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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만세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
    여행기 2006. 6. 23. 20:58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3.1만세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 
    2005-03-02 오전 12:13:36

     


    1919년 3월 1일...
    오등은 자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된
    기미독립선언이 세계만방에 우리의 자주 의식을 공표하였다.
    그 우리민족의 마음에 자주의식을 심었고 아시아에서는 그 유래를 찾을수없는
    자주운동의 시발점이 이날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이다.

     

     


    지금은 탑골공원하면 그저 소일거리를 찾아서 몰려드는 노인들과 먹이를 찾아서
    모여드는 비둘기들의 전유물로 전락을 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고려시대때부터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왕실의 원찰로서 세조 11년(서기 1465년)에 중건되어 원각사라고 불리었다.
    조선초기에는 우리나라 조계종의 본사로 운영이 되었을정도로 대찰이였다.
    서기 1504년 연산군에 의해 폐사가 되었다가 숭불억유 정책에 따라서 중종 9년
    (서기 1514년)에 마침내 사찰이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그후 빈터로 원각사비와 십층석탑만 남아있는 것을 사적 제354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그후 1897년 영국사람의 건의로 대한제국에서 공원을 조성하고 원각사탑이 있다
    해서 "파고다공원"이라 명명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공원이라고 해도 될것이다.
    1992년 5월 28일에 공원 이름을 탑골공원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1919년 3월 1일...
    바로 이 자리에서 민족지도자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소리높혀 외쳤다.
    곧 이 함성은 이웃으로 전해져서 며칠만에 전국적으로 파급이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이렇게 온 국민들이 자주독립을 외친 예가 없다고 한다.
    다시말하면 이곳은 우리 민족의 독립사에 있어서 성지(聖地)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민족지도자들중에서 대표자였던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다.


    민족대표 33인은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길선주 , 권동진 , 권병덕 , 김완규 , 김병조 , 김창준 , 나용환 , 나인협 , 박준승 , 박희도 ,
    박동완 ,백용성 , 손병희 , 신홍식 , 신석구 , 양전백 , 양한묵 , 오세창 , 오화영 , 유여대 ,
    이갑성 , 이명룡, 이승훈 , 이종훈 , 이종일 , 이필주 , 임예환 , 정춘수 , 최 린 , 최성모 ,
    한용운 , 홍병기 , 홍기조 가 그 들이다.


    3.1일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한번씩은 순례를 할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올해는 3.1운동의 시발지인 이곳에 들렀으니 내년 3월1일에는 유관순생가를
    찾아야 겠다.

     

     


    40대 후반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앉아있기가 미안할 정도로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70대,80대 어른들 뿐이였다.
    바로 옆 인사동 거리에서 3.1만세의 날 거리축제를 하고 있는지 고성능마이크를
    왕왕 울리는 소리가 담을 넘고 밴드의 음악에 악~악~ 거리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탑골공원을 메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살아가면서 한두어번은 길이 멀어도 일년에 한번쯤은 참여해 보아야 할일이다.

     

     

     

     


    보물 3호로 지정되어 있는 원각사비이다.
    원명은 크다는 수식어가 붙어서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라고 한다.
    원각사는 본래 있던 절이 아니고 고려때부터 내려오던 흥복사터에 중건한 사찰인데
    이 석비는 원각사의 중건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비문의 앞면은 김수온이 글을 짓고 성임이 글씨를 썼으며 뒷면에는 당시의 문장가인
    서거정이 글을 짓고 정난종이 썼다.

     

     


    이 팔각정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897년에 원각사의
    옛터를 공원으로 만들면서 같이 만든 8각형의 정자이다.
    주로 대한제국 황실의 음악연주소로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이곳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는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 스님이다.
    만해스님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인물로 충남 홍성이
    출생지이고 생가도 복원되어 관리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이다.
    이 탑은 조선 세조 13년(서기 1467년) 4월에 조성한 것으로 탑의 높이는 12미터정도며
    3층 기단위에 10층 탑신을 건립하고 각층에 불회도상,인왕상,불좌상과 화초나 동물등
    다양한 모양을 양각하였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유리곽안에 넣어서 관리하고
    있어서 상세히 볼 수 없어서 아쉽기만 했다.
    탑안에는 부처님의 사리와 원각경을 보관하고 있다.

     

     


    3.1운동 기념부조도 이 공원에서 빼놓고 가면 안되는 기념물의 하나다.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일어나 일제에 치열하게 항쟁을 하였다.
    일제 또한 강력하게 탄압을 하였다.
    화성군 제암리에서 처럼 대량학살도 비일 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 당시 각처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의 모습을 동판에 새겨두었다.

     

     


    앙부일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앙부일구가 없지만 앙부일구를 놓아서 시간을 알수 있도록 했던 곳이란다.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속좁은 섬놈..(여기서 섬놈이란 왜놈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제주도나
    거제도나 울릉도나 이런데 사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기를....)들이 자꾸 독도를
    제땅으로 우기는 것을 규탄하는 중이다.


    아쉽다..역시나 젊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수로 대변되는 어르신들 뿐이라는 말인가?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것을 지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닫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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