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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콩나물(송강 정철(鄭澈), 그의 시비 앞에서…) /김대근카테고리 없음 2010. 5. 31. 00:21
송강 정철(鄭澈), 그의 시비 앞에서…
콩알만한 마음씀에 글 만은 넓은 평야
나국(拿鞠)의 피바람 노래로 피워냈네
물레가 돌듯 되도는 세상 이치 몰랐던 겐가
콩 볶듯 몰아치는 세상살이 한 판
나막신 신고서야 건너던 위태한 삶
물끄럼 치어다 보며 시(詩) 한 수 풀어 보네
콩짜개 제 혼자 어찌 살수 있는가
나눗셈 덧셈은 인간사 기본인데
물보낌 휘둘러 대어 죽은 사람 부지기 수
콩노굿 아스름한 5월의 하루
나는 정송강사 앞 마당에 섰네
물갈음 잘해둔 시비(詩碑), 웃고 말았네-주-
* 나국(拿鞠): 지난날, 죄인을 잡아다가 국문(鞠問) 하던 일.
** 콩짜개: 두 쪽으로 갈라진 콩의 한 쪽.
*** 물보낌: 여러 사람을 모조리 매질 함.
**** 콩노굿: 콩의 꽃.
***** 물갈음: 석재의 표면을 물을 쳐가며 광택이 나도록 가는 일.------------------------------------------------------------------------------------
몇 해 만이다. 진천에 들린 길에 정송강사(鄭松江嗣)에 들렀다. 정송강사는 사미인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鄭澈)을 기리는 사당이다. 몇 해 전에 한번 들렀지만 이번에는 사당 옆 산 중턱에 있는 그의 산소까지 들렀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비지땀을 한 바가지나 흘렸다. 그는 한 시절을 풍미했전 시인(詩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시인으로써의 정철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늘날 진실에 기초한 감정의 표현보다는 미사여구의 나열에 진력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시인들 처럼 문학을 자신의 프리즘으로 왜곡시켰다고 비난하고 싶다. 물론 나 혼자만의 관념적이고 주관적 판단이니 아닌 사람은 그냥 그러려니 하시기 바란다.
그의 인생행로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가 휘두른 권력의 칼 아래 수많은 정적들이 목숨을 바쳤다. 그는 수많은 정변의 중심에 서있었으며 그때마다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다. 이씨조선을 통털어 그 만큼 정적을 잔인하게 처리한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에게 권력은 그의 삶의 지향점이었으며 그가 추구해야할 가치였다. 그의 칼날에 뿌려진 피는 강산을 붉게 물들였으며 당쟁의 초석을 다져놓았다.
그의 대표적인 시인 사미인곡은 은유를 통해 권력의 해바라기를 표현한 시이다. 그가 말하는 님은 민중이기 보다는 권력이었으며 자신에게 권력을 안겨줄 수도 뺏을 수도 있는 군왕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때 정치판에서의 패배로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 발발을 계기로 풀려나 선조의 몽진에 동행해 일신의 광영을 지키게 된다. 그는 체찰사로 임명되어 전장을 살펴보러 남행하다가 남도가 왜적에 점령되었음을 알고 바로 북쪽으로 줄행랑을 치고 만다. 당시 광해군은 적진을 누비며 독전하고 있을 때 였다. 그후 명나라에 원군을 보내 달라는 사은사로 다녀온 후 은둔의 길을 택한다. 나라는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어 사직을 걱정해야 하는 때였다.
글을 쓰는 사람은 비겁해서는 안된다. 시대의 등블이 되어야 하고 훗날 시대를 이끌었던 리더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그 시대의 부조리에 눈돌리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 하여야 한다. 그의 사당에서 착잡함을 금 할 수 없다.
사미인곡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평생애 원하요데 한데 녜쟈 하얏더니 / 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글이는고
엊그제 님을 뫼셔 광한뎐(廣寒殿)의 올낫더니 / 그 더데 엇디하야 하계(下界)예 나려오니
올 저긔 비슨 머리 얼킈연디 삼년이라 / 연지분 잇내마는 눌 위하야 고이할고
마음의 맺친 실음 텹텹이 싸혀 이셔 /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믈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도 그지업다 / 무심한 셰월은 믈 흐르듯 하는고야
염냥(炎凉)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 /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동풍(東風)이 것듯 부러 젹셜(積雪)을 헤텨내니 / 창 밧긔 심근 매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갓득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
황혼의 달이 조차 벼 마테 빗최니 / 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매화 것거 내여 님겨신 데 보내오져 / 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꼿 디고 새 닙 나니 녹음이 깔렷는데 / 나위(羅暐) 적막하고, 슈막(繡幕)이 뷔여 잇다.
부용(芙蓉)을 거더 노코, 공쟉(孔雀)을 둘러두니 / 갓득 시름 한데 날은 엇디 기돗던고
원앙금(鴛鴦錦) 버혀 노코, 오색션 플텨 내어 / 금자헤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내니
슈품(手品)은 카니와 제도(制度)도 가잘시고 / 산호슈 지게 우헤 백옥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데 바라보니 / 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쳔리(千里) 만리(萬里) 길흘 뉘라셔 차자갈고 / 니거든 여러두고 날인가 반기실까
하루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녤 제 / 위루(危樓)에 혼자 올나 슈정념(水晶簾) 거든 말이,
동산(東山)의 달이 나고 븍극(北極)의 별이 뵈니 /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청광(淸光)을 쥐여 내여 봉황누의 븟티고져.
누(樓) 우헤 거러 두고 팔황(八荒)의 다 비최여
심산궁곡(深山窮谷) 졈낫가티 맹그쇼셔.
건곤(乾坤)이 폐색(閉塞)하야 백셜(白雪)이 한 빗친 제
사람은카니와 날새도 긋쳐 잇다.
쇼샹남반(瀟湘南畔)도 치오미 이러커든 / 옥누고쳐(玉樓高處)야 더옥 닐너 므슴하리.
양츈(陽春)을 부쳐 내여 님 겨신 데 쏘이고져.
모쳠(茅詹) 비쵠 해를 옥누의 올리고져.
홍샹(紅裳)을 늬믜차고 취수(翠袖)를 반만 거더
일모슈듁(日暮脩竹)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댜란 해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 쳥등(靑燈)을 거른 겻테 뎐공후 노하 두고
꿈의나 님을 보려 택 밧고 비겨시니 / 앙금(鴦衾)도 차도 찰샤 이 밤은 언제 샐고.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셜흔 날 / 져근덧 생각 마라 이 시름 닛쟈 하니
마음의 맺혀 이셔 골슈(骨髓)의 께텨시니 / 편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 하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 찰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 데 죡죡 안니다가 / 향 므든 날애로 님의 오세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라셔도 내님 조차려 하노라.땀을 한바가지나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기어 올라가 만난 정철의 산소
결국 인간이란 누구나 한 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인데 그의 처절했던 정적과의 싸움끈에 얻은 안식은
지금도 편안한 것일까?
피로 지켜낸 그의 평화, 그의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은 알까?
꽃 피고 버꾹새 우는 자연속 그의 산소는 유난히 평안하다.
정송강사의 풍경~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를 찾아 오는지 모르겠다. 물론 평일이기는 했지만 내가 머문 두 어 시간 동안
아무도 찾아 오지 않았다.
결국 이름은 남아도 세월은 그것 마저도 삼켜 간다는 것은 어쩌면 진리가 아닐까?
그의 시가 여전히 교과서에 실려 아름다운 시로 칭송되고 있음은 모순 아닌가?
수많은 사람의 피가 스민 시가 아름답다고 미화되는게 세상의 인심이다. 그런 면에서는 그는 여전히 승자이다.
비뚤어진 이런 모순은 그를 기리는 사당 앞에 피어난 엉겅퀴 한 송이가 대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과연 승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