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행시- 포도밭(관룡사 뜨락에 서다) /김대근
관룡사 뜨락에 서다
포(苞) 없어 더 슬픈 상사화 피어서
도가니 열탕을 식혀주는 산문(山門) 앞 그늘
밭 귀에 달랑 매달려 지금은 좌선 중이다
포영(泡影)속 자각(自覺)은 불타의 가르침
도지(桃枝)에 외로 핀 꽃처럼 혼자서 가되
밭농사 일구어내듯 마음 밭 거두라
포폄(褒貶)은 인연에 기댄 것이니라
도란도란 새겨주는 약사여래의 미소
밭 가로 시원한 바람, 갈증을 채우다
포갤점 하나 없이 허덕여 달려온 삶
도무지 풀길 없어 용선대 좌불 앞에 섰다
밭아낸 속진(俗塵) 다발에 구름 걸리다
포동한 어깨 위로 세월이 잠시 쉬다가
도(道)의 씨앗 하나 뿌리고 가다
밭고랑 다듬는 마음, 깊이 묻어두다
포곡조(布穀鳥) 소리에 언뜻 깨어나
도롱태 다시 굴릴 속세로 길을 잡다
밭둑의 며느리밥풀꽃, 뒤를 잡아채다
註)
* 포영(泡影) : 물거품과 그림자라는 뜻으로, 사물의 덧없음을 이름. 불가 최고의 경정중 하나인 금강경 제 32장 응화비진분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하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하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란 무위법(無爲法)의 반대이다. 어떤 인연으로 생겨서 나고 죽고 변화하는 현상계의 모든 것을 지칭한 개념이다. 곧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현상은 반드시 나고 머물고 달아지고 없어지는 것(生住異滅)이므로 덧없고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열심이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비워서 일체가 꿈같고 물거품같은 이치를 깨달아야 근본적인 번뇌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 포갤점 : 쌍점, " : "을 말한다. 내포되는 종류를 들거나 작은 표제 뒤에 간단한 설명이 붙을 때 쓰며, 저자명 다음에 저서명을 적거나 시(時)와 분(分), 장(章)과 절(節) 따위를 구별할 때 그리고 둘 이상을 대비할 때에 쓴다.
* 포곡조(布穀鳥) : 뻐꾸기를 한문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새다. 평생 자신의 힘으로 둥지를 짓지도 않고, 자식을 키우지도 않는다. 이놈은 남의 둥지를 엿보고 있다가 주인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자신의 알을 슬쩍 낳아 놓고는 사라져 버린다. 뻐꾸기 알은 부화시기가 빨라서 일찍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원 주인의 알들을 등으로 밀어서 둥지 밖으로 내버린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격이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원 주인은 자기보다 덩치큰 새끼를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휜다. 이런 말로 위안을 삼으며 말이다. "우리 새끼~ 덩치도 저리 크니 장군감이 틀림없어!"
* 도롱태 : 나무로 만든 작은 수레를 말한다. 2MB 용량의 某씨는 바퀴 20개쯤 달린 쇠수레를 끄는데, 2GB 용량을 자부하는 나는 겨우 도롱태를 끄는 것도 힙겹다. 어디쯤에서 어긋난 불합리인지 모르겠다. 이럴땐 그저 전생에 지은 복이 다르려니~ 하는게 최선의 위안이다.
* 며느리밥풀꽃 : '며느리'라는 말이 한으로 점철되었던 때가 있었다. 까마득한 옛 이야기 같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아직 주름속에 간직한 세대가 살아 있으니 그다지 멀지 않은 옛날이다. 지금은 '시어미'가 그 자리를 꿰어 차고 있다. 이런 것을 일러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하던가?. 며느리밥풀꽃에 관한 슬픈 전설은 다음에 언급하기로 한다. 관룡사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그 가파름의 끝에 석가모니불 좌상이 있다. 마치 극락이란 고난과 번민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것임을 깨우치고 있는듯 하다. 그 산정(山頂)에 며느리밥풀꽃이 외롭게 피어 흔들리고 있다. 조금은 습한 응달에 주로 피는 꽃인데... 돌아오는 길 자꾸 뒤가 밟혔다.
***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 보물 제2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