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삼행시- 봄소식(동백) /김대근
    삼행詩 2009. 2. 16. 11:43

    동백


    봄볕에 동박새 나른한 하품
    소르르 고름 풀어 가슴을 내보이면
    식었던 선홍빛 열정, 다시 피어오른다


    봄에는 잊었던 모든 것 다시 순 틔워
    소곤거림 계곡을 가득 채우고 넘쳐
    식깃박 고인 하늘에 보태보는 마음 하나


    ** 식깃박: '시겟박'의 본디말로 식기나 물건을 담아두는 함지박


    ----------------------------------------------------------------

     

     

     
    동백꽃은 늘 겨울과 봄의 언저리에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다. 겨울꽃 같기도 하고 봄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동백꽃의 개화 한계선이 한강이남으로 국한되니 봄꽃으로 보는게 좋겠다. 그리보면 봄꽃의 시발점같은 설중매는 조금 뒤처지게 된다. 하기사 꽃의 피고짐을 인간의 눈으로 가늠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보고 즐기면 그 뿐 ……


    동백꽃은 내 기억 창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명경(거울)을 끌어당겨 앞에 놓고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다듬는 할매의 모습이 보이곤 했다. 엄마는 장날이면 2홉들이 작은 소주병에 담긴 동백기름을 사서 할매한테 나를 보내곤 하셨다. 아버지가 어릴적 큰집에 맡기고 재가를 하셨다가 다시 돌아온 이후 아버지는 할매를 용서하지 못 하셨다. 좀 떨어진 곳에서 따로 살림을 하셨고 아버지와 할매의 갈등속에서 며느리로서의 엄마가 하는 가장 큰일은 동백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어었다. 나는 동박새처럼 두홉들이 소줏병을 품고 다녔다. 할매가 파란 많았던 삶을 마침내 버리신 며칠 후 아버지는 화단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할매와 화해를 하셨다.


    유년의 삶은 검정색 타르의 루핑지붕 아래서 보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유난히 소리가 심했다. 아버지의 부지런 함은 몇 해가 지나자 루핑지붕에 잇대어 스레이트 지붕을 늘렸고 그 아래 작은 방에는 털보아저씨가 세를 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투잡을 하는 털보아저씨는 장날이면 구포시장에 드럼깡에 물을 끓여 생닭을 잡아서 팔곤 했다. 닭을 잡는 방법도 특이해서 닭의 등부분을 맨손의 수도(手刀)로 내려쳐서 잡는 것인데 모두들 신기해 했다. 나는 내 주변에 저런 고수高手가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곤 했고 그 비법을 전수받으려 자주 일을 도우곤 했다. 털보아저씨는 그때마다 비법 대신 극장입장권을 주었다. 장날이 아닐 때 그는 극장의 간판을 그렸기 때문이다. 털보아저씨는 늘 자신을 화가라고 칭했고 아버지나 동네 아저씨들은 닭잽이라고 불렀다. 나도 화가보다는 고수高手의 면모를 더 좋아했다. 어느날 무료입장권으로 극장에 갔다가 털보아저씨를 만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게되었는데 하얀 천위에 삽시간에 불꽃처럼 피어나던 동백꽃 한 송이…, 나는 화가로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미술도 무술도 전해 받지는 못했다. 얼마후 소리 소문 없이 떠나 버린 탓이다. 유부녀와 정분이 나서 달아났다고 동네 어른들은 쑤근대었다.


    스무살 무렵 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동백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녀로부터의 이별통보는 젊은 날의 몇 페이지를 흑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 동안 방황하던 나는 6시간이나 배를 타고 간 여수 오동도에서 비로소 놓아 보낼 수 있었다. 그후 20년도 더 지난 어느날 예전 그녀가 살던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먹먹해졌다. 길가의 간이 슈퍼에서 찬 음료수 한잔을 하고서야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상처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것인지?


    세상의 모든 꽃들은 꽃가루를 주고받아 씨방을 키운다.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에 피는 동백꽃은 벌, 나비도 없이 어떻게 꽃가루 받이를 하는 것일까? 여름에는 높은 산에서 살다가 겨울이 되면 동백숲을 찾아드는 동박새가 그 역활을 한다. 동박새가 부지런을 떨수록 동백숲에는 정념의 거친 숨소리가 요란해 진다.


    나에게는 늘 아픈 상처처럼 남겨진 꽃, 동백꽃……


    PS: 동백 보기 좋은 곳
    1) 여수 오동도/ 향일암
    2) 광양 백운산 아래 옥룡사지
    3) 목포 유달산
    4) 서천 마량리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