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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三行詩-상수도[용미리 쌍석불]
    삼행詩 2022. 6. 30. 08:52

    三行詩-상수도[용미리 쌍석불]

     

    용미리 쌍석불

     

    상잔相殘이 치열했던 용미리 골짜기

    수도 없이 밀려가고 밀려왔을 총탄들

    도르르 떨구는 빗방울, 세월만큼 아리다

     

    상처는 온 몸에 자죽으로 남겨놓고

    수라修羅같은 세월만 미소로 새겨서

    도솔천 같이 건너길 서로 발원하는 쌍석불

     

    -------------------------------------------------

     

    파주군 광탄면 용미리에는 용암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절의 대웅전 서쪽으로 쪼름하게 나있는 이끼에 제법 미끈한 계단을 오르면

    미륵불 한 쌍이 있습니다.

     

    불상의 높이는 18미터에 이르는데 본디 제자리에 있던 바위를 몸체로 이용

    한 탓으로 몸체가 조금은 기형적이기도 합니다. 대개의 미륵불이 그렇듯이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서쪽의 불상은 동그란 갓을 동쪽의 불상은 네모난 갓을 쓰고 있습니다. 동그라미의 뜻은 아마도 하늘을 네모는 땅을 나타낸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그래서 동그란 갓, 圓笠을 쓴 불상은 남자를 네모난 갓, 方笠을 쓴 불상은 여자를 나타내서 부부상이라는 이야기도 항간에서 회자되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해인사에서 발견된 불상이 쌍둥이 불이고 그 사연은 신라의 여왕과 각간벼슬을 역임한 사람과 더불어 성불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지요. 아마도 이곳의 쌍석불 미륵상도 그런 애절한 염원도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금생에서 맺은 인연... 내생은 물론이요 미륵이 계시는 도솔천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이 불상에는 전설이 많습니다.

     

    그 동안 이 불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된 문헌이 없고 그저 마을에 떠도는 이야기로 그 연원을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 특히 그 동안 정설처럼 여겨졌던 이야기는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후궁으로 원신궁주(元信宮主 또는 공주... 고려 왕실은 일본 왕가처럼 대부분 왕족끼리 결혼을 했으므로 공주가 맞을듯...)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공주는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아들 운이 없었던 탓이겠지요.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원신공주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전해 옵니다. 꿈을 깬 공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답니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전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게 들렸던지 그 동안 사람들은 이 불상을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또 다른 전설 하나는 석불 앞 양지동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답니다.

    근데 이 부자가 놀부와 옹고집의 특성을 나쁜쪽으로 뽑아서 합성을 한 듯이 아주 고약해서 동냥치는 물론이고 시주승들도 곤욕을 치루었다지요.

     

    마침내 도사 하나가 시주를 하러 들렀다가 호되게 곤욕을 치루어 앙심을 품고 이 영감을 망해놓겠다고 작정을 하고 며칠 뒤에 찾아가서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이 뒤 산 바위에다 불상을 새기고 치성을 드리면 만석꾼이 되리라고 말해줍니다.

     

    욕심 많은 영감이 많은 돈을 들여 조성을 했으나 그 후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서 마침내 쫄딱 망하게 되어 울화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설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200여자에 가까운 명문이 발견되어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 발견된 명문에는 1465(세조 11)에 국왕(세조)와 왕비(정희황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하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파주에서 이 용미리까지 가는 내내 군부대의 연속이였습니다. 국도에서 벗어나 들어가는 소로는 군사도로였고 석불의 바로 옆에도 군부대가 있을 만큼 이곳은 민족사의 아픔이 현재 진행형인 곳입니다.

     

    한때는 이곳 역시도 격전지였던 탓에 쌍석불의 몸통이며 목덜미며 얼굴에는 마치 마마자국 같은 총알자국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유행가 가사에서는 세월이 약이라지요. 모두들 조금씩 동족상잔의 그 다툼을 잊어 가고 있지요. 쌍석불에 난 총알자국도 점점 흐려져 가듯이 말입니다.

     

    <PS> 예전에 시와 함께 썼던 글인데 삼행시로 다시 만들면서 틀린문구 몇 개 수정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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