1946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개원
      1948  유엔총회, 대한민국정부를 한반도내 유일합법정부로 승인
      1978  제10대 국회의원선거 실시
      1979  12.12 군반란 사건
      1983  국회재무위, 임시정부발행 독립공채 84.7월부터 3년 동안 상환키로 결의
      1990  인권변호사 조영래 세상 떠남
      1992  영종도 국제공항 기공식
      1995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협상 완전 타결
      1996  한국,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해외
      1800  미국, 워싱턴을 수도로 결정
      1863  프랑스 화가 뭉크(1863-1944) 출생
      1917  프랑스 모단느 서니스산 터널서 열차가 충돌. 543명 사망
      1936  장학량, 서안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장개석 총통 감금(서안사변)
      1939  미국의 영화배우 페어뱅크스 별세
      1963  케냐 독립
      1983  쿠웨이트 주재 미국대사관 등 7개소에서 연쇄폭발테러 발생
      1985  DC-10 미군 전세기 뉴펀들랜드 켄더공항 이륙직후 폭발
      1990  미크로네시아, 유엔안보리 신탁통치로부터 독립
      2000  북한-영국 국교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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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에는 근대적 법체제를 도입한 홍법 14조가 총리대신 김홍집이 고종의 명을 받아
    반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재판소'라는 용어가 이때 처음으로 도입되어 사용되었다.


    동학농민전쟁을 핑계로 우리나라에 군대를 파견한 청과 일본은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벌였으며 이를 통해 승기를 잡은 일본은 본격적인 내정간섭을 시작했다.
    1894년 김홍집, 박영효등의 연립내각이 들어서면서 개화파의 친일적 성격도 짙어졌고
    정치개혁에 일본의 입김도 점점 거세어 졌다.


    고종은 일본공사 이노우에의 압력으로 '홍법14조'를 반포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1895년
    까지의 시기를 을미개혁(2차개혁)이라고 한다.


    홍법14조의 주요한 내용은 청과의 절연, 국왕의 친정과 이에 따른 법률의 준수, 왕비와
    종친의 정치참여 배제등이였으며 대부분의 내용이 일본인 고문들이 입안한 것이였으므로
    일본의 조선개혁의 연장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친일적인 이런 개혁은 민중의 반발을 불렀고 전국에서 반일 의병봉기의
    도화선이 되어 결국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일어나면서 이완용을 주축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되었고, 친일 갑오정권이 무너지면서
    개화파 관료들은 역적으로 몰려 살해되거나 일본으로 망명을 했다.


    주목할 것은 '이완용'의 행보인데 친러정권의 주축으로 활동했던 그가 나중에는 다시
    친일정객으로 변신 나라를 통째로 팔아 먹는 주역이 된다. 대단한 박쥐같은~~



    '장학량(張學良)'...
    중국 발음으로 '장쉐량'인 이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공산당이 아닌 민주국가가
    지배했을 것이고 한반도에도 민족상잔의 비극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세계의 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물줄기를 바꾸는사건이 '장쉐량'이 벌린 '시안사변(西安事變)'일 것이다.


    1936년 12월 12일 일어난 일종의 하극상 사건이였던 '시안사변(西安事變)'이 43년뒤에
    같은 날 한국에서도 비슷한 하극상 사건이 일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당시 중국에는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가 절대열세에 놓인 공산당의 마오쩌뚱을 밀어
    붙이고 있을 때였는데 공산당은 1년간의 대장정끝에 거의 궤멸된 상태로 연안까지 밀려
    더 이상 갈곳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일본의 침략으로 일부의 국토가 잠식당하고 있을때였음에도
    내전에만 힘을 쏟고 있는 장제스(蔣介石)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시안(西安)의 군벌
    장쉐량(張學良)의 근거지 시안을 장제스(蔣介石)가 찾으면서 역사는 반전(反轉)을
    하게 되었다.


    시안(西安)의 옛이름은 장안(長安)으로 아주 역사깊은 도시인데 그중에서 화칭츠(華淸池)는
    당나라때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놀음을 벌인 유명한 온천지역이였다. 이곳에서 장쉐량은
    장제스를 감금하고 즉각적인 내전의 중단과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하여 항일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했고 결국 장제스는 그의 요구를 수락하고서야 시안을 벗어날 수 있었다.


    장제스는 약속대로 제2차 국·공(국민당.공산당)합작을 체결하고 일본군을 패퇴시켰으나
    이 틈을 탄 공산당의 홍군은 세력확대를 꾀하게 되었고 장제스를 역사의 중앙무대에서
    대만이라는 변방으로 밀쳐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것은 늘 작은 하나의 포인트임을 명심할 일~



    1936년 중국에서 시안사변이라는 '하극상'사건이 있었는데 43년후 한국에서도 같은날
    '하극상'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1979년 12.12 군반란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를 당하고 생긴 권력의 공백을
    일종의 과도집단체제가 유지하고 있었고 순조로운 민정이양을 위해 군은 최소한의 질서
    유지에 힘을 쏟고 있었다. 당시 군의 통수권은 참모총장인 정승화 장군이 맡고 있었는데
    일단의 정치군인들이 총칼로 권력을 움켜쥐었다.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살되자 군부는 동요했고,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정치군인을 제거하려 한다는 정보를 접한 전두환, 노태우 등은
    신변불안을 느끼고 군부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하극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월 12일 대규모 병력을 동원, 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 계엄사령관 등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 사건은 신군부가 전면에 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2월 24일 군수사당국은
    12.12사태의 수사결과를 발표,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내란방조죄로 구속되었고
    전3군사령관 이건영 중장, 전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전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등은 죄상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과도정부의 수반은 최규하 전대통령이였고 군부의 압력에 의해 하야하였다.
    얼마전 유명을 달리 했는데 과묵한 그의 성격과는 달리 메모를 꼼꼼하게 하는 습관이
    남달랐다고 하니 언젠가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그의 비망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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