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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7. 6. 8. 11:48
6월 8일 오늘의 역사
국내
1456(조선 세조 2) 사육신, 성삼문 유응부 하위지 이개 유성원 처형
1689(조선 숙종 15) 노론의 우두머리인 우암 송시열(1607-1689) 별세
1885(조선 고종 22) 첫 중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 창설
1908 보인학교(현재 보인상업고등학교) 설립
1914 민영익, 상해에서 별세
1937 백백교, 380명 시체 발굴
1948 독도 부근서 미군기, 어선 10여척 오폭, 사상자 20여명
1953 한국전쟁 포로교환협정 조인(8월 5일부터 교환 시작키로)
1964 공수단 장교 8명, 동아일보사에 난입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공화당 개헌선 돌파
1969 제68차 IOC 총회, 북한 호칭 변경 (NORTH KOREA-> DPRK)
1973 경주 계림로 공사정에서 태환식 순금귀고리 1개 나옴
1988 경주군 서부면 춘관리에서 고려시대 최대 금당터 발견
1989 울진원전 2호기, 터빈부분 고장으로 시험운전 중단
1991 부산 전남북 등 남부지방 전역에 집중호우
1993 교육부, 94년부터 서울 등 6대도시 초등학교육성회비 폐지 결정
해외
1810 독일의 낭만파 작곡가 슈만 출생
1869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9-1959) 출생
1896 프랑스 천문학자 디스란드브로, 지구 성층권 발견
1940 영국 항공모함 글로리오스호, 나르빅 해역에 침몰, 1204명 사망
영국 랑케스트리아호, 나자르 해역에서 어뢰에 피습 2500명 사망
1971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중성자보다 더 작은 새 입자 '파르촌' 발견
1986 발트하임 전 유엔 사무총장,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
1990 체코슬로바키아, 44년만에 첫 자유총선
1991 파키스탄 남부 고트키 역에서 열차 충돌, 200여명 사망 수백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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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극성을 부리던 1937년 그 유래를 찾기 힘들만큼 엽기적인 사건이 밝혀졌다.
신흥종교 집단이었던 백백교에 의해 저질러진 신도살해 사건으로 무려 380명의 사체가
발굴되었다.
평북 영변에서 출생한 전정운은 금강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았다고 하여 백도교를 세우고
'백백백의의의적적적'이란 주문을 외우면 무병 장수하여 신선이 된다고 설교하고 다녔다.
일제에 의한 수탈이 극에 달한데다가 점점 자주적 독립의 기회가 없어져 가는 절망적 시기라
조그만 희망에도 민중들은 휩쓸렸다. 백도교 역시 그런 시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주로
강원도 산골에서 우매한 민중을 상대로 포교하여 세력이 커지자 많은 돈을 헌성금이란
명목으로 빼앗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물의를 일으키다가 강원도 금화에서 관헌에게 잡혀
백도교는 해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전용해는 백백교라고 이름을 고치고 경기도 가평·양평을 근거지로 하여
포교하고 농민을 상대로 많은 돈을 갈취하고 신도의 딸을 첩으로 삼기도 했다. 신도 중에
의혹을 품은 사람이 생기면 산 속으로 기도하러 간다고 유인해 죽였고, 간부 20여명 역시
교주의 손발이 되어 돈 뺏기와 부녀자 능욕, 그리고 살인등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러왔다.
결국 백백교에 들어가 재산은 물론, 딸까지 바친 신도의 아들이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그들의
악행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사건은 그해 오늘(2월26일) 간부 유인호·유대열 등
150여명이 검거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고 한달여후인 4월 7일 교주 전해룡이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끝이 났다.
백백교는 8가지 '하라는 것'(경천부·예곤모·충군신·엄사부·효부자·화형제·휼처자·애린리)과
7가지 '하지 말라'(물간음·물음해·물살명·물위도·물질투·물쟁투·물배은)는 것의 15계명을
그럴듯하게 내세웠으며 유불선을 종합했다고 하며 세인들을 속였다.
조직 또한 교주아래에 대법사와 도유사, 공명사, 지부장, 사서, 강인 등 간부급이 수족처럼
움직였으며 몇 사람의 측근 외에는 자기 얼굴을 알 수 없게 함으로써 자신은 항상 신비의
「베일」속에 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가평소재 일본인 경찰소장이 전용해에게 인사를 오기도 했고 생매장이
알려진 후에도 교묘하게 잠적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경찰의 묵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일반 백성의 우민화 정책에 도움이 되는 전용해를 굳이
제어하고자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후 일본은 전용해의 두개골을 범죄형의 표본으로 보관해 왔는데 해방후 우리 나라 과학
수사의 총본산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시체해부실에는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백백교
교주 전용해(일부사전에는 전해룡)의 두부가 포르말린 용액에 잠겨 있다고 한다.'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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