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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봄의 선운사
    여행기 2006. 6. 23. 17:32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2005년 봄의 선운사 
    2005-02-26 오후 12:33:52

     

     

     

    선운사에 다녀왔습니다.

     


    풍천장어 꿈씰대는
    미끌한 등짝같은 길을 따라
    선운산 골짝바람 따스한
    봄 선운사에 다녀왔습니다.


    2005년 2월의 선운사에는
    이제 막 싹튼 봄이
    빤지러한 잎에 붙어있었습니다.
    봉창너머로 잠깐씩 보이던
    우리 할매 머리에 반짝이던
    동백기름처럼 말입니다.


    선운사에서 겨울은
    번데기 파는 村老의 머리에 눌러쓴
    털실모자에만 남아 있었습니다.
          
                     (졸시"선운사에 다녀 왔습니다.)

     


    지난 일요일 2005년 2월 20일날 날씨가 춥기는 했지만 동백꽃의 유혹은
    우리 부부를 선운사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짐작이였지요.
    사실 아직 선운사의 동백이 화~하게 핀 절정의 그때를 단한번도 제대로
    가늠한적이 없습니다.


    동백이 선운사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거제도의 거제대교 건너편 언덕에도 있고 남해의 이순신장군 사당에도
    볼만하게 피어납니다.
    여수 오동도에도 때를 맞추면 동백이 지천이고 충청도로 넘어와서 마량리의
    바닷가에도 화들짝 피는 모습이 예쁘보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선운사의 동백을 흡족하게 본적이 없습니다.
    이번 걸음이 여섯번째의 선운사행인데 이번에도 날짜를 잘못 가늠해서
    역시나 동백을 잘 볼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동박새 꾸욱~꾹 우는 소리에 약속만 꾸~욱 눌러받아 왔습니다.

     

     

     

     

    그래도 이곳 선운사는 들어가는 계곡이 좋습니다.
    주차장에서 벗나무가 죽 늘어선 길을 걸어서 들어가노라면 소박한 표정의
    촌로들이 번데기며 은행구은것..곶감따위를 파는 목소리가 서정주님의
    육지백이 대신 들을만한 세상소리들중의 하나가 됩니다.


    선운사의 봄은 실상은 물소리로 부터 오는것 같습니다.
    겨우내 얼어있던 계곡에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나면 도솔재를 넘어온
    봄의 소리를 사람들은 그저 짐작으로 아는 게지요.
    그래서 선운사의 봄은 버들강아지의 새싹이나 매화가 티우는 움끝으로
    오는게 아니라 소리로 가장 먼저 오는 이유입니다.

     

     

    어떤 역사물을 영화라는 매체로 접하게 될때 그 역사는 왜곡되는게 상례인데
    그 당시의 역사적 시공간을 재현하지 못한다는데 있을 겁니다.
    카메라가 잡아내는 앵글도 역시나 카메라맨이나 감독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삼다가 보니 그럴수 밖에 없겠지요.


    "남부군"
    지리산을 무대로 활동하던 빨치산 남부군의 촬영장소가 이 곳 고창의 선운산
    일대에서 촬영되었다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남부군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실상은 고창인 배경을 지리산이라 착각하며
    보게된다는 것입니다.


    진실에 눈떠 살기에는 이 세상의 왜곡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나무가 살아있음의 증거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드리고 산소를 내뿜거나
    화~하게 피톤치트를 내뿜거나 골짝바람을 분다는 신호를 소리로 해주거나
    새들이 지나다 잠시 숨을 고르게 하던가 일 겁니다.


    죽어서 의자가 되거나 막거리잔 엎어 올리는 찬장이 되거나 굴비 몇마리 올리는
    소반이 되거나 이렇게 흔적으로 남거나 태워져 재로 다시 땅으로 돌아가거나
    둘중의 하나 이겠지요.


    죽어서도 향기를 뿜을수 있다면 비단 나무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도 바라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이 선운사 입구에 쓰러져 죽은 나무가 뿜어내는 사람들의 희망처럼 말입니다.


    희망을 뿜어내는 나무....
    내 삶도 나중에 拙한 후에도 아름다운 희망을 뿜어 낼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늙고 병든 몸의 주름이 아름답다고 느낀적이 없으신지요?
    나는 우리 엄마의 주름은 아름답다고 느낀적이 몇번 있습니다.
    늙음의 표식인 주름이 아름답기야 하겠습니까만은 울 엄마의 주름살속에는
    5남매의 발자죽들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주름살 하나마다 5남매의 추억이 까맣게 타들어가 남은 재가 되어있기 때문이지요.


    내 주름살에 딸래미들의 발자죽이 남겨 지듯이....


    선운사에 올때마다 입구의 이 주름살 나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하기도 하고 숙제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바다...
    올해도 이곳 선운사에서 흐드러진 동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에 바다를 보았습니다.
    하얀 포말이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바다를 선운사 대웅전뒤에서
    실컷 보고 왔습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동백나무 잎파리들이 바람이 불면 햇살을 받아서 빤작이며
    흔들리면 마치 동해바다의 포말을 보는듯 합니다.


    봄의 약속이 빨갛게 고개를 내어밀고 있습니다.

     

     


    잎 두터운 동백나무 아래는 한낮도 밤에 버금갑니다.
    그래서 동백나무 아래는 잡풀들이 자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올해 선운사에는 유난스레 차나무를 많이 심어 두었군요.
    잘들 아시겠지만 동백나무도 그 족보를 따지고 올라가보면 원래 호주가
    차나무 입니다. 차나무와 동백은 일가붙이라는 말이지요.


    대나무 밭에서 대나무 이슬을 받고 자란 찻닢을 죽로차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동백나무 잎의 이슬을 먹고 자란 찻닢에는 어떤 이름이 붙이면 좋을까요.
    동로차라고나 해야 할지....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나이를 좀더 먹고 기억이 트릿해지고 나면 이곳에 왔던
    추억도 빛이 많이 바래지거나 消去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일반적인 삶의 行路이니까 말입니다.
    혼자 어딘가를 다니면 스스로의 모습을 남긴다는게 뻘쭘한 일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둘이 갔으니 잘 안쓰던 삼각대를 받치고 한장 박아둡니다.
    나중에 늙어서 호호할방이 되고 호호할망이 되어서 다시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쏫아날수 있도록 말입니다.

     

     

     


    선운사 경내에 있는 찻집....
    올때마다 한번씩 들리는 곳입니다.
    이집에는 몇년째 저렇게 촛농으로 만든 탑이 있습니다.


    제 몸을 태워서 만들어낸 고통의 촛농이 흘러내려서 몇년의 세월이 지나
    저토록 아름다운 하나의 탑이 되었습니다.
    어젯밤 경상도에서 왔던 빨간초가 남긴 촛농의 흔적위에 오늘은 전라도에서
    온 분홍빛 초가 촛농을 녹여 붙이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어떤 흔적을 하나 남겨두고 갈까를 한참동안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 답을 떠올릴수 없었습니다.

     

     

     


    뗑그렁~~~ 뗑그렁~~~
    찻집의 처마끝에 매어달린 풍경소리를 담아 끓여낸 약차 한 잔 입니다.
    약차가 식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서 지나갑니다.


    나쁜 생각...좋은 생각...
    참 마음이란 놈은 번잡스럽기 한량이 없습니다.


    일순간도 평정되지 못하는 마음의 끝을 언제쯤이나 온전하게 잡을수 있을것인지...

     

     

    마음,
    마음, 마음이여!
    어찌 너는
    너를 다스리지 못하고
    남을 이기려고 하는가.


    2005년 한햇동안 풀어야 할 숙제를 받아갑니다.
    아니 어쩌면 평생을 풀어도 다 풀지못할 크나큰 숙제를 등에지고 갑니다.

     

     


    2005년 2월 20일..그 날...
    선운산 도솔재에 봄날이라고 여우가 장가를 가는지 갑자기 눈이 내렸습니다.
    그것도 펑펑 내렸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펑펑 내렸더랬습니다.
    다시 오마 약속도장의 증인으로 내리는 눈 몇송이를 담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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