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오늘의 역사
11월 28일의 지나간 오늘
국내
1833(조선 순조 33) 창덕궁 대조전 등 불탐
1864(조선 고종 1) 독립운동가 서재필 출생
1897(조선 고종 34) 독립협회, 풍수지리 토론회 개최
1910 하와이교포와 최초의 사진 결혼
1930 당인리 발전소 완공
1934 진단학회, <진단학보> 창간
1941 임시정부, 대한민국건국강령 발표
1953 반공통일전선 결성
1956 한국과 미국, 우호통상조약 및 항해조약 조인
1980 한일간 해저케이블 개통
1991 새만금 간척종합사업 기공
1995 한글윈도95 시판개시
2002 국내 첫 액체연료 로켓 발사성공
해외
1520 마젤란, 태평양 명명
1820 독일 사회주의자 프리드 엥겔스 출생
1905 에이레 독립당인 신페인당 결성
1949 국제자유노동조합(IFTU) 결성
1978 일본 총리에 오히라 당선
2000 네덜란드 하원, 세계최초로 안락사 합법화 법안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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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일본보다 문명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에도 조선말에 들어 일본에 뒤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지식의 특정계층 소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민중들은 세상돌아가는 것에 대해
거저 소문으로 듣는 수 밖어 없었다.
독립신문이 나오기 전에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를 정부에서 발간한
신문이었으며, 한문으로만 기사를 쓴 것이어서 일반민중들은 정보를 습득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독립신문>은 한글전용을 사용해 민중을 위해 쉬운 신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당시로는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 <독립신문>을 만든 서재필이 출생했다. 1864년 고종이 막 등극한 그해에 출생했다.
그는 1884년에 김옥균·홍영식(洪英植)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獨立協會)를 결성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서재필의 본관은 대구(大邱)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영어명은 제이슨(Philip.Jaisohn)이다.
전라남도 보성(寶城)에서 출생했다. 7세 때 서울에 올라와 외숙밑에서 한학을 배웠고, 1879년
(고종 16) 전강(殿講)에 장원하였다. 1883년 일본의 도쿄 육군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를 졸업,
귀국 뒤 국왕에게 사관학교의 설립을 진언, 조련국(操鍊局) 사관장이 되었다.
그는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1889년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세균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가 되었다. 그후 명성왕후 일파가
몰락하자 1896년 귀국 후 중추원(中樞院) 고문에 임명되었다.
1897년 중국의 사신들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신식 독립문을 세웠으나
수구파(守舊派) 정부와 일부 외국인의 책동으로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다가 3·1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잡지 《The Evening Ledger》와 제휴하여
한국문제를 세계 여론에 호소했다.
해방후 1947년 미군정 장관 J.R.하지의 초청으로 귀국, 미군정청고문(美軍政廳顧問)으로 있는
동안 국민의 추앙을 받았으나 이승만과의 불화 및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미국에 있던 그의 유해는 전명운(田明雲)의사의 유해와 함께 1994년 4월 8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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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월 25일 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의 이념적 통합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대한민국건국
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을 제정·공포했다.
이것은 통합된 단일정당조직이 단순한 물리적인 결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념적인 융합차원
으로까지 진전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체였다. 한국의 건국정신은 정치 경제·교육의
평등을 보장하는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있으며, 3·1 독립선언에 입각하여 수립된 정부는 민족
자력으로 이민족의 전제를 물리치고 5천년 군주정치의 낡은 껍질을 벗겨 새로운 민주제도를
확립하고 사회계급을 타파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건국강령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도입한
좌우합작 타협의 소산물이었다.
이 좌우합작은 전민족적 차원에서 결성된 것이 아닌 김구와 김원봉(金元鳳)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좌우연합전선(左右聯合戰線)상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또한 이는 이들을
주체로 민족해방을 쟁취한 뒤 추진할 새로운 국가건설의 가늠자로서 임시정부의 진로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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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깽~
이말은 100년전 이민선을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사탕수수밭에서 고생했던 동포를
이르는 말이다. 먼저 이민 간 사람들은 결혼을 해야 겠기에 사진을 고국으로 보냈고 사진한장
달랑들고 신부들은 이민선을 탔다.
마침 조선이 망하고 이민선이 오갈때부터 우리나라의 허물어진 황토언덕에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오가는 이민선에 묻어온 것이였다. 사람들은 그 꽃을 "망초" 또는 "개망초"라고
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