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詩集

시- 동백꽃 이야기 /김대근

김대근 시인 2010. 2. 18. 14:04

동백꽃 이야기

 

김 대 근

 

30리 산길 비척대며 지겟질로 보낸

당신의 유년, 큐슈 어디쯤 석탄 굴에 묻은

할배 목숨값 품고 재가했다 온 할매 탓이라며

모질게 다 잡아 용서하지 못하던 아버지

그 눈길 에둘러 엄마가 쥐여준 동백기름 두 홉

친친 동여맨 고무줄이 소주병 목을 죄어

제자리 아님을 알아채린 기름

넘실대는 욕망을 눌러놓았다

할매집 가는 길 징검다리 돌 위에 앉아

물에 빠져 죽은 산을 건져줄까 하다가

그 산 중턱 절 마당에 동백나무 있음이 생각나

다시금 긴 길의 끝을 감는다

나중에 내가 더 웃자라 큰 약수통 들고

그 절 옆 지날 때 대 빗질 하던 그녀

동백나무 아래 떨어진 동백꽃을 보고 웃었다

할매는 늘 들창 열고 산 빛을 속으로 채웠고

콩기름 먹갈색으로 익어가는 아랫목

엄마가 오래 부러워하던 숙모의 예단 명주 솜 이불

목까지 덮고서도 할매가 채우다 남긴

산 빛의 파장이 남아 추웠다

나는 물 빠진 물푸레나무 끝가지 같은 할매 손

동백기름 붓이 되는 유들한 모습을 보다가 열린 창으로

구름이 제 마음대로 모양 바꾸어 얼어붙은 것에

이름들을 붙이다 찾아온 쪽 잠을 굽기도 했다

 

염쟁이 아재가 할매 입에 생쌀 채우던 날

나는 생쌀 씹으면 회충 생긴다는 할매 말 생각나 울고

엄마는 남은 동백기름 몇 병을 잡고 울었다

문상객 채근에도 아버지는 할매가 치성하던 뒷산 마애불처럼

그저 말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발효된 세월이 열번쯤 비워지고난 어느 날

아버지가 햇살 몇 쪽을 거름 삼아 동백나무 모종을 심다가

흔들리고 말던 그 어깨에 물들던 세월의 빛깔, 붉었다

 

 <문학미디어작가회 2009년 작품집 "눈부신 바다"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