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비망록

막내의 새로운 목표

김대근 시인 2007. 12. 27. 15:40

 

막내의 새로운 목표

 

나는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번도 교탁에서

석줄 뒤로 넘어보지 못했다. 키순으로 자리가 배치되던 때의 일이다.

급장(반장)같은 리더는 대부분 뒷자리에 앉을 정도가 되어야 했으므로 학창 시절에는

단 한번도 감투를 써본일도 없다.

 

큰 아이를 낳았을때도 내심 키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랐는데 다행이 제 엄마를 닮았는지

여자로서는 작은 키가 아니게 되었다. 둘째를 낳았을 때도 그랬는데 이 녀석도 외탁의 탓인지

아니면 영양이 좋아서 그런지 쑥쑥 자라서 165센티를 0.5센티 차이로 넘지 못 한 아비를

흐뭇하게 해 주었다.

 

문제는 막내인데 제 언니들이 자랐던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듯해서 걱정이 컸다.

성장호르몬이 가장 성하게 나온다는 시간이 10시부터 새벽 2시라는 방송을 보고 그 이후에

10시만 되면 자라고 닥달을 하지만 도저히 씨가 먹히지 않는 녀석이다. 내가 보아도 재밋는

텔레비젼의 유혹을 녀석이라고 다르랴 싶으니 자꾸 약해 지는 것이다.

 

이런 나를 보고 큰 아이와 둘째는 제 녀석을 자랄때는 무자비하게 시간 지켜서 재우더니

막내에게는 너무 유하다며 편애의 불만을 늘어 놓고는 한다.

 

 

녀석도 자신의 키에 대해서는 다소 신경이 쓰였는지 언제부터인가 작은 방 문옆의 좁은 벽은

키재기 장부가 되었다.

2004년 8월 21일 그은 작은 금 하나를 시작으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에 한 번씩 딸래미는

벽에 붙어서고 아내나 내가 삼각자를 정수리와 벽에 대어 그 꼭지점에 가로금과 날짜를 새긴다.

 

 

올해는 어린이로서의 마지막 해다. 이제 우리부부에게는 어린이날을 챙길 의무 같은 것에서

완전히 해방이 된 것이다.

아이는 올해도 많이 자랐다. 바램 같으면 무우밭의 무우처럼, 비온뒤 솔 밭의 버섯이 자라듯,

비만 오면 쑥쑥 한뼘씩 자라는 대나무 같이 자라 주었으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자람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통계를 이리저리 따져보니 또래 아이들의 중간에 가깝다. 그런데도 왜 자꾸 우리 아이보다

큰 녀석들만 눈에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이 아마도 부모의 마음이리라.

 

 

 

이제 막내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 목표앞에 서서 가늠해보니 나보다 반뼘이나 더

큰 자리에 가로금을 새겨넣었다. 저 목표로 가는 길에 작은 가로금들이 중간 중간에 새겨질

것이다. 아이는 이제 중학교 교복차림으로 저 앞에 서기도 하고 고등학교 교과서를 들고

저 벽에 등을 대기도 할 것이다.

 

그 동안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이의 목표와는 멀어져 갈 것이다. 하루 하루

늙어감의 체감도를 높여 가게 될 것이다. 마약에 중독된 이 처럼 자꾸 체감의 단위를 높여

종국에는 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다.

 

삶이란 시간의 뒤를 쫓는 아날로그다.